고교시절의 슬픈 기억들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5097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1.14. 16: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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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5

S형,

금년 한해도 거의 저물었습니다.

형의 고등학교시절은 어떠하셨습니까 ? 슬픈 때는 없으셨나요 ?

상급생이 되가자 점차 세상의 이치를 깨우쳐 조금씩 더 알기 시작하면서 슬픔과 기쁨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해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사리 판단력의 향상은18세기 초 ‘빛의 시대’에 살았던 세상을 계몽하려던 유롭의 선각자들과 같이 나 개인적으로도 세상 모든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깨우치며 집고 넘어가게 했습니다. 그것이 당시 우리들의 나이 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고전문학작품을 읽으며 고전음악을 들으면서 모든 면에서 서로 얘기를 주고 받기 시작 했습니다. 인간의 극단적인 두 성격을 가르킨다 하면서 함렛과 동기호테를 얘기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 음악을 듣기 시작해서도 주로 고전음악을 들었습니다. 친구 H는 바하를 듣고 C는 바그너를 얘기했으며 L은 모차르트 아리아를 흥얼댔으며 또 다른 L은 스칼라 오페라에 마리아 칼라스의 놀라운 출현을 알렸고 나는 롯시니의 빠르고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음과 색을 연결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우리 모두가 장난꾸러기 악동들이었다면, 악동들의 장난도 또한 심해져서 교내의 규율문제로 발전하면 곧잘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모두들 인생에서 가장 넘기기 어려운 시점인 사춘기를 각자 나름대로 위태 위태하게 잘 넘겨가고 있었습니다.

졸업반에 올라가니 3학년 아홉개의 반편성이 졸지에 대학진학반으로 두쪽으로 나우어져 문과반 넷과 이과반 다섯으로 나뉘어 졌습니다. 1반 부터 4반은 문과지망생반, 5반부터 9반까지는 이과지망생반으로 편성 됐습니다. 나는 미술대학지망생으로 문과반으로 분류돼 3학년3반에 있게 됐습니다.

학교는 1학기 수업만으로 최종졸업시험을 치루게 하며 학적부에 남는 졸업성적표를 일찍이 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대학진학을 위한 수업시간표를 새로 짜 발표했고 학생들 각자의 모든 수업은 자기가 지원할 대학의 시험과목만을 수업받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진학할 대학별 입시과목만을 선택해 수업을 듣기 시작 했습니다.

예능계 지망학생은 몇 없었지만 미술대학과 음악대학은 필기시험이 3과목뿐인 국어, 국사, 영어 수업만 받으면 되었고 나머지 시간은 학교에서 자기들 스스로 실기시험에 대비한 실기연습을 하면 됐습니다. 이런식으로 전인교육을 목표로하는 인문고등학교가 완전히 시중의 입시학원이나 마찬가지로 바뀌어진 것인데 이것은 분명히 정해진 중등학교 교육 프로그램을 유감스럽게도 어긴 변칙 이었을 것 입니다. 학교는 단지 대학입시 합격율만을 높이는 데 그 목표를 세운 것 입니다.

이렇게 수업시간이 입시위주의 수업시간표로 바뀌고 나서 나는 아주 억울하게도 담임선생한테 혼이 났습니다. 우리반 담임 선생은 본교출신의 수학선생님 이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받은 그 혼은 말이 혼이지 수업이 진행되어야 하는 신성한 교실에서 반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심한 체형을 당한 것이어서 지금까지도 그 때의 슬픔을 잊지못하고 있습니다. 그 선생님이 왜 그렇게 심한 체형을 나에게 가했는지 지금도 그 영문을 알 수가 없습니다.

졸업성적을 졸업학적부에 다 올리고 난 후의 우리는 각자 지원하는 대학의 입학시험 과목만을 수업받는다는 오리엔테이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나의 입시과목이 될 국어, 국사, 영어시간만 들으면 되었고 나머지 비는 시간엔 미술반에 가서 혼자서 실기연습인 석고데생을 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어느 날 오전 둘째 시간은 국어 시간이었고 셋째 시간은 수학 시간 이었습니다. 그런데 깐깐하기로 유명한 국어 선생은 출석부에 붙인 좌석표를 일일히 대조하며 출석을 점검하다가 걸상을 치우고 자기 책상을 앞학생 책상에 딱 붙여서 교단위에서는 눈에 잘 안 띄도록 해놓고 도망친 G의 자리를 발견 하였습니다. 국어시간이 끝난 후 G가 무단 결석한 사실을 우리반 담임선생에게 알렸던 모양 이였습니다.

