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네번째 애인 도라 마르(Dora Maar)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2923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1.12.19. 09: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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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02-11-11

*피카소와의 만남*

피카소의 네번째 여인이며 모델이였던 도라 마르.

그녀는 피카소와 10년을 동거한 후 버림을 받자 정신병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심한 타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피카소의 유물들을 60년동안 고이 간직한 채 피카소를 만났던 화실근처의 처녀적부터 살던 아파트에서 1997년 91세로 빈곤에 빠진채 비참하게 죽었다.

죽으며 남긴 유언은 자기와 피카소의 모든 수브니르들을 경매에 모두 부쳐 자기에게서 없애달라는 것 이었다.

파리의 전형적인 음침한 잿빛 날씨였던1998년 10월 25일, 파리 15구에 있는 나의 화실에서 도라 마르의 유물전시회를 보기위해서 집을 나섰다.

깜브론느 로타리에서 라오스 골목길로 해서 육군사관학교 건너편으로 프라타나스 노란 낙엽이 이리저리 딩구는 샹 드 마르스공원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엥바리드광장으로 나가게되는 파리 7구에 있는 쌩 도미니끄 좁은 길로 접어 들었다.

나느 급한일이 아닐땐 언제나 걷곤하는데, 걸어서 20분 거리 였다.

이길 중간에 위치한 화학관은 미술작품 전시장소와 경매장으로서는 그 이름이 도시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다.

그러나 벌써 건물 울타리를 따라 사람들은 줄을 길게 서 있었고 줄은 길모퉁이에서 ㄱ자로 꼬부라져 있었다. 서둘러서 꼬부라진 줄 맨뒤에 섰다.

시간이 갈수록 내 뒤로도 끊임없이 줄이 길어지고 있었는데 입장객을 제한하고 있는지 좀처럼 줄이 줄어 들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예 소설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거나 하였는데, 내 앞뒤의 여성들은 소근 소근, 끝도없이 소근거렸는데 어찌나 반복해 말하는지, 혹시나 피카소의 목거리 혹은 반지나 성냥갑 같은 것을 자기 핸드백 속에 들어 있는 크레디카드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들이 들렸다.

나는 세상에 처음 내 놓아지는 피카소의 것, 도라 마르가 일생동안 감추고 있던 유물들을 전시한다니까 어떤것을 가지고 있었길레 하고 보러 온 것 이지만…어제부터 시작된 나흘동안의 전시가 끝나면 연이어 삼일간 도라 마라의 60년간의 우상으로 간직했던 피카소의 물건들은 유언에 의해 경매에 부쳐질 것 이다.

경매회사는 세계미술시장에서의 큰사건인 이경매에 구매자들의 열이 달아 오르도록 해서인지 지난달 9월 25일부터 삼일간은 뉴욕시티 만하탄에있는 필립스사 전시관에서 예비 전시회를 끝낸 후 였다.

두시간 넘게 기다려 전시장에 들어가긴 했는데 우선 그 엄청난 수량에 놀랬다.

그리고 피카소의 위대한 작가적 버릇인 ‘손을 잠시도 쉬게 놔두지 않았던’ 유품들에서 본 그의 모든 ‘장난끼’에 압도됐다.

도라 마르는 카탈로니아의 천재와 사는동안에 생긴, 그와 관련한 모든 흔적을 한 조각이라도 버리지 않고 다 모았다.

피카소같은 천재도 자기 손이 닿은 모든 흔적들이 도라덕분에 고스란히 이렇게 역사에 남게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을 것 이다. 어느 작가든 대개는 가지고 있기에 너무 벅차든가 졸품이라고 종내 여겨지면 아예 불태워 없애 버리고 마는 것 아닌가 !


*우는 여자와 게르니카*

1936년 8월1일이라고 날짜가 명시된 담채화 한장은 도라 마라가 피카소를 만난 날 임을 증명하고 있다.

피카소는 월계관까지 쓰고 주름잡힌 긴 흰옷차림인 제우스신으로 분장하고 높은 대리석의자에 앉아 애견 카스백을 무릎에 앉혀놓고 긴 붓을 뻗쳐서 벽화를 그리고 있다. 그림을 그리면서 화실로 오기로 한 도라 마르를 기다리고 있는 중 이다.

