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미술의 횡횡을 보며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5115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3.17. 23: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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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3-2

S형

요즘 파리 조르즈 뽕삐두 센터는 기존의 전시작품을 치우고 그 대신 설치미술작품을 많이 진열해 놓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치미술 중에는 시중의 헌옷가게를 통채로 옮겨다 놓은 것 등 도저히 예술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냥 물건들이 많습니다.

다다이스트 마르셀 듀샹이 변기를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장에 갖다 놓으면서 ≪ 레디 메이드도 내가 선택하면 예술이다 ≫라고 한 美學이 끝난 것이 언제인데 그 비슷한 짓들을 이제 와서도 다시 되풀이들 하고 있습니다.

미술관뿐만 아니라 일반 전시장에서도 무엇을 해 놓았는지 알 수 없는 이러한 설치 작품들을 많이 보여주노라 정신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미술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내 놓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조형물과 형상을 보노라면 참으로 한심합니다.

나 자신이 화가이면서도 미술이 미술의 길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러한 길로 어디까지 갈 것인지, 질려 버리기도 하고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불쾌한 충격으로 인해 며칠동안 구역질이 나게 됩니다.

화가의 입장에서인 나는 다른 창작자를 함부로 비난하거나 무턱대고 옹호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미술이 아닌 것을 가지고 전시회라고 열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 것은 미술인으로서 죄악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미술가들의 불가사의 한 재능은 새로운 조화를 항상 창조해 냈습니다. 조화의 동의어는 아름다움입니다. 꺼꾸로 얘기해도 모든 아름다운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조화를 이루고 있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술가의 재능에 의해서 탄생한 작품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움 그 자체로서의 예술인 것 입니다.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자연은 아름답기 때문에 미술은 ‘자연의 모방’ 이라고 동서양에서 똑같이 말해 왔습니다.

휫슬러(‘첫 아뜰리에에서의 실패’ 참조)) 가 시도한 명제인 ‘색면의 구성’과 북유럽 표현주의 화가들이 시도한 ‘구성과 표현’이라는 심미학적 낱말이 자연의 모방이어야하는 미술의 역사에 등장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도 미술은 근원적으로 새로운 조화를 또 창조해내는 것이기 때문에 구상, 추상 그리고 비구상 할 것 없이, 묘사하고 구성하고 표현한 작품들은 모두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니 그것 모두는 예술세계 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미술을 미학적으로 정의 해서 말하기 시작한 것도 미술이 태어난 시점에서 보면 그 역사가 일천할 뿐입니다. 기원전 3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원시 동굴벽화는 원시인들이 사냥하고자 하는 짐승들을 그려서 사냥이 잘 되도록 매일 기원하는 순수한 그림 입니다.

기원전 3000년 전의 이집트 피라미드에 등장한 프레스코벽화, 부조와 조각은 죽음 뒤에도 영생한다는 믿음에서, 죽은 자와 같이 있어 줄 부장품 대신에 영원히 변하지 않을 형상을 그려놓고 조각해 놓았습니다. 거기에 적용된 미술 양식인 아주 엄격한 정면성의 법칙은 3000년 동안이나 바뀌지 않고 줄기차게 지켜져 왔습니다. 이집트 화공들의 연습한 습작품을 보면 정면성의 법칙이 아닌 요새 현대화가들의 데생과 아주 유사했는데도 정작 프레스코그림에서는 자유스러운 표현을 철저히 사용하지 않았던 것 입니다.

그리스 미술에서도 이상적인 인체의 비례를 추구하는 엄격한 규준이 지켜졌으며, 비잔틴 미술은 성서 이야기 외에 다른 것을 상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철저한 기준 아래서만 형상을 만드는 것이 허용 되었습니다.

