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모델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5163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1.12.22. 20: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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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02-11-13

화가와 모델

내가 파리에 도착한 다음해인 1972년, 피카소가 죽었을때 미련한 화가들은

‘자, 우리도 이젠 좀 기를 펴고 활개를 칠 수 있게 됐다’고 좋아 했다.

피카소는 살아 생전에 온갖 명성과 부귀를 누렸을 뿐만아니라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여성편력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화가들이 피카소의 그런 그늘아래에서는 기를 피지 못했었다고 생각한 모양 이었다.

또한 피카소를 시기하던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살아 생전에 누렸던 화려한 명성도 흐지부지되어 피카소도 결국 잊혀지게 될 것 이라는 생각까지도 했다.

그러나 사후 30년이 지났어도 피카소는 살아 생전의 영광을 계속 누리고 있음을 본다.

그 한 예로, 자동차 씨트로엥 회사는 ‘자라’라는 이름의 차를 생산하면서, 그 모델 중 ‘모노 에스파스’ 자동차의 이름을 ‘자라 피카소’ 로 이름지어 내놓으며 히트상품을 만들었다.

이 차의 TV광고가 재밋었는데 이 자동차 모양이 특이하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강조시키기 위해 공장장 감시의 눈을 피해 차 조립 중인 로보트 공들이 아무렇게나 차체에 페인트 칠하는 장난을 힐끔 보여 주고있다.

이를 본 딴 시중의 장난꾸러기들이 길가에 주차해 놓은 자라 피카소를 보기만하면 신이 나서 그라픽 낙서그림을 마구 휘두르는 일이 벌어져 이 일을 당한 차주들이 울상이고 보험회사는 이것에 대한 보상문제를 놓고 고민 한다는 뉴스를 보이고 있다.

반 고호라는 고유명사가 언젠가는 미스테리라는 보통명사를 대신하게 될 것 이라고들 하지만, 피카소라는 단어는 이미 이상한 것, 해괴한 것 이라는 뜻으로 일반화 된지 오래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 괴상한 화장을 하고 다니는 여인을 보면 피카소(그림) 같다고 비꼰 것은 한참 전 먼 옛날 이야기 였다

화가와 모델의 관계는 매우 친밀한 관계 이상일 것으로 흔히 세상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는데 통속소설가들이 소설의 주인공을 설정할 때 주인공의 행동거지를 자유자재로 하기 위해 화가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내 세우는 경우를 보는데 독자들은 그 주인공 화가의 유별난 생각과 부도덕한 행동을 결코 비난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화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자기 마음내키는 대로 사는 완전한 자유인이라 부러워하며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화가는 자유분방한 권리를 누구보다 누릴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면서 그래야 어떤 기발한 생각에서 나오는 창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 것이다.

나는 오늘 전시공간이 하도 비좁아 관객과 작품이 부딛쳐 터져나갈 것 같은 뤽상부르그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모딜리아니 회고전을 관람하면서113점이나 되는 인물화를 새롭게 발견했다.

프랑스엔 원래 모딜리아니의 작품이 많지않고 미국이나 딴나라에 가서도 몇작품씩 흩어져 전시돼있는 것을 보았을 뿐이어서 대부분 개인소장품인 그의 초상화들을 어떻게 그토록 많이 모아놓았을까 놀라웠다.

이런 본격적인 회고전람회를 수시로 볼 수 있다는 것이 파리에 사는 가장 큰 이점이고 가장 큰 행운 이다. 화가가 전시회 다니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온고지신하려면 젊었을 때 일수록 많이 보고 분석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아야 할 일이다.