그때 활처럼 휘어진 검은 눈섭에 스카푸를 두른 젊은 도라 마르는 머뭇거리며 아뜰리에 문을 밀고 들어오고 있다.

이 젊은 여인의 집 근처, 세느강 좌안 골목길 쌩 그랑-오귀스땡 가에 있는 이 화실은 바로, 세기의 대작 '게르니카’를 그리 는 장소 였다.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의 도라 마르는 쌀쌀 맞은데다가 약간 오만한 여성이었고 자신이 사진작가이며 화가이자 시인이면서 모델이었으니 이날 만나는 카탈로니아의 천재처럼 그녀도 예술 한다하는 예술가 였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친구이기도 한 도라는 미녀들이면 다 좋아하는 냉혈한 피카소를 유혹하기에 다분히 아름다운 여자 였다.

그러했건만 55살의 피카소는 29살의 이 젊은 여자에게 정복당했음을 보이길 아주 싫어했다.

이런 시작으로 피카소가 열열히 사랑한 도라 마르는 뚜르에서 프랑스 어머니와 유고슬로바키아 아버지사이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테오도르 마르코비치(Theodora Markovitch) 였지만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사이에서 그냥 도라 마르 로 불리고 있었다.

스페인 내란의 참상 을 고발한 그림 ‘게르니카’의 ‘뮤즈’가 된 도라 마르는 이 대작의 제작과정을 사진으로 찍어서 세상에 간접적으로 먼저 알리는데 공헌을 했으며, 동시에 ‘우는 여자’로 피카소의 명화가 되는 울보 초상화의 장본인 이었다.

한 여인과 한 도시가 만난 운명적인 인연, 도라 마르와 게르니카(Guernica)는 두사람사이의 비극적 사랑을 암시하고 있었는데도 그들의 비통한 애정전쟁이 9년동안이나 계속하게 될지를 두 예술가 각기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스페인 시민전쟁 전야에서 부터 벌어진 마드므아젤 도라 마르와의 새로운 연애는 조국에 대한 우려때문에 생기는 불안한 감정이 카탈로니아 화가를 더욱 열열히 부추겼고 세계 2차 대전기간 동안 내내 어렵게나마 지속되다가 전쟁이 끝나자 그들의 사랑도 끝났다.

그리고 피카소는 새로운 사랑인 프랑스와즈 질로에게 가버렸다.

도라 마르는 처음부터 울고 있는 그런 여자는 아니었다.

처음엔 명랑하고 평온한 얼굴을 한 차분한 모습이면서 동시에 관능적이며 발랄하여서 그야말로 활짝 핀 꽃다운 모습 그대로 였다.

초기에 그린 많은 데셍과 도라에게 남긴9장의 유화중 7점의 초상화를 보면 방금 만난 천재에게 새로운 영감을 안겨준 지중해 쪽빛 파도물결과 같이 출렁거리는, 발랄한 모습이기만 했다.

또한 만난 첫해에 그린 일련의 초상화들을 보면 방금 버린 여인 ‘마리 테레즈 에게 깔려 있는 ‘부드러운 윤곽’까지 얹혀진, 육감적인 동시에 온화하면서 화사하고 시적인 우수까지 깔려있는 분위기의 도라 였다.

같은해 9월에 남불 무젱해변가에서 지낼때는 수두인신의 미노스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로 변신한 피카소와 매혹의 도라가 성희를 즐기는 장면이 노골적으로 묘사 됐다. 라비린토스 속의 괴물에게 잡혀간 도라는 사방이 빨갛고 노랗고한 활활타는 엄청난 불길에 휩싸인, 이글거리는 숯불 옆, 야수 피카소의 넘치는 성적 위력 밑에서 에로티즘의 극치를 보이는 관능적 자세를 취했다. 더구나 가미된 잉크색 푸른 피부로 말미암아 이 외설적인 그림은 황홀하리만치 열정적인 욕정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런 사랑으로, 초기행복이 지난 몇달후 피카소는 다시, 헤어진 마리 테레즈 월터를 불러다 꽃왕관을 씌우고 도라의 옷을 입히고 그녀의 초상화를 그렸다.

