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나의 은사 정옥 선생님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5310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1.08. 18: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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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02-12-07

잊지못할 나의 은사 정옥(鄭沃)선생님

S 형,

오늘은 나에게 떨어진 화가로 향한 운명에 대해 얘기하려 합니다.

일신국민학교를 나와 K중학교에 진학한 학생은 유독 나 혼자뿐 이였습니다.입학하니 유명국민학교 출신의 학생들이 때지어 들어와 있었고 나는 외톨 이였습니다. 그러므로 혼자서 조용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미술반을 택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1955년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앞두고, 종례시간에 들어오신 영어를 가르치시는 담임선생님이신 한순영 선생님은 차분하신 음성으로 너희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취미를 살리는 시간도 함께 갖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교탁위에 놓으셨던 붉은 리봉에 둥글게 감겨있는 커다란 상장을 펴시고 읽으시기 시작 하셨습니다.

그 상장은 얼마전 홍익대학교 주최 미술실기대회에 나가 그린 그림이 특선되어서 학교로 보내온 상장이었기 때문에 얼굴이 홍당무가 된 나는 반친구들의 박수소리를 들으며 선생님께 받으러 나갔습니다. 이때부터 나는 학교에서 그림 잘 그리기로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중학교 2학년4반때의 담임선생님은 대수(수학)를 가르치시는 정옥(鄭沃) 선생님 이셨습니다.

10월이면 해마다 미술반 교내전을 화신백화점과 동화백화점 화랑을 빌려서 여는 적도 있었는데 그해엔 학교체육관에서 열렸습니다. 중고등학교가 교내외적으로 미술반 전시회를 여는 건 드문 일이여서 타학교에서들 부러워 했습니다. 교내전이 끝난 후인데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아주 까다롭고 무서운 선생님이셨고 더군다나 학교 대선배님 이셨기때문에 학생들은 더 꼼짝 못했습니다.

이렇게 무서운 담임선생님이셨고 나는 몹시 수줍은 학생 이었습니다. 수줍음과 더불어 나는 적극적인 미술반활동때문에 부득이 공인된 결석을 자주 하였고 그래서 각 과목의 진도를 따라 가기가 항상 벅찼습니다. 이 때문에 나는 중고등학교시절 여러 번 고민을 하여서 그 때마다 그림을 중단하겠다는 결심도 많이 해보곤 했었습니다. 나는 수업시간수가 많은 국어, 수학, 영어과목에서 항상 성적이 뒤 떨어져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부르신 그날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무거운 걸음으로 교무실로 가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건 공부 못한다고 꾸중을 듣거나 수업을 너무 빼먹는 다고 경고를 받든가 아무튼 그런 것 때문에 부르시는 것 같았습니다. 더군다나 얼마전인 9월, 조퇴허락을 받기위해서 교무실에 갔을 때, 나의 내성적인 성격때문에 혼이 났던 기억이 생생했습니다. 그것은 이러 했습니다.

나는 담임선생님 책상앞에 서서 ‘오늘 조퇴 하게 해 주십시요’ 라고만 겨우 말하고 나서는 선생님 허락만 기다리고 있었지요. 답답해지신 선생님은 조퇴하겠다는 이유가 무었이냐,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 다구치셨지만 새교복을 거북하게 맞춰 입은 나는 땀만 뻘뻘 흘리고 있었지요.

교복을 새로 사 입고 머리도 산뜻하게 금방 깍고 서 있었으니 이녀석 집안에 무슨 경사가 있기는 있는 모양 이로구나 짐작 하실텐데도, 상황은 조퇴하겠다는 사유를 똑똑히 말하지 않고선 안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나는 죽어도 오늘이 아버지 회갑날이셔서 라는 이유를 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 나의 아버지가 그렇게 늙으신 아버지라고 밝히기가 무엇보다도 아주 싫었습니다. 그런 나는 선친께서 마흔 다섯살 연세에 겨우 득남하신 2대독자여서 매우 귀한집 외아들 이였습니다.

나의 나이가 지금 환갑이 넘어 있어 그때 내 아버지 보다도 더 많은 나이인데도 나 스스로 생각하기를 아직도 나는 이렇게 젊고 건강하다고 뻐기고 있을 수 있으면서, 그때의 나는 왜 ‘나의 젊은 아버지’를 ‘다 늙은 노인 아버지’로 여겨서 그렇게 창피해 했는지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의 아이들이 나를 보고 퇴물이고 늙어 없어질 호호백발 노인이라고 마찬가지로 없신여길까요 ?