지금, 이 전시회 말고도 파리엔 3개의 중요한 전람회가 더 있는데, 그 하나가 그랑빨레에서 열리고 있는, 낭만주의 창시자 들라크로아와 바르비죵 자연주의 화파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영국의 풍경화가 ‘콘스터블 전시회’ 이고, 또 다른 하나가 마네에게 있어서 시간을 초월한 스승인 스페인 인물화가 벨라스케스를 ‘마네- 벨라스케스 전’으로 이름하여 뮤제 도르세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으며 마지막 더 하나가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150만명의 관람객을 이미 동원한 후 파리에선 200만명의 관람객이 입장할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마티스와 피카소 전람회’도 다른 한쪽의 그랑 빨레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이 마티스-피카소전은 내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리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 전시회를 보기위해서는 몇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저주받은 화가로 이름난 모딜리아니가 그린 수많은 초상화와 누드를 보면서 그의 가난과 여성편력, 알콜과 마약에 휘말여 요절한 기구한 삶을 생각해 본다. 그의 막판생애에 끼어 들어서 2년밖에 같이 살지못한 20대 순정의 애인 쟌느 에뷔떼른이 뒤 따라 죽어야했던 그런 비극은 과연 무엇일까 ? 전시회를 보고 난 후 한시간 반동안 일부러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에서 내내 나는 이런 저런 화가의 인생에 대한 생각에 잠겼었다.

서양미술의 역사는 우리 동양의 그것 과는 매우 다르게 형성돼 왔음을 인물화에서 잘 들여다 볼수있다.

서양미술은 에짚트벽화, 그리스 조각, 로마 미술, 중세 종교미술 그 다음 문예부흥 르네상스가 더 강조하게 된 인본주의사상의 관렴속에서 내내 내려 온 인물화 중심의 미술이다.
그 미술이 갑작스런 사진기의 출현으로 인하여 화가들의 인물화 그리기 임무가 졸지에 중단됐고 중단과 동시에 인물화 그리는 일로서는 화가들은 더 이상 돈을 벌수 없는 반실업자 신세로 전락 했다.

인물화-초상화에는 그 그림의 주인공이 그려져 있어서, 결국은 그 그림들은 그림의 주인공이 소유하는 작품으로 됐기 때문에 모두가 다 주문을 받아 그려지는 것일 진데, 이와는 반대로 모딜리아니는 꼭 닮게 그리는 초상화가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없는 내면의 세계를 강조한, 눈에 띄는 모습만을 닮게하려는 그림이 아니였기 때문에 누구의 주문도 받을 수 없는 그림이었고 그렇다고 팔릴 수도 없는 순전히 자기만의 작품세계인 순수한 창작품 이였을 뿐이다.

피카소의 오만가지 형식과 기교를 취한 난해한 작품들일지라도 일관되게 보면 피카소도 초상화 작가였고, 인물화가 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종래의 기법을 그대로 구사해 가지고서는 사진기가 찰각하는 순간에 대상을 완전히 포착하는 능력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음으로해서 아예 대상과 닮지 않은 그림을 그리기로 작심하였을 것이다.

닮았다 안 닮았다와는 상관없는 초상화, 가령 아프리카 가면을 씌원놓은 초상화를 그리고 나서 가면처럼 변하지 않는 영원한 얼굴을 그렸다하는 괴변적 추상화, 그려 논 초상화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따 질 수 없는 해괴한 인물화를 그릴 것으로 마음 먹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해괴한 발상을 일으켜주고 기막힌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살아있는 모델은 필요했다.

동양의 산수화가에게 뛰어난 경지의 산수가 필요했듯이, 세잔느가 쌩뜨 빅트와르산을 일생 연구했고 정물로 구도연구를 해서 새세대 정물화가라고 일컬어 질 정도인 것처럼, 혹은 반 고호가 보리밭에 앉아 보리밭을 그리고 까마귀를 그려 넣었듯이 인물화가인 피카소는 생모델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대상이 절대로 필요한 화가 였다.

그런데, 가난한 무명화가였던 청년시절의 그가 몽마르뜨르 언덕 바또 라브와르 라는 엉성한 화실에서 먹을 것도 땔 것도 입을 것도 없으며, 집세는 내야 하는데 어떻게 모델료를 지불할 수 있었겠는가 !

그때나 지금이나 화가가 모델료를 선뜻 지불하면서 생모델로 포즈를 잡게하고 그림그리는 형편이 핀 화가는 드문 법이다.

원래 초상화나 인물화라는 것은 주문을 받아서 그려주고 돈을 받는 것 아닌가 ?