왜 그랬을까 ? 이런 것이 정말로 알수없는 피카소적인 모호함이었다.

그 까닭에 도라의 얼굴이 편하지 못한 첫번째 징조가 나타났다.

1936년 말년작, 노랑 머풀러에 파묻혀 기댄채, 눈둘 곳을 잃고 있는 도라의 얼굴엔 발랄함이 없어진 분을 잔뜩 바른 ‘가부끼’극을 연상케 하는 일본 가부끼 배우와 닮은 초상화 였다.

더군다나, 도라때문에 자리를 양보해야만 했던 마리 테레즈가 마침내 어린딸 마야를 데려다 놓고 갔을 때부터, 손수건을 깨물고 울음을 참을려는 까닭에 얼굴이 뒤 틀리고 눈물을 마구 흘리는 날마다 ‘울고있는 여인’이 되버렸다.

이때부터 피카소는 여러폭의 도라의 얼굴 ‘울고 있는 여인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피카소는 도라와 헤어진 후의 변명에서 ‘마음의 고통을 한없이 호소하면서 반항적으로 악을 쓰고 울기만 하는 그녀를 차마 볼 수 없었노라’고 했다.

피카소에게 더욱 이상한 것은 , 1939년 1월 21일엔, 같은날, 같은 방에서, 책을 베고 누워 있는 ‘똑 같은 포즈’로 마리 테레즈와 도라를 연달아 하루동안에 그렸다.

이 두 그림으로 두 여성의 특성을 얼마나 잘 구별해서 표현했나를 비교해 볼수있는데, 인물화가인 피카소가 새로운 영감을 얻기위해서 왜 수많은 여성편력을 하였는가 하는 의문을 풀어주고 있다.

마리 테레즈는 차분히 피카소에게 언제라도 순응하고자 하는 맑은 눈매를 하고 곡선 투성이로 된 몸체로 또아리를 틀고 있고, 도라는 첨예하게 대비된 색조에 긴장감이 도는 배경및 주변 분위기에다 눈, 코, 입등 신체기관이 여기저기로 분해되어 흩어지고, 뒤 바뀐 언제라도 폭풍이 몰아 닥칠지도 모르는 험한 형상을 하고 있고 날카로운 손톱까지 뾰죽하게 공격적으로 강조해 놓았다.

이처럼 도라의 찌그러진 눈물투성이의 얼굴은 그때 제작중인 작품 게르니카에서의 주인공들이 됐고 이주인공들은 온 세상에 고통의 절정을 호소하고 있으며 처참하게 울고있다.

*전세계로 흩어진 도라 마르의 유품들*

경매장에서 도라 마르의 우상들을 사람들이 다투어 빼앗아 간 사건을 보고 나는 매우 착찹한 심정을 가졌다.

세계의 피카소 수집광들이 도라 마르가 60년동안 간직하고 있던 우상들을 다투어 빼앗아 갔다.


피카소는 세기의 천재로서 세계의 주목속에서 그의 작품은 부르는게 값이 었지만 그러나 도라 마르에게는 귀중한 수브니르이면서 우상이 되버린 피카소의 흔적들을 한점도 내다 팔지 못했다.

또한 그 수많은 피카소들을 자랑삼아 공개한적이 없었기때문에 세상에선 그 존재를 알지못했고 피카소의 모든 여자들처럼 도라 마르의 이름도 차차 잊혀져 갔다.

사람이 사는 방법은 각양 각색이겠는데 도라 마르가 산 인생도 그 각약각생중의 하나인 것일 뿐 이였다.

인생의 종막에서 신비주의적인 우수에 깊이 잠겨 번민한 도라 마르는 피카소에게 배반당한 슬픔을 통절히 느끼며 자기와 마찬가지로 오직 슬픔속에 잠겨서 수녀와 같은 일생을 살다간 피카소의 여인들을 위해 자기가 간직해온 물건들로 유증하려고 했었고, 마침내는 죽을때 피카소에 관한 모든 물건들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경매에 부쳐 없애 달라는 유언을 남겼던 것이다.

