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코에 그려본 고구려벽화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5280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3.11. 16: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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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2-5

S형,

이탈리아를 처음 여행할 때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와 같은 대가들을 찬양하면서 놀라기 전에 먼저 놀라웠던 점은 르네상스시대의 모든 건축물의 안팎이 장인(匠人)들의 손길로 완전히 뒤덮여 있다는 사실 이었습니다.

조각, 그림, 프레스코벽화, 타피스리, 모자이크등이 대부분 차지하고도 남은 빈 공간도 그냥 빈 채로 내 버려 두지 않고 대리석 무늬를 맞추고, 회벽을 빈틈없이 손질하여 문양을 넣고 채색한 것을 보았을 때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만이 문화의 전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건물외관도 마찬가지여서, 벽과 기둥을 비롯해 문짝이나 창문도 가만둠이 없이 부조(浮彫)를 세겨 넣었고 문양을 조각해서 장식해 놓았습니다. 이것은 분명 그 때 그 시대의 건축 양식이었을지언정, 그 많은 갖가지 정교한 장식이 조화를 이루도록 해놓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미술장인(美術匠人)들이 필요 했을지 상상조차 못 할 지경 이었습니다.

이 엄청난 장식 작업에 참여한 화공(畵工), 석공(石工) 목수(木手), 미장공(美匠工), 칠공(漆工 ), 땜장이 등등 수많은 장인들이 남긴 용의주도한 손길을 보면서, 건물이 세워지고 도시를 형성하기 까지의 노고와 인내에 대하여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입니다.

르네상스 건축과 미술은 부유한 후원자의 지원과 옹호를 받은 당대의 천재들이 발휘한 솜씨에서 나온 걸작품인 것만 분명하지만, 수많은 도제(徒弟)며 부지런한 조수(助手)와 장인들의 이런 정성어린 협조로 된 밑받침이 없었더라면 문예부흥시대는 결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습니다.

건물이 건물을 이어 가면서 도시가 되고 나라(도시국가)의 형태가 잡혀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르네상스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주인공들이 위대한 미술가(건축가, 화가, 조각가)들 이었다면 이와 같은 미술가들을 저마다 많이 양성하기 위해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미술학교가 필요 했습니다. 그러므로 미술학교는 몇몇 천재를 배출시키기 위한 미술교육기관이기 전에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건물을 짓고 그 안팎을 치장하기 위한 미술인들을 전문적으로 키우고자 한 기관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는 파리에 국립고등 미술학교와 국립고등 장식미술학교가 있어서 거기서 미술가(건축가, 화가, 조각가등)들을 배출 했습니다. 이와 병행하여 역사가 오래된 국립 기술직업 학교(Conservatoire National des Arts et Metiers)에서는 여러 분야에 종사하게될 장인들을 배출시켜 왔습니다.

파리미술학교와 파리장식미술학교의 교육 프로그램 속에는 건축과 장식미술에 관한 실기 교육인 벽화 (프레스코), 모자이크와 따삐스리등을 전공으로 하거나 필수선택과목으로 학생들이 배우도록 정해 놓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이들 중 두 과목을 필수선택으로 배워야 했습니다. 나는 책을 통해서만 알고 있었던 프레스코와 모자이크 기법을 실제로 터득해 보기 위해서 그 수업을 선택 했습니다.

프레스코 아뜰리에는 그리 크지 않아서 한번에10여명의 학생만이 수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교정의 골목길을 따라 회반죽 냄새가 깊이 베어있는 구석진 아뜰리에로 가는 길 양쪽은 야외 조각 아뜰리에 였습니다. 그곳은 돌을 쪼고 철을 용접하여 조각작품을 만들고 있어서 항상 어수선한 석공소(石工所)나 철공소를 방불케 했습니다.

프레스코 아뜰리에에서 교수는 각 학생들에게 폭 1미터정도 되는 벽을 배정해 주었습니다. 배정된 벽에는 먼저의 학생이 만들고 학점을 받은 프레스코 작품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어서 우선 망치와 징으로 그것을 부셔 털어 냈고, 회 반죽이 잘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도록 곰보벽을 만들었습니다. 이 아뜰리에는 천정창으로부터 외광을 받고 있을뿐 온 사방이 벽 이였습니다.