국어시간 다음은 수학시간 이었음으로 나는 의례대로 미술반에 갔고 ‘아그리빠’ 흉상을 놓고 석고 데생을 막 시작 하려고 하는데 C가 헐레 벌떡 뛰어 왔습니다. ‘너 큰일났다. 담임이 너를 빨리 데리고 오래니 빨리 가자’ 했습니다. 무엇때문인지 짐작을 할 수 있었으나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 C를 따라 교실로 갔습니다.

교실문을 열자, 수업을 시작하지 않고 나만을 기다린다는 듯이 기다리고 있던 담임선생은 나를 보자 마자 교단에 무조건 올려 세우더니 ‘네가 미술대학에 간다고 수학시간에 안 들어 오는 모양인데, 수학을 모르고서야 앞으로 무슨 사람구실을 할 것이냐’ 면서 그때부터 마구 구타하기 시작 했습니다. 평소에 성미가 급했고 이성을 잃은 듯한 노여움을 여러번 겪어서 학생들은 담임선생을 모두 다 조심하며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뺨부터 얻어맞고, 출석부로 때리고 몽둥이로도 때렸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머리를 칠판에 계속 떠밀어 부딪치게 하였습니다. 이마는 온통 멍이 들었습니다. 50분 수업시간 동안 한시도 쉬지않고 나를 때리며 고함을 질렀기 때문에 우리 반 바로 옆 양 쪽 학급에서는 수업을 중단했어야 할 정도로 요란 했습니다.

수업을 전폐하며 나를 선택해서 체벌을 가한 것은 다른 학생들이 수업을 빼먹는 경우에 대비해서 본보기를 보여준다는 뜻이 였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나를 선택해 때리는 것은 그 이유가 합당치 않음을 우리 반 급우들이 모두 알고 있었을 것 입니다. 미술대학을 지망할 오천룡은 수학시간에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급우들 모두는 펄펄뛰는 담임선생님의 기세에 눌려 쥐 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그 교실은 더 이상 교실이 아니었고 공포로 가득찬 공개 체형장 이었을 뿐입니다. 수업종료종이 울리자 담임선생은 분이 다 풀렸는지, 안 풀렸는지 모르지만 쏜살같이 그냥 나가 버렸습니다. 나는 선생님이 그때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창피한 것은 둘째 치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 듯 슬펐고 서러웠습니다. 수업을 받지 않아도 되는 수학시간을 빼먹은 것과 수학을 모르고서야 어떻게 앞으로 사람구실을 하겠느냐라는 것이 죄목 이였습니다. 학교의 입시준비방침이 그랬기에 나는 나의 시험준비를 하러 갔던 것이지 수학시간을 빼먹기 위해서 일부러 수업을 기피한 게 아니었지 않습니까 ?

그 사나운 번개천둥과 같은 야만스러운 체벌소리 때문에 수업을 중단할 수 밖게 없었던 옆반의 2반과 4반 학생들이 종이 쳐지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 났었나 하고, 그리고 누가 그렇게 두둘겨 맞았나 하고 교실창문에 구름같이 몰려와 들여다 보았으며 나는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었습니다.

우리 반 말썽꾸러기였던 G에게 나중에라도 그의 무단 결석을 이유로 내게 혼냈던 것과 같은 벌을 담임선생이 내리지 않는 것을 보고 급우들은 모두 불평등하다고 생각했었을 것 입니다. 가정 배경을 감안하여 벌에도 차별을 둔다는 것을 예민한 우리들이 모를리가 없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변명이나 항변을 포기했고, 끝까지 아무 말없이 울음을 머금고 그 벌을 감수 했습니다. 그 것이 그 선생을 더욱 역정 나도록 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 만한 사리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성의 나이에 와 있노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매를 맞으면서도 참으로 떳떳하게 맞겠다고 이를 악 물었었습니다.