그녀가 간직한 우상의 가치를 알고 있던 몇몇 가까운 친구들은 도라 마르에게 그렇게 궁색하게 살지말고 피카소 한 두점만이라도 팔아서 여유를 가지고 살라고 줄곧 충고해 줬지만 마야가 말한대로 ‘잠을 편하게 자기 위해서’ 한점도 그렇게 하질안았다.

도라 마르의 우상이 되버린 이 피카소들, ‘수브니르’들은 혼자서 바라보고, 꺼내보고, 만지작거리며 애인이 완전히 죽을때까지 60년간 소유해버린 것 이다.

피카소는 장인으로서는 아주 좋은 창작태도인 누구하고 대화중이거나 식사중이거나를 막론하고 아무데서나 닥치는대로 아무 종이든지 찾아내어 거기에 데생이나 크로키를 했고 주위에서 발견되는 어떤 재료로든지 입체나 평면 형상을 만들곤 했다.

도라와 사는 동안은 특히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더 하는 것 이야말로 매일 울고만 있는 도라를 피할수 있는 방법이었을 것 이다.

유화, 괏슈, 판화, 피카소사진, 책, 친필서한과 문서, 사진등등을 비롯하여 무가치한 물건에서 피카소의 손을 거쳐 값어치를 갖게된 것들 ; 레스토랑 종이네프킨, 찢어낸 종이, 혹은 가위로 짤라낸 종이조각에 물고기, 개, 고양이, 마스크, 해골등 피카소가 즐겨다룬 모든 소재들의 데생과 크로키와 채색화, 담배불로 지져서 만든 복슬 강아지, 성냥갑에 그린 그림, 샴페인 병마개와 병마개 철사로 만든 새, 3센티 평방거울에 비친 도라의 얼굴, 무쟁 해변의 조약돌과 연토조각에 주머니 칼로 형상울 색여넣어 패물의 가치가 된 반지와 목거리들, 그리고 수집가들이 늘 탐내는 종이조각품 등등이 진열장속에 수도없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전시장안의 압권인 도라의 눈부신7점의 초상화도 물론 있었다.

동물머리로 된 목거리는 32만 프랑(약7만5천불), 울고 있는 여인은 3천 7백만 프랑, 초록색 매뉴키어의 도라 마르는 2천 3백만 프랑, 성냥갑에 그린 데생일습은 80만 프랑에 낙찰되어 팔려나갔다.

또한 화가 도라 마르가 그린 노기 등등한 검은 시선의 피카소의 초상화는 3만프랑이 경매 시작가격 이였는데 놀랍게도2백70만프랑에 팔렸다.

경매로 도라의 우상들이 산산히 흩아질때 맨앞줄에 앉아서 내내 지켜보고 있던 피카소의 딸 마야는 자기 변호사 롤랑 듀마에게 ‘엄청나군 !’하고 소근거렸다.

마야는 나중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도라가 남긴 모든 작품을 보면서 도라 마르가 나의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알았고 헤어지자마자 즉시 또한 얼마나 무서운 불행을 안고 살았는지 알게됐다고 말했다.

도라 마르는 이 모든 작품들을 임종순간까지 ‘편한한 잠을 자기위해서 자기 곁에 완전히 동결시켰던 것 이다.

경매목록을 만들려고 감정사가 도라 마르의 집에 들어갔을때 상상못하게 많은 피카소의 것에 놀랐다고한다.

유물들 중에는 도라 마르와 살고 있지않았던 때의 피카소도 상당히 많이 수집하고 있었던 것도 발견됐다.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수브니르들은 애인의 전생애를 통한 것으로 전기작가와 화상 그리고 미술관 관계자들, 다시말해서 ‘피카소 절대 지지자’들에게는 보물같은 것 이었다.

그녀가 죽은지 일년 후, 그녀의 우상인 수브니르들이 모두 흩어져 버리는 순간은, 10년동안 피카소와 동거하던 사랑과 미움이 얼키고 설킨 온갖 감정의 희비극이 ‘하나의 발레곡’으로서 대단원의 막이 내려지고 있는 바로 그 순간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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