14세기에 파도바 성당 프레스코를 그린 지옷또를 근대 서양미술의 시조로 삼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이름없는 화공이 아니라 한 화가의 철저한 재능이 개성적으로 발휘된 최초의 회화였기 때문입니다. 지옷또로 부터 개성이 등장하기 시작한 회화는 진전을 거듭하여, 마침내 한 화가의 능력에 의한 완전한 조화를 이룬 창작품으로 평가되는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탄생된 것 입니다.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모나리자보다 더 완벽한 그림을 누구도 다시는 그릴 수 없다고 자기들 마음대로 판단한 한 무리들이 일차 세계대전중인 1916년 츄리히에서 선언한 반 미술운동이 이른바 ‘다다이즘’ 이였습니다. 그리고 전통적인 화구인 유화물감이나 캔버스를 거부한 슈비터스(Kurt Schwitters)를 추종하여 전통 미술은 완전히 죽었다고 여기는 아방 가르드들도 수도 없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전통 미술을 죽인 다다이스트나 아방 가르드들도 그들이 더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해서는 다시 전통 미술로 돌아가서야 그 해답을 찾아 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간략한 미술의 변천사 일 것 입니다.
아방 가르드들의 반미술적인 행위들은 결국 미술 고유의 사명을 받들어 더 심미적으로 향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심한 미술운동들이 어느 일정기간 동안 일어 났다가 방향을 잡고 다시 전통속에 들어와 새로운 미학을 정립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싫어 하고 배척하려는 것은 요즘 점점 더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일시적이며 덧없는 설치미술, 비데오 미술, 그리고 해프닝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변태적인 미술입니다. 미술의 변태적인 형태이기 때문에 참다운 미술창작품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욱 위태로운 것은 이 변태적인 미술을 부추기며 옹호하는 평론가와 미술담당 기자들 입니다. 그들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이런 류의 미술이 팽창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거들고 있습니다. 변태미술을 비호하고 있는 큐레이터들도 또한 문제 입니다. 이들은 각 나라의 현대 미술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력들 때문에 세계 여러 곳의 유명 국제전이 변태적인 미술형태가 판치는 독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불협화음은 본능적으로 듣기가 싫은 것 같이 조화가 안된 추하고 어지러운 형상도 보기가 싫은 것은 당연한 사실 입니다. 미술품을 감상하려면 전시장에 가야 하는데 전시장에 들어 가려면 어떤 땐 입장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흥미가 없어서 가 볼 마음이 없으면 미술관, 화랑 혹은 그룹전, 공모전, 비엔날레 같은 것을 열고 있는 특별 전시장에 가지 않으면 그만 일 것 입니다. 그러니까 보기 싫은 전람회는 보러 가지 않고 싫은 작품은 안 보면 되는 것 아니냐할텐데 실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매스콤이 변태적인 미술 사건을 크게 보도하여 호기심 밖에 없는 대중과 엽기적인 것을 추종하는 악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무슨 새로운 미술운동이 또 하나 힘차게 벌어 지고 있는 물결처럼 선전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변태적인 미술을 통 털어 ‘싫은 미술’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이러한 매스 미디아의 과장보도는 젊은 미술 지망생들을 자극하여 터무니 없는 모방이 나오고, ‘싫은 미술’을 하는 아류들이 줄줄이 생겨나도록 부추깁니다. 특히 미술의 전통이 취약한 나라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비와 시간을 들여서 이런 변태미술을 멀리까지 보러 가서 그러한 현재의 경향을 배워 그 물결에 얼른 합류하고 싶어합니다.

‘싫은 미술’을 하는 사람들은 조화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고 무조건 아무 것이나, 더 아무것이나 보여 주기만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상자는 관람객인 대중이 아니고 그것을 터무니없이 평가 해 줄 평론가와 기자들 입니다.

그들은 전통미술을 무조건 배척하는 반 미술적인 이론에 편승하고 있습니다. 그 이론 이라는 것도 실상은 매우 부정확한 것 입니다. 그들은 일시적인 기행(奇行)을 일삼는 헤프닝이나 유행병처럼 퍼진 조립했다 부셨다 하는 설치물, 그리고 전원이 끊기면 시체나 다름 없는 덧없는 비디오 작업에 의해서 일약 스타가 되려는데에 승부를 걸고 있는 것 입니다.

