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섬의 추억 (1) - 그리스 신화의 고향을 찾아서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5744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1.12.12. 20:5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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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2-09-28

기행문이라면 여행지를 다녀온 후 그 감상을 곧바로 기록한 것이라야 하겠으나 메모만 남겨 놓았던 1995년 9월의 크레타섬 여행을, 은퇴한 어느 그리스 고고학자의 일화와 함께 이제야 정리해본다.

이 여행은 1984년에 고대 그리스 유적을 둘러본 후 크레타 유적을 보겠다고 벼르고 벼르다가 무려 11년만에 이룬것이었다.

내가 파리에 온 후 그리스 여행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그리스 신화를 더 깊이 이해해 보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서양미술을 알기 위해선 그리스신화를 알아야 한다.

미술사를 알고자 함은 미술의 흐름을 파악하여서 나 자신의 일을 그 흐름에 띄우기 위함이겠는데, 더구나 서양의 합리주의적인 전통에선 아무리 예술분야라해도 돌연변이나 우연한 창조는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의 미술역사 순례기행은 이런 관심속에서 부단하게 계속되고 있지만 나의 깨닮음은 다녀 볼수록 모자랄뿐이어서 나의 창작의 길은 언제나 미완성적이고 멀기만 하다.

그러나 알고자 한 다면 끝까지 쫓아가 알든가 정반대로 모를려면 철저히 모르던가 둘중에 하나인게 좋다면 나는 전자를 그래도 택하고 있는 것이다.

기원전 2500년경, 미노스문명의 요람지이며 그리스신화의 발상지로서 제우스신이 태어난 크레타섬은 서쪽에서 동쪽끝까지가 260킬로미터, 폭이 15에서 50킬로미터밖에 안되어서 섬 어디서든지 탁 트인 망망한 바다가 안보이는곳이 없다.

이렇게 길다란 띠처럼 생긴, 큰섬이라는 뜻이 담긴 크레타섬은 지중해 한가운데에서 에게해와 리비아해를 북남으로 나누고 있다. 해발 2500미터의 높은 산들이 석회질 흰산맥위에 솟아있고 산맥위에는 4개의 커다란 고원이 있다.

섬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이어진 크레타인으로서의 자랑과 정직성 그리고 외부인에 대한 정중한 예절을 예전과 똑같이 간직하고 있는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으며 수많은 관광객들이 왔다 가지만 옛부터의 황무지 그대로의 자연경관을 너무나 잘 보존하고 있었다.

에게바다의 수많은 섬들은2천500만년전부터 지진과 화산활동이 끊임없었으니 땅속의 뱀이 지진을 일으킨다고 굳게 믿은 크레타사람들은 기원전 1600년전에 만든 도자기 ‘꿈틀거리는 뱀을 두손에 쳐든 여신상’을 섬의 마스코트로로 삼았다.

그러하였건만 찬란하던 미노스문명은 지진으로 파괴돼 버렸다.

기원후, 크레타섬은1204년 십자군 4차 원정때부터 베네치아공화국의 지배를 4세기 동안이나 받았으며,1669년부터는 오스만터키의 침공으로 가혹한 탄압과 함께 캐토릭에서 이스람교로 종교를 바꿀 것을 강요당하니 많은 주민이 산속에 피신해 살았고, 1878년에 마침내 독립해서 1913년에는 그리스에 병합하였다.

지중해 요지에 위치한 까닭에 이와같은 수많은 고난의 역사를 안고있는 흔적들을 섬 여기 저기서 보면서 인간들의 역사란 결국 무엇인가든 쟁탈하기위한 서로간의 싸움박질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나는 파리에서부터 에어 프랑스편으로3시간 비행후 태양도 찬란한 지중해 가운데에 위치한 이락클리온공항에 도착했다.

다음날부터 크노소스궁을 시작으로 버스 차창밖으로 코발트색아니면 쪽빛 바다를 연신 보면서 크레타섬을 한바퀴 도는 유적지 방문을 일주일간 했는데 도중 맑고 투명한 바다에서 잠시간씩 시원하고 상쾌한 수영도 즐길 수 있었다.

5월중순부터 9월말까지의 우기가 아닐때만 개방되는 사말리아 협곡, 해발1200미터의 오말로스 고원에서부터 18킬로미터나 되는 내리막길 산책 코스를 7시간이나 걸려 해변까지 걸어 내려오는 행운을 누렸는데 이경험은 또한 평생 잊을수 없는 추억이 됐다.

