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브케 서독 대통령과 나의 수채화 한점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5062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1.12. 14: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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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11

S형,

얼마전 파리를 왔다간 나의 절친한 친구 Y가 매일 아침이면 받아보는 한편의 시를 나도 받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며 귀국했는데 귀국한 다음날 부터 나에게 한편의 시가 매일 아침 나의 콤퓨터에 도착해 있습니다. 그 한편의 시는 형이 많은 친구들에게 나누어 보내서 아름다운 시 읽기로 부터 아침을 시작시키시려는 의미있는 일임 알았습니다. Y는 형과 철학과 동기동창이라고 소개하면서 형과 나는 벌써 만난 적이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비망록을 찾아보니 형을 처음 만난 것은 본(Bonn) 주재 주서독 한국대사관의 공보관으로 재임하시던 1988년 4월 16일 이였습니다. 그날 쾰른 대성당 옆에 있는 안 화리나(An Farina) 화랑에서 열린 나의 개인전 오프닝 리셉션에 주서독 한국대사와 함께 참석하셔서 전시회를 축하해 주셨습니다.

화랑주인의 남편 디트리히씨가 개인전 개막식에 참석하신 손님들에게 잠시 소개할 말이 있다며 초대 손님들에게 ‘오늘 그림을 전시하는 이 분이 고등학생일 때 한국을 방문한 뤼브케 대통령에게 그림을 증정했다’라는 일화를 소개 했습니다. 오늘 형이 그날 들으신 일화를 나에게 다시 일깨워 주셔서 그 기억을 더듬어 보렵니다.

고등학교 2학년, 1969년 가을, 우리학교에 서독의 뤼브케(Heinrich Lubke)대통령이 방문 했습니다. 제2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뤼브케 대통령은 한국을 공식방문하는 길 이었는데 어떻게 해서 우리학교가 대통령의 방문일정에 포함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우리나라 중등학교 교과과정에 독일어가 제2외국어로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치하하는 의미로 독일어를 수업하는 고등학교 중의 한 학교로 우리학교을 선정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 때 우리학교 교장선생님은 우리 학교는 영국의 이튼 스쿨을 닮아야 하고 우리 나라는 서독의 ‘라인강의 기적’을 본받아야 한다고 월요일 운동장 조회 때마다 귀가 아프도록 강조하셨던 분 이었습니다.

그 교장선생님은 S고등학교를 단기간내에 명문고로 만든 분으로 유명하셨는데 그 후 우리학교로 부임 해 오셨습니다. K여고 영어 선생님이셨던 그 분은 늘 우리에게 영어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여 세계의 모든 지식을 직접 받아 들여서 학문을 닦고 넓히는 준비를 철저히 하여야 한다고 누누히 강조 하셨습니다. 그 분은 영어를 엉터리로 배워서는 안 된다면서 재미있는 엉터리 영어의 실례로 ‘Winter is over, spring has come.’ 을 번역하라고 시험에 냈더니 어떤 학생이 ‘겨울엔 오바를 입고 봄에는 스프링을 입는다.’ 라고 번역했더라하셔서 늘 심각한 훈화를 듣기만 하던 전교학생들이 잠시 박장대소를 터트린 적이 있습니다.

뤼브케 서독 대통령이 오신다고 학교는 야단법석 이었습니다. 방문만 하는 것이 아니고 연세가 많으신 그 분이 교단에 올라가 학생들을 사열하고 연설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그 분에게 드릴 선물로 나의 수채화 한 점을 택했습니다. 뤼브케 대통령이 학교에 도착하여 학교 브라스 밴드의 연주속에 환영행사를 할 때 나는 액자에 넣은 나의 수채화를 가지고 사열대 앞에 서 있다가 그 분에게 증정 했습니다. 뤼브케 대통령은 나의 수채화를 받으셔 보시며 아름다운 작품으로 칭찬하시고 고맙노라는 인사를 주셨습니다. 그 수채화는 경복궁에서 그린 고궁을 담은 풍경화 였습니다.

그 때 나는, 내 그림이라서가 아니라 , 선물치고는 멋있는 선택을 했구나라고 생각 했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서양사람들에게 그림선물은 최고의 선물이고, 더구나 방문하는 학교의 학생이 직접 그린 그림이라면 더욱 뜻 깊은 선물이 될 것이라는 멋쟁이 생각을 해내신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시회 개막전 날, 화랑주인 부부와의 저녁식사때 지나가는 여담으로 이야기 했더니 화랑 주인 부부는 아주 놀라워 하면서 ‘그런 일이 있었느냐, 대단한 일이다, 뤼브케 대통령기념관에 가면 반드시 그 수채화가 있을 것인데 언제 한번 같이 가보자 ‘고 손뼉을 쳤습니다.

그러더니 다음날 저녁, 전시회 오픈 행사장에서 화랑주인의 남편 디트리히씨가 여러 초청객들 앞에서 ‘오늘 전시를 하는 이 화가는 중학생 때부터 벌써 그림솜씨가 유명해서 우리나라 뤼브케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 작가분이 그린 수채화 한 점을 학교에서 주는 선물로 받았습니다. 뤼브케 대통령은 방한 중 이 분이 다니 던 한국에서 유명한 학교를 방문했는데, 그 때 이분이 직접 자기 그림을 대통령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희한한 이야기를 어제 저녁때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하면서 이 일화를 아주 자랑스럽게 초대객에게 소개했던 것 이였지요.

이런 일화와 같은 일들로 인해 그림에 몰두하도록 어린 나를 더욱 부추겼으며, 나의 부모님도 신통하게 여기셔서 화가의 길을 걷겠다는 나의 희망을 꺽기 어렵게 되었던 것 입니다. 더구나 나의 조부쪽 항렬에는 서예가 위창 오세창과 동양화가 오일용같은 분들이 계시는데, 그리고 오세창의 외가쪽 선조에 단원 김홍도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의 그림재능은 조상으로 부터 물려받은 것이자 운명이었다고 생각케 합니다.

그러나 나의 빛나던 청소년시절이 송두리채 통과하고 있던 중고등학교재학시절은 이처럼 영광되고 좋게만 흘러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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