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미술과 原生미술(art brut)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5100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3.17. 23: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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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3-16

S형,

1960년대 할리우드 영화 중에 로보트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는 만화 같은 영화가 있었습니다. 가난한 화가가 억수로 행운을 가져 다 준다는 여인과 결혼하여 단박에 유명해져서 부자가 됩니다. 돈방석에 앉게 되니 그림 그리기가 귀챦아져서 로보트에게 그림을 그리게 합니다. 어느 화사한 봄날, 화가는 로보트에게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 봄 ≫을 들려 주면서 ≪ 아름다운 봄 ≫을 그리게 합니다.

내가 아는 분 중 어린이 만화영화를 좋아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이제는 더 이상 만화영화를 보기 싫다고 해서 이제 겨우 어른이 됐나보다 했더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요즘 나오는 만화영화의 그림이 참아 보아 줄 수 없을 정도로 못 그렸기 때문이라는 이유 였습니다.

그런 말을 들은 후 나도 어느날 아침 엉터리로 그린 만화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부모들이 늦잠을 즐기는 주말의 아침 시간이라 모든 TV 채널은 어린이를 상대로 한 만화영화만을 방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 저것을 유심히 비교해 보니 어떤 것은 아무리 어린이들을 상대로 그린 만화라고 하지만 그림을 너무 날림으로 그린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만화니까 본래의 형태를 무시하고 저렇게 간편한 형태로 그려서 보여 줄수 있지 않겠느냐할지 몰라도 간편이 지나쳐 순 엉터리로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TV만화영화는 전 세계의 많은 어린 아이들이 거의 매일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는 비단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처음으로 움직이는 그림을 보는 어린아이와 어린이들에게 제대로 잘 그린 질 좋은 만화를 보도록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 추하고 일그러지고, 왜곡되고 과장된 형상이 과연 어린이들에게 아름다운 꿈을 심어 줄 수 있을까요? 보는 동안 움직이는 엉터리 형상은 어린아이들의 상상력을 앞지르고 있어서 그것을 따라 다니기에 어린이들은 정신이 없을 것 입니다.

언제부터 인가 만화 제작이 대기업화 되었고, 일본, 한국 그리고 프랑스 순으로 다량 제작하고 있다고 합니다. 만화영화 업자들은 상업적 이익만을 추구해서 그림 재주가 없고 임금이 싼 화공들로 하여금 단지 기계적으로만 그리게 함으로써 점점 더 저질이 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텔레비전 토론에서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질 영상의 문제는 만화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 전 TV 어린이 교육 방송이 방영한 어린이 미술시간을 보고 분개한 적이 있습니다. 전에도 다루었던 같은 테마를 다룬 것 이었습니다만. 그것은 어느 유치원(탁아소)에서 음악을 들려 주면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을 르포르타쥬한 것 이었습니다. 어린이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반사적으로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지 보여주는 실험이었습니다.

그 실험은 이렇게 진행됐습니다.

유치원 보모는 아이들에게 지금부터 음악을 들려 줄테니 음악에 맞추어 너희들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 보라고 말했습니다. 교실 벽에는 넓다란 도화지를 붙여 놓았고 책상 위에는 각종 물감을 풀어 놓은 그릇들이 놓여 있습니다. 가운을 입은 아이들은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릴 태세를 취했습니다.

보모는 음악을 틀었는데 그 음악은 놀랍게도 베토벤의 ≪ 운명 ≫ 교향곡 이었습니다.

음악이 시작되자 빠른 선률은 조용하던 어린이들의 마음을 성급하게 다그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이들은 크레센도로 강해졌다가 약해졌다가 하는 음악의 흐름에 따르자니 처음부터 눈 코 뜰새 없이 바빠 졌습니다.

어린이들은 곧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 빠졌습니다. 물감통에서 무슨 색인지 아랑곳 하지않고 닥치는 대로 물감을 찍어 도화지에 칠합니다. 그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고 물감을 흘리고, 묻히고, 문지르고, 튀기고 하는 것이어서 금방 난장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는 보모는 어처구니 없게도 잘 한다고 손뼉을 쳐 주었습니다.

한 어린이의 붓질이 과격해지자 다른 어린이들의 붓질도 덩 달아 과격해졌습니다. 삽시간에 교실은 걷잡을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어린이들은 이제는 붓을 내동댕이 치고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벽을 문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이들의 하얀 가운은 물감으로 금새 얼룩졌고, 얼굴과 머리카락도 온통 물감을 뒤집어 쓴 가운데 힘찬 음악은 쉴 새 없이 들려 오고 있어 어린이들의 손도 따라서 쉴 새 없이 바삐 움직여야 했습니다.

이런 야단법석이 10여분 흘렀을 때 보모가 음악을 꺼 버리니 천방 지축으로 분주하던 어린이들의 손짓도 일시에 멈췄습니다.

이것이 어린이가 음악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하는지를 본다는 미술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을 재미있는 프로그람이라며 TV방송이 소개한 것 입니다.