이유명한 사마리아 협곡은 갖가지 희귀한 동식물들의 서식지로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자연생태보호지역이었고, 단애의 절벽에 걸린 소나무, 삼나무밭의 향기에 둘러싸인 넓은 자갈밭 계곡과 깍아지른 절벽 양쪽을 밀어서 틈을 벌려놓은듯한 폭이 5미터밖에 안되는 좁은 골짜기문으로 빠져 나가게 되는 바다로 향한 시야는 매우 큰 인상을 주는 것이였다.

육로가 없어 해안에서 다음 행선지까지 배를 탔을 때는 가이드를 따라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 에서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안소니 퀸이 추는 춤을 다같이 추었다.

우리는 처음 도착했던 이락클리온으로 돌아가서 프레스코를 비롯해서 발굴품들의 오리지날을 보관하고 있는 고고학박물관을 마지막으로 관람했다.

<미노스(Minos)문명의 매몰지 크노소스(Knossos)>

기원전 약 2500년에서 1000년까지 그리스신화의 기원이었던 찬란한 미노스 문명은 이락크리온에서 남쪽으로 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크노소스에 있었다.

호머로스의 전설에서 얘기하기를 제우스신은 크레타섬에서 태어나서 님프 유롭을 사랑하여 아들을 낳게되는데 그 이름이 미노스 였다.

왕 미노스는 강력하였고 지혜가 많아 자체적으로 역사에 길이 빛나게 되는 미노스 왕조문명을 탄생시켰다.

19세기에 와서 독일인 의사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은, 장님 호메로스의 시를 하도 좋아해서 되풀이하여 탐독하면서 외다시피했는데 트로이 전쟁의 전설, 아카이아 문명, 미케네 문명과 크노소스 문명의 전설이 실제로 그리스역사속에서 존재했다고 굳게 믿게되어서 의사생활 일찍 은퇴한 후 그 문명들을 찾아내려고 그리스로 가서 미노스 문명을 제외하고는 차례 차례로 그 문명의 존재를 밝혀내고야 말았으니 그는 그리스 문명을 캐낸 공로자 이다.

그러나 슈리만은 마지막으로 크라타섬에 와서는 올리브나무로 뒤덮힌 크노소스 동산을 살려고 했으나 미노스의 유적이 파묻혀 있다는 소문이 이미 너무 많이 퍼져있어서 땅값을 너무 비싸게 부르는 바람에 애석하게도 뒤돌아서고 말았다.

그후 영국의 유명한 고고학자 아더 이벤스(Arthur Evans)가 여러번 와 본 끝에, 1878년에 구입에 성공하고, 1900년부터 발굴을 시작해서 이 신화적 미노스문명을 발굴해 냈다. 그래서 이 발굴은 유롭의 역사를 선사시대이전으로 수천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게 했다.

그런데 어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게 이 오리브나무밭 주인의 이름이 그때까지도 미노스라는 이름이였다.

이미 이 자리에는 기원전 2000년에 세워진 미노스궁이 있었는데 파괴되어 기원전 1700년경에 증축했고, 기원전 1500년경에 또 화산폭팔과 지진에 의해 다시 허물어지고 기원전 1375과 1250년사이에 화재로 더욱 손상됐으나 그런대로 기원전 4세기까지 존재 했었다.

그런데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뒤세우스에서는 대 제우스의 아들 미노스가 자기 이복형제인 무서운 인두인신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어 놓기위해 꾀가 많은 다이달로스에게, 한번 들어가면 절대로 빠져나올수 없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미궁 라비린토스를 만들게 하였다.

그리고는 원수들을 잡아다 미노타우로스에게 먹이로 주었는데, 아테네를 정복한 후 9년마다 한번씩, 소년7명과 소녀7명을 아테네에서 공물로 바치도록하여 괴물의 먹이로 삼으려고 했다.

그러나 공물인 소년7명과 소녀7명을 데리고 온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는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를 단숨에 유혹하였고, 아리아드네는 다이달로스에게서 실을 잡고 다시 나올수있는 ‘생명의 실패’를 받아내어 테세우스에게 전해주고 말았다.