‘프레스코(fresco)’라는 뜻은 본래 ‘채 마르지 않은 회벽’이라는 뜻이며 회벽을 치고 회벽이 프레쉬(fresh)한 상태에서 재 빠르게 그림을 그린다는 의미를 줍니다. 회벽이 축축한 상태로 있을 때 수채(수채기법)로 그리기 때문에 채색이 회벽에 스며 들면서 굳어 갑니다. 아마도 이 기법은 실내의 벽을 정리하기 위해 쓸 회를 반죽할 때 안료(자연안료)를 넣고 섞어본 경험에서 생각된 기법 이었을 것 입니다.

프레스코 시간에 먼저 학생이 작업한 프레스코를 부시고 털어낸 다음에 하여야 할 작업은 회를 개는 일 이었습니다. 부대에 들어 있는 회를 반죽용기에 붓고 물을 부어서 흙손으로 잘 배합하고, 준비된 곰보 벽을 물로 축축하게 적신 다음 그 잘 반죽된 회를 흙손으로 벽에 착 달라 붙게 붙인 후 벽면을 판판하게 다져야 했습니다.

회벽화면의 크기는 대강 가로 세로 80-100cm정도였는데, 그것을 제대로 만들기가 여간 까다롭고 힘드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회(石灰)의 성질을 알고 프레스코를 하기 위한 판판한 벽을 잘 만들려면 영낙없이 미장이일을 완벽하게 먼저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들이 연습해 볼 프레스코 그림으로는 창작품은 허락이 안됐고 옛 프레스코를 복사해 보는 수업이었는데, 웬일인지 에집트 벽화를 복사해 보는 것은 금지 됐습니다. 그 이유를 거쳐간 학생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너도 나도 모두 에집트 벽화만을 택하기 때문일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약방에 있는 병처럼 각가지 색 가루물감을 약품처럼 덜어서 작은 용기에 담고 물에 풀어서 수채화 그리듯이 그렸습니다. 그런데 붓이 닿아서 일단 스며들면 수정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에스키스(초벌 그림)를 정확히 만들고 연습한 후 빠른 솜씨로 단 숨에 그려야 했습니다. 이른바 속전속결(速戰速決)이어야 했습니다. 나는 고구려 고분벽화 중에서 통구에 있는 무용총 수렵도의 한 장면을 복사했는데 교수는 고구려벽화의 명성에 대해서 아주 소상하게 잘 알고 있었습니다.

프레스코는 큰 무덤의 내부 벽에 무덤 주인이 살고 간 긴 이야기를 차례대로 그렸거나, 성당의 넓은 벽과 천정에 성서(聖書) 이야기를 순서대로 그려서 펼쳐 놓은 길고도 넓은 ‘이야기 벽화(프레스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프레스코 벽화란 무덤이나 건물내부에 회벽을 치고 회벽 위에 그림을 그려 넣는, 말하자면 ‘붙박이 그림(벽화)’이면서 이야기를 연달아 그림으로 그렸기 때문에 ‘프레스코벽화’라면 일반적으로 규모가 큰 ‘대벽화’를 의미합니다.

그런가 하면 문학에서 말하는 ‘한편의 프레스코’라는 표현은 한 시대나 한 사회를 총체적으로 장엄하게 묘사한 대작품을 지칭할 때도 이 표현을 씁니다.

프레스코는 회화기법(재료)에서 가장 오래된 장르입니다. 동양화는 재료가 물과 화선지이고 서양화는 기름과 캔버스라는 큰 구분이 나타나기 이전에는 동서양은 프레스코라는 회화양식을 다같이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에집트 피라미드 벽화에서 부터 크레타 섬의 ‘미노스의 빠리지엔느’, 폼페이 벽화 , 실크로드의 돈황벽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고구려 고분벽화, 서양미술의 문을 연 지오또(Giotto)의 프레스코(파도바 스크로베니 소성당), 레오나르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담은 웅장한 천정화(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등이 모두 프레스코 벽화 입니다.

프레스코의 한 예로 여기 from.60 ‘포토 에세이’ 난에서 지금 꺼내 볼 수 있는 사진판, ‘미노스의 빠리지엔느’가 있습니다. 3500년 전의 그림인데도 놀라울 정도로 변하지 않고 처음 그대로의 색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수채화나 유채화를 나무판대기, 종이 혹은 천 위에다 그렸다면 썩었거나 삭아서 없어 졌을 것 이지만 물감을 머금은 회벽그림인 프레스코는 거의 영구 불변 했습니다.