렘블란트가 한때 인기가 충천했을 때 부자였던 것도 인물화 주문이 넘쳐서 였다. 그러나 그가 모딜리아니보다 훨씬 전에 벌써 작가의 독특한 개성이 묻은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주문이 끊켰고 곧 가난뱅이 화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상주의 화가로 부터의 서양화가들은 어디에 종속된 어용화가라는 탈을 벗어 던지기 위해 아카데미 전통을 배격하고 맨발로 길거리로 뛰어 나왔기 때문에 졸지에 빈 털털이 신세로 전락했다. 그들이 그림만 안 그리고 있다면 그야말로 돈 한푼 못버는 순 백수건달들인 것 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독립된 화가라는 게 자기의 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말인즉슨 소위 전업작가일 뿐이겠는데, 그렇게 그들이 개성 덩어리 순수한 작가로 출발했으면서도 배짱좋게 그림 그려서 먹고 살 수 있기를 바랬다.

그렇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 얽매인 전통에서 자주독립하고자 홀로 일어선 작가들은 곧 신세가 처량해 졌고, 동정받는 것은 절대 싫어하지만, 사랑도 해야지, 그러나 사랑을 시작하면 생존의 책임은 그때부터 곱절이 되는 것이니 그 곱절의 생을 감당 못하는 슬픈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피카소는 다행이 아버지가 데생선생일 뿐이어서 화가라는 직업이, 돈버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17살때 피레네 산맥을 넘어 화려한 파리에 입성하고서 부터도, 화가의 고생문이 훤히 열려있음을 단번에 알아 버렸다. 그래서 일상생활은 완전히 실질적이고 여성을 향해서는 철저히 점령적이어야 할 것임을 스스로 인정 했다.

돈을 주고 모델을 모셔와서 시간당 얼마의 모델료를 꼬박 꼬박 지불할 수 도 없거니와 모델을 이해하고 철저히 모델의 전부를 파악하려면, 일정시간만 포즈를 취하게하고 멀리 떨어져 뚫어져라 째리고 바라보며 아무리 그려봐야 걸작은 그려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남보다도 먼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풍경화가가 풍경속에 들어앉아 있고, 보리밭에 파묻혀 있어야 했듯이 피카소는 그리고자하는 여인이 있다면 모델의 내면과 외면 안팎으로 정복해야 할 능력이 먼저 있어야한다고 판단했다. 대상을 피상적으로만 파악해 가지고는 인물화 작가로서 도저히 걸작품을을 만들어 낼 수 없디는 것을 알았다. 모델료를 지불하지 않고 모델로 밤낮으로 다년간 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겠는가 ? 그 여성을 사랑해서 완전히 점령하는 것뿐 이리라. 그러니 이것은 피카소가 생각한대로 바로 꿩 먹고 알 먹는 방법이었다.

그런데다 피카소가 누구의 초상화를 그리겠다고 캔버스를 펼쳐놓으면 노댕큐하면서 대부분 다 도망갈 판 이었다. 그게 어디 자기의 생생한 모습이던가… 너무 망칙스러워 ‘꿈에 보일라' 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복된 모델은 아무런 퉁명스러운 반발없이 묵묵히 모델노릇만 할 것 이였다. 그러니 거의 모든 피카소의 인물화 주인공들은 아무 불평을 할 수 없는 자기의 여인들이거나 자기의 아이들 이였다. 자기 맘대로 아무렇게나 그려도 불평이 없었다.

꿀을 다 따먹으면 벌이 딴 꽃으로 옮겨가듯 냉혈한 피카소는 한 여인으로부터 더 이상 영감을 얻을수 없다고 생각되면 가차없이 여인을 바꾸었거나 이중생활을 시작 했다.

피카소의 여인편력을 남성들 사이에서 좋게 얘기할려고하면 그 또한 끝없는 이야기가 될 것 이다. 창작은 여인과의 사랑으로부터 나온다라든가 성적쾌락은 얼마나 인생을 찬란하게 만드는가 라든가 얼마든지 길게 미화시킬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돈때문일테이만 피카소는 참으로 여복이 많은 행운아 였다. 그러나 그의 여인들은, 맨 나중의 한 여인만 빼고서는, 참으로 불행해지고 말았다는게 매우 얄미운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봉사한 모든 여인들을 좀 더 생각해 주기보다는 피카소라는 한 천재를 위대하다고 사람들은 말할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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