아무리 진땀을 빼면서 서서 기다려도 무뚝뚝하신 선생님은 그러면 조퇴허락을 못하겠으니 교실로 다시 돌아가라하시는 바람에 아버지께서 회갑이셔서 오늘 집에 일찍 오라고… 말끝이 흐려버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쳐구니가 없으셨는지 ‘이녀석, 얼른 가라’ 하시며 조퇴증을 즉시 끊어 주셨습니다.이 경험때문에도 나는 교무실에는 또 다시 가기가 싫었었습니다. 왜냐하면 수학 방정식같이 바른 분이라 어떤 대답이라도 잘못 나갔다간 큰 벼락을 내리실 것 이기 때문 이었습니다.

내가 어설피 선생님 책상에 다가가니 시험지 채점을 하시다가 힐끗 보신후 말씀 하셨습니다. ‘교내전에서 네가 그린 그림을 보았다. 미술선생님께서 네가 재주가 많다고 하시드라. 교내전에 출품했던 그런 수채화 두장을 새로 그려서 며칠후 나한테 가져와라. 내가 갖고 싶다. 알겠느냐 ? 알았으면 이제 가도 좋다’ 고, 이렇게 간단한 요구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학교 미술선생님으로는 조각가로 유명하신 김경승 선생님과 연세가 많으신 화가 공진영 선생님이 계신 때 였습니다.

나는 살았다 생각한 후 얼핀 교무실문을나왔고, 다른게 아니셨고 내 그림을 좋아하신데라며 덕수궁에 가서 풍경화 두장을 열심히 그려서 며칠후 갖다 드렸습니다. 그 그림은 덕수궁 담장넘어로 보이는 성공회가 보이는 풍경 이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몹씨 추운 겨울방학, 1957년 1월 14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 입니다.

내가 사는 집은 을지로 3가 대로변에 있는 한 조그만 가게속 방한칸짜리 였습니다. 6.25 사변으로 서울시내는 종로, 을지로 할 것 없이 폭격으로 많은 곳이 파괴 되었는데 을지로 3가 쪽만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이가게를 소유하신 아버지는 납북되셨다 돌아 오셔서 삶림집을 구하지 못하시고 옛날 단층 기와집인 이 가게의 뒷쪽에 아주 조그만 방을 만드셨습니다. 이러한 내집은 누가 나를 찾아 올까봐 항상 근심이 되도록 너무 누추 했습니다. 가족이 살 수있는 집이랄 수 없는 집 이였습니다. 그래도 나는 거기서 아무 말없이 대학까지 다녔습니다.

나는 나의 친구들을 단 한번도 집에 데려온 적이 없었으며 위치를 알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어려서 부터 가장 가까웠던 친구 K도, 또 하나의 친구K도 우리집에 한번도 와 본적이 없습니다.

오후쯤 일까요, 문을 여니 정옥 선생님께서 서 계셨습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고 부끄러워 어쩔줄을 몰라 했습니다. 나의 집안사정을 환경조사서에서 보셔서 다 아시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곧 말씀하셨습니다. ‘자, 나하고 어디 좀 가자’고.

나는 반사적으로 선생님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나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 옥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미술재료를 파는 가게가 어디에 있는지 거기에 같이 가자고 하시며 나를 앞 세우셨습니다. 나는 별생각이 다 났지만 선생님께서 미술도구를 사시려는구나 하고 안심했고 그래서 미술반에서 단골로 미술재료를 구입하는 명동화방까지 걸어서 모시고 갔습니다. 명동공원 앞에 있는 유명한 명동화방은 민씨라는 분이 경영하는 화구전문점으로 거기에 가면 항상 가지고 싶은 화구가 많았습니다.

그 때까지 아무 말씀이 없으시던 선생님께서는 가게에 들어서자 마자 ‘천룡이, 너 유화 그리고 싶지 ? 내가 오늘 너에게 유화도구를 사 줄려고 하니 필요한 유화구를 모두 골라라’ 고 의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나는 그제야 상황을 알아 차렸고, 화방주인 민씨는 연상 웃고 있었고, 선생님은 골르길 기다리셨습니다. 마침내 나는 선생님께서 시키신 대로 유화도구를 이것 저것 골고루 골라 잡았습니다. 우선 유화물감(수채물감 튜브에 비하면 크고 묵직한), 여러 자루의 붓들(뻣뻣하고 탄력있는 둥근 붓과 평 붓), 그림 나이프, 붉은 밤색의 멋쟁이 유화박스와 엄지손고락을 끼고 들게되는 나무 빠렛뜨, 독한 냄새지만 정다운 어느 아뜰리에서나 나는 투명한 텔레핀 한 병, 노랗지만 맑안 린시드 오일 한 병과 빠렛뜨에 끼우는 얄미운 스텐레스 기름통, 접었다 폈다하는 야외 이젤 그리고 흰 캔버스를 욕심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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