프레스코 다음의 회화양식이 된, 안료를 달걀로 개서 나무판에 그리는 ‘템페라(tempera)화(畵)’는 표현이 투박하고 일하기 힘들었습니다. 안료를 달걀 대신 기름에 섞어서 색갈이 서로 부드럽게 합쳐 지는 효과를 알아낸 것이 15세기 플랑드르 화파의 반 아이크 (Jan Van Eyck) 형제 였습니다. 이 형제가 게척하고 완성시킨 유화는 기교적인 면에서는 더욱 세밀하게 그릴 수 있고 천천히 일을 쌓아가며 작업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화학적인 작용을 일으키는 기름의 성질 때문에 색채가 서서히 변하고 균열이 생기는 문제가 꼭 일어납니다.

그러나 프레스코가 아무리 보존성이 좋은 기법이라고 하더라도 그 바탕벽(회벽)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과 그림을 빠른 속도로 그려내야 한다는 점 때문에 화가들이 기피해 왔고, 지금은 거의 안하고 있습니다. 붙박이 그림(벽화)’ 이기 때문에 장소를 옮길 수가 없고, 지진에 의해 균열이 생기거나 파괴될 수 있다는 점도 프레스코를 기피하게 되는 원인 이겠습니다.

서울에 갔을 때 어느 화랑에선가 장욱진의 프레스코 벽화를 전시한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장욱진이 복잡한 서울을 피하여 덕소에 고독한 거처방(居處房)으로 단칸 초가집을 지을 때 미장이가 만든 회벽에 여력(餘力)으로 치기(稚氣)를 발휘해서 간단한 프레스코를 그려 놓았는데, 작가가 작고한 후에 열린 전시회에 그 벽(프레스코)을 통째로 뜯어다 진열한 것 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덕소에 놀러 갔을 때 장욱진은 이 그림 이야 말로 누가 가지고 가고 싶어도 못 가져 갈 것이라면서 좋아 했던 기억이 동시에 났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소성당의 넓디 넓은 천정화를 그릴 때 한번에 다 그릴 수가 없어서 회벽이 마르는 속도를 감안하여 한번에 일 할 수 있는 넒이만큼만 회벽을 치고 그려 나가야 했습니다. 거의 들어 누운 자세에서 재빠른 붓 놀림을 하자니 여간한 고역이 아니었을 것 입니다.

1962년에 파리 오페라 천정화를 앙드레 말로가 샤갈에게 주문할 때 그것을 유화로 주문했고 샤갈은 아주 유유자적하게 자기 아뜰리에에 앉아 편한히 제작한 후 옮겨와 오페라 천정에 매달았습니다. 당시 그렇게 작업한 일은 스캔달이 됐었습니다. 유명하게 된 샤갈의 오페라 천정화는 샤갈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어서 오페라 객석을 화려하게 했지만 프레스코처럼 차분하고 담백한 맛이 없었기때문이였습니다.

유네스코가 주최한 세계 고고학자 대회에 북한의 고고학자들이 고구려벽화에 대한 자료를 가지고 참가 했는데, 마침 남북한 7.4공동선언무드가 있었던 때라 ’빨레 드 샤이오(샤이오 宮 )’에서 한국대사관이 무슨 이유의 리셉션을 열었을 때 북한의 고고학자들까지 초대 됐습니다. 거기에 갔 던 나는 마침 수렵도를 복사한 수업 후여서 북한 학자에게 쌍영총과 사신총(四神塚)등의 벽화 보존 현황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싶다며 자료를 부탁 했습니다. 단정한 복장에 김일성 배지(badge)를 달고 세련된 사교술을 가진 그 젊은 학자는 유쾌히 대화에 응 했었으나 나의 주소로 자료를 보내 주겠노라고 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우리는 매 순간을 마르지 않은 ‘프레쉬’한 시간으로 살고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한번 붓질하면 다시는 지울 수 없는 프레스코 벽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우리들 모두가 각자의 무덤으로 가져갈 한편의 보이지 않는 논 픽션 프레스코를 마음에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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