그 후 나는 반년 이상 그 선생의 담임 반 학생으로 남아 있었지만 선생님으로부터 그 비참했던 체형과 관련하여 슬며시라도 타이르시는 그 어떠한 정다운 말씀 한마디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나와 선생은 복도에서라도 지나치게될 때면 매 순간마다 서로 시선만 피한 채 졸업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7년 후 나는 서울시 교육위원회 중등교육과 인사과에 가야 했습니다. 인사과에서 미술교사로 지정된 학교로 가는 발령장을 받으러 오라고 했습니다. 인사과를 찾아가서 발령담당자를 찾았을 때 나의 고교3학년 담임선생이 거기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옛 담임선생님을 거기서 만나니 다른 사람들 사이 같았으면 사제지간에 너무 기쁘고 반가웠을 텐데 나는 정반대 였습니다. 나는 그 선생의 얼굴에서 네가 수학을 무시하고 그림을 그린다더니 결국 나한테 왔구나 하는 표정을 본 것입니다.

나는 화가의 길만을 가리라던 무서운 결심을 접고 교사 채용시험을 보러 갈 때도 그랬고 오늘 발령장을 받으러 올 때도 너무도 마음이 착잡하여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는데 놀랍게도 그 옛날 나를 두둘겨 패던 선생을 외나무다리에서 정면으로 만나다니 온 몸에서 기운이 온통 다 빠져 나가는 느낌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은 내가 오늘 자기 앞에 나타날 것이란 것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힐끗 비웃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발령장 인사장부를 몇 장 들추는 척 한 후 곧바로 그 해 신설된 변두리S중학교로 발령을 냈습니다. 산간 오지로 보내지는 것 이였습니다.

나도 모든 희망이 사라진 마음으로 아무 말 않고 발령장을 받아 들었습니다. 고개를 쳐들어 보니 교육위원회 사무실 정면 중앙 벽에는, 내가 언젠가 미술반 창문에서 내려다 보고 그린 인왕산 아래의 경복궁 풍경이 걸려 있었습니다. 왜 내 그림이 여기에 걸려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 볼 틈도 없이, 그 그림을 만난 기쁨을 잃은 채 쫓겨 나듯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물러 나왔습니다.

교육위원회에 들어 가면서 혹시 운이 좋으면 미술교사 자리가 비어 있다고 하는 청운동의 K중학으로 발령을 받을 수 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졌었는데, 결과는 그 해에 서울 왕십리 밖 뚝섬변두리 배추밭 가운데에 신설된 3차 중학교로 발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 신설 S중학교는 교사를 신축중 이어서 신당동에 있는 S중고의 강당을 빌려 칸막이를 치고 8학급의 신입생을 받은 학교 였습니다.

S중학교의 K교장은 내가 처음 일선교사로 부임했듯이, 일선교장으로서는 처음 부임한 젊은 분 이었습니다. 하루는 나와 음악선생을 교장실로 불러서는 ‘나는 국어, 수학 혹은 영어선생님이 결근하시는 경우 보다는 두분 미술, 음악선생께서 결근하신다면 그 결근을 더욱 가슴 아프게 생각하렵니다. 왜냐하면 우리학교 아이들은 2차 시험에서도 떨어지고 3차 시험을 치루고 겨우 들어온 학생들이고 변두리 학교이다 보니 모두 가정사정이 어려운 아이들 뿐입니다. 우리학교 학생들에게는 국어, 수학과 영어시간보다도 미술과 음악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이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정서적인 교육이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보다 중요합니다.’라고 결근 하지않도록 간곡히 당부를 하는 것이 였습니다.

나는 큰 감동을 받고 이 학교에서 2년간 정말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K교장은 2년 후 시교육위원회로 전출을 갔고, 새로 부임한 교장의 교육방침은 정반대 였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2주일에 한번씩 돌아오는 숙직 때 도난사건이 발생하였는데, 교장은 상부에 신고하는 대신 나에게 도둑맞은 학교 비품인 전화기와 녹음기등을 물어내게 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도둑을 안 맞은 것처럼 위장하려는 처사라는 것을 알고 항의를 해 보다가 도둑맞은 비품 값을 다 물어내고 사표를 낸 후 교사직을 영원히 떠났습니다.

꿈꾸던 프랑스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만약 고3담임선생이 나를 그때 너그럽게 봐서 내가 원하던 K중학에 발령을 냈더라면, 그리고 K교장이 나를 시교육위원회 미술장학사로 한사코 데려 갔더라면 나는 지금 이 비행기를 못 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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