싫은 미술을 하는 사람들은 무슨 철학자다운 지식인 흉내를 내면서 자신들의 작품이 사회의 현상을 옮겨 왔다고 강변하거나 사회를 고발한 행위인양 위장 합니다. 그러한 모호한 미학 이론으로 무장을 하고는 마치 새로운 비전을 창조해 내고있는 양하며 미술의 본질을 농락하고 있습니다.

물론 새로운 미술의 출현이 언제나 전통미술 수호자에 의해서 심한 배척을 받아온 것은 사실 이였습니다. 새로운 미술을 일으킨 사람들이 작품만 남기는 순교자로서 억울하게 희생된 경우는 지난 100여년 동안 적지않게 많았습니다.

근대 미술사에서 이런 억울한 배척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평론가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미술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던 선배들의 오류를 혹시 되풀이하지 않을까하는 예민한 이유로 신경과민에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경향같아보이는 어떤 것이든지 등장하기만 하면 그것을 치켜 올리면서 자신들의 무식함을 감추며 인정해 버릴려고 합니다. 그것을 감식하지 못하면 위선자가 될지언정 무식할 것이니까 입니다.

창작품은 작가의 영역 입니다. 작가가 창작일로 시대에 앞서 가는 영역이기 때문에 아무리 선경지명을 가진 평론가 일지라도 그것의 예술성을 작가의 작업과 동시에 파악해 해설해 나가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 입니다. 현재 작품의 진가가 후세에 가서야 밝혀지게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위선적인 돌팔이 평론가들은 새롭다는 것에만 홀려서 제작자, 매스미디어, 큐레이터들과 합세하여 음모적인 권력을 만들어 미술계에 군림하면서 억지로 만들어 낸 맞춤 이론과 짝맞추어 이들 변태미술를 비호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진정 새로운 미술의 요람 역할을 해내야 할 각종 국제전이나 비엔날레전에서 기상천외하고 전대미문의 (미술)사건만을 유도해 내려고 다투어 온갖 변형된 형태의 미술을 선보일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이 정신적으로 즐길 수 있는 참다운 미술의 영역은 줄어 들고 부담되고 짜증나는 ‘싫은 미술’ 만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세계의 대형 현대미술관들 조차도 이러한 경향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매스 미디어보다도 먼저 자기네가 변태미술을 차지해서 변태의 선두에 서겠다는 것 입니다. 죠르주 뽕삐두 센터는 전시품의 절반 이상을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시적인 덧없는 설치과 비디오로 대체해 놓고 미국미술관들과 경쟁하려하고 있습니다.

미술사에서 이와 같이 인위적인 방법에 의해서 새로운 (싫은) 미술이 100 %로 예술품으로 대우를 받으며 (전통)미술계 속에 쉽게 자리하게 된 적은 일찌기 없었습니다. 더구나 전시회 기획자에 의해서 반 강제적으로 대중들에게 서슴치 않고 소개는 방침도 일찌기 미술관 역사속에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시대 미술의 순교자는 새로운 미술운동을 한다고 날 뛰는 무리들 중에 있지 않고, 오히려 전통미술을 승계하면서 조화로 창조해 나가려고하고 있는 그늘에 가려진 고독한 또한편의 무리들 중에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미술관이라는 곳은 사실상 미술작품의 무덤이고 작가의 무덤 일뿐 입니다. 그야말로 요즘 한국에서 잘 쓰이는 단어인 ‘검증된’ 미술품들이 영원히 쉬는 곳 이겠습니다. 그 무덤에 영원히 쉴 자세로 일찍부터 들어 앉은 ‘싫은 미술품’들은 지금 관람객들을 향해서 자기작품세계를 이해 못하는 병신들이라고 비난하게되는 세상이 되버렸습니다.

악보와 악기 없는 음악, 글자와 문법 없는 문학, 수학과 설계가 없는 건축이 존재해 있다면 그 것 처럼 이제 미술은 제멋대로의 현대인들이 너도나도 쉽게 망가트려 놓기 십상인 한낱 장난감 신세가 돼버린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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