그것은 재미있을지는 몰라도 미술교육으로는 백해무익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린이에게 미술의 조화가 어떤 것인지 순서 있게 표현하도록 가르쳐 주는 대신에 음악으로 충동질하여 그림을 무질서한 유희(해프닝)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나는 테레비젼 스크린 앞에서 그 방송사를 향하여 마음속으로 잘못된 방송이라고 꾸짖고 있었습니다.

1970년대에 벌써 어느 국제 아동 미술대회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그려라 해서 그런 것을 해 본적이 없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모두 실패했다는 얘기를 듣었을 때 그런 넌센스가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음악 감상후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서 미술 작품을 만들었다면 얘기가 되겠습니다만 -.

어린이 그림을 처음으로 흉내낸 화가는 뒤뷔페(Jean Dubuffet)입니다. 그는 두번이나 화가가 되기를 포기했다가 1941년 40세가 넘어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말년에 작업한 것 중 하나는 뉴욕 체이스 맨하탄 은행 앞뜰에 세워 놓은 기념비적인 거대한 입체물 입니다. 그 12 미터 높이의 입체물은 나무를 형상화 했다고 하는데 거대한 독버섯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 흰 덩어리 표면은 검은 선을 끊기지 않게 그어 논, 곡선과 곡선이 둘러싸서 만든 우구려진 면을 보게 하고 있는데 그 작품을 이해 하는 것은 어려운 수수께기를 풀어야 할 것 같이 애매 합니다.

그는 미술학교출신의 아주 지성적인 화가였으나 칠전 팔기 재기했을 때는 철저한 반전통주의자들인 아방 가르드 대열에 서서 일부러 서투르게 장나친 것 같은 화풍으로 그림을 바꾸었습니다.

그가 화가가 되기를 포기했을 때 포도주장사로 돈을 많이 벌어 놓았기 때문에 그림을 다시 시작했을 때는 그림을 팔아야지만 생활을 할 수 있는 절박한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던 것 입니다.

그의 장난끼 넘친 화풍은 어린이의 유치한 그림, 길거리 벽에 어지럽게 그려놓은 낙서 같은 그림, 혹은 정신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그림들을 흉내 낸 것 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이른바 기교를 부리지 않은 미술이라는 뜻으로 해석해 볼 수 있는 ≪ 아르 브뤼트(Art brut : 原生미술) ≫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당시의 아방 가르드들은 전통 미술과의 투쟁은 전통을 아주 잘 따라서 계승하는 것 보다는 반전통적인 화풍을 내 세우는 길이 투쟁에서 승리하는데 더 빠르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방 가르드들은 오른손 잡이가 오른 손으로 그리면 전통적인 그림과 너무 닮게 그리기 때문에 일부러 왼손으로 서툴게 그리고자 했습니다. 배우지 않은 원초적 그림재주를 부리고자 한 것입니다.

전통 미술을 배울 재주와 능력이 없어서 아방 가르드의 길을 택했거나, 미술학교를 다녔어도 데생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현재의 아방 가르드 하고는 전혀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뒤뷔페는 자기그림은 인텔리(미술관)들을 상대로 한 그림이 아니고 서민을 상대로 한 재주를 안부린 서툰 화풍이라고 주장 했지만 그는 서민들로부터도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꾸밈 없다는, 자칭 서민적 이라고 한 화풍이 오히려 전통미술 작품보다 이해 하기가 어려웠고,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의 작품은 갈수록 난해해 졌습니다. 록펠러 재단이 그의 말년의 작품을 구입하기 전까지 그의 작업을 눈 여겨 본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아동미술에 대해 피카소도 애매하지 않은 견식을 가졌던 화가입니다.

피카소의 괴상한 그림을 꼬집기 위해서 신문기자가 당신의 그림을 모두 예술적이라고 하는데 어린아이들의 그림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피카소를 궁지에 몰아 넣으려는 질문이었습니다.

피카소는 그 질문에 대하여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과 같이 대답 합니다.

≪ 아이들의 그림은 그 상상력이 빼어나고 그 표현은 대단히 아름답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아이가 나이를 더 먹어서 사리를 파악하기 시작할 때쯤 되면 다시는 그런 그림을 그리지 못합니다. 예술은 창조력을 끊임없이 개발해 내야 하는 것인데 그 지속성은 화가의 강력한 의지와 집요한 의도에 의해서만 생기는 법입니다. 아이들은 어느 기간 동안만 의식 없이 그렇게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일시적인 것이어서 예술이 될 수 없습니다. ≫

아동미술에 대해서 한 작가 뒤뒤페는 이렇게 아르 브뤼트라고 했고 또 한 작가 피카소는 상상력의 지속성의 부족함을 얘기 했던 것 입니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문학 소년-소녀지만, 어른이 된 후에는 한 줄의 글도 겁이 나서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는 수가 많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사리 판단력의 생성과 비례해서 예술적 창조력은 반대로 점점 줄어 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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