그래서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라비린토스로 부터 탈출해 나와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도망쳤다. 미노스는 대노하여 이번엔 탈출의 비밀을 누설한 다이달로스를 라비린토스에 가두어 놓았는데 그의 기술자들이 새의 깃털을 밀랍으로 붙여서 만든 날개를 다이달로스에게 주고 아들 이까루스와 함께 도망가도록 했다.

그리고 이르기를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이까루스는 그것을 잊고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는 바람에 밀랍이 녹아 날개가 떨어져 에게바다에 곤두박질하고 말았다.

아들은 지금의 이까르섬이 되었고, 아버지는 무사히 이탈리아 꾸메로 도망갔다. 미노스가 다이달로스에게 시켜만든 이 유명한 라비린토스가 크노소스궁이라는 것이다.

언덕위에 위치한 크노소스 유적지는 아직도 화재의 흔적을 간직한채로 있다.

거대한 회랑, 대단히 큰 규모로된 우물모양의 곡물창고, 어마어마한 황소가 부조되있는 현관, 왕좌가 그대로 있는 집무실, 하인들의 방들, 넓은 계단, 층층으로 있던 방들의 흔적, 유명한 돌고래 프레스코가 있는 여왕의 방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욕조, 놀라웁게도 수세식 화장실등등의 화려한 시설과 도시국가로서의 장대한 규모에 세세히 배려한 편리한 주거환경 즉 요새 말하는 도시계획까지한 실로 놀라운 문명을 개발했던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적을 방어하기위한 높은 방벽이나 도시를 요새화한 흔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지진과 화산에 의한 천재지변을 빼고는 평화롭고 살기좋은 나라여서 그처럼 황금의 문명을 이룬 것이다.

이렇게 파괴되고 황폐된 곳에서는 프레스코 벽화와 같은 회화작품은 남아나기 어렵다. 개중에 남은 것은 파손된 일부이거나 후에 수선해서 복원한 프레스코였다.

상형문자를 나선형으로 적어나간, 아직까지 아무도 해독을 못하고 있는 점토원반과 곡예 투우를 하는 대형프레스코를 비롯하여 모든 오리지날은 이락클리온 고고학박물관에 있었다.

오리지날가운데 ‘머리를 신성하게 잘 딴 여인’은 조그만 파편조각에 불과한 가장 오래된 프레스코였지만 원작 그대로 생생히 남아있어서 그때의 화려하고 명랑한 여인의 생활상을 잘 짐작하게 해준다.

이 여인에게는 나중에 ‘빠리지엔느’라는 별명이 붙혀졌다. 왜냐하면 이 여인은 현대여성으로 보일만큼 화장술이나 표정이 매우 세련되어서 ’빠리지엔느’라 할 정도로 화사한 맵시가 보였기때문이었다.

약간 들창코에다 장난끼까지 있어보이는 깜직스러운 얼굴에 아주 큰 눈을 가지고 있는 이 여인은 어떤 신성한 의식에 참석하기 위해 몸치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선명한 색상위에 굵은 선들을 대담하게 사용해서 데생한 것이 영낙없이 20세기 화단의 질투와 라이벌 사이였던 마티스와 피카소가 멋들어 지게 그린 여성 이다.

이 ‘머리를 신성하게 잘 딴 여인’을 보고 나니 그 대가들이 이 미노스 여인을 사진판으로라도 먼저 훔쳐 보았음이 틀림없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그림은 에짚트벽화의 정면성을 그대로 계승했다. 수선해서 복원한 ‘푸른배경의 세여인들’ 과 ‘왕 혹은 왕자-사제장’ 같은 프레스코도 얼굴은 프로필, 눈은 정면에서 본 눈, 어깨와 가슴은 정면, 하체와 발은 측면 이렇게 에짚트벽화에서의 정면성의 법칙의 틀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고있다.

그렇게 보면 피카소가 입체주의 화풍을 시작할때 에짚트 프레스코에서 분명히 영향을 받았노라고 했으니까 마티스보다는 피카소가 이‘빠리지엔느’에 더 가깝겠다.

그런데 에짚트벽화에서는 모두 공간과 시간이 정지된, 판에 박힌듯한 무표정함 앞에서 영원성을 본다면 크노소스벽화에서는 생활인으로서의 사랑스러운 인간적인 감성을 자연스레 나타내어 살아 있듯이 표현한, 전혀 태고적인 거리감을 느낄수가 없어서, 지금, 이 여인과 함께 나도 숨쉬고 있는것처럼 현실적인 친근감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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