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키운 오리 (2)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5265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4.01. 21: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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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6-2

내가 키운 오리 2

나의 시골집이 있는 사끌라 마을은 파리에서 남쪽으로 65킬로미터 떨어진, 파리와 오를레앙 중간지점에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제일 큰 밀밭인 보스( la Beauce) 평원의 협곡을 구비구비 흐르는 주인느(la Juine) 라는 작은 강가의 마을입니다.

강폭은 8미터쯤 되고 가운데 깊은 곳은 사람 키 한길 정도 됩니다.

강의 수원지는 나의 집에서 10킬로미터 쯤에 있습니다. 이 강은 마을과 마을을 두루 거쳐서 에손느 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에손느강은 세느강과 합쳐 집니다.

에손느 강이 흐른다 하여 에손느 라고 부르는 이 지방은 파리를 크게 둘러 싸고 있는 파리 생활권인 ≪ 일드 프랑스 ≫ 남쪽이 되며, 사끌라는 그 외곽 거의 끝에 위치해 있습니다.

세느 강은 샹파뉴 지방을 통과하여 흘러 온 마른느 강과 만나 파리를 관통한 후 지그 자그로 흘러 노르만디 평원을 지나 도버해협으로 빠져 버립니다.

주인느 계곡 위 보스 평원은 바다처럼 한없이 펼쳐져 있어 그 끝이 하늘과 맞 닿아있습니다. 밀밭 길을 차로 달리노라면 한참 동안 큰 원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됩니다. 이 밀밭에 서면 늘 나의 존재가 얼마나 미미한지를 절감하게 됩니다.

보스 평원 계곡에 봄기운이 완연하던 어느날 낚시를 하러 왔던 L국장으로부터 다시 한번 사끌라를 방문하겠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날 따라도 화사한 봄날이었는데, L국장은 이번에는 부인과 함께 왔습니다.

그는 차에서 내려서 트렁크를 열더니 마분지로 만든 큰 상자를 꺼내 들고 대문을 들어 섰습니다.

여전히 낙천적인 표정을 띤 L국장은 싱글벙글 웃으며 정원계단과 풀밭을 지나 샛강이 저만치 내려다 보이는 테라스 까지 내려와 큰 상자를 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자, 봐라, 내가 얘기한 대로 정말 멋진 곳이지 ?‘하는 다정한 눈길을 아내에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초면의 부인은 ≪ 참 좋은 곳에 사십니다 ! 이 계곡을 들어서니까 경치가 아름답고 시골 냄새가 물씬나면서 딴 세상 같네요. 파리에서 아주 가까운데도… 제 남편이 꼭 구경시켜 주겠다고 성화를해서 염치불구하고 이렇게 저도 불현듯 함께 왔습니다 ≫ 하고 이곳 풍치를 칭찬했습니다.

L국장은 지난번에 느닷없이 K특파원의 안내로 왔다가 낚시질도 하고 예기치 않은 환대를 받아서 오늘은 내외가 고맙다는 답례로 이렇게 인사차 왔노라고 예의를 차렸습니다.

그리고는 가져 온 커다란 상자를 가르키며 나에게 가져온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개 ≪ 돌이 ≫는 손님이 도착한 대문에서부터 상자를 맴돌면서 냄새를 맡으며 계속 끙끙거리고 있었습니다. 상자에는 동그란 눈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고 무언가 움직이기도 하고 가끔 뒤뚱거려서 나도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던 참 이었습니다.

선물치고는 상자가 너무 커서 그 속에 무슨 장난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의심을 하면서 상자뚜껑을 열었더니 그 속엔 뜻밖에 귀엽게 생긴 한 쌍의 오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깜작 놀라 ≪ 아니, 오리는 왠 오리 ? ≫하였더니 L국장은 자기 아내와 눈을 맞추며 재미있어 못 견디겠다는 듯이 껄껄 웃더니 사연을 설명했습니다.

≪ 지난번에 왔을 때 저 강가에 오리가 많이 헤엄쳐 다녀서 잡아 먹자고 하고 싶었지만 오화백이 자연 보호론자 같아서 야생오리를 잡기는 틀렸기에 집오리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부탁인데 좀 길러 주시고 가을쯤 다시 올테니 그 때 우리 술안주로 잡아 먹읍시다 ≫

L 국장 내외는 그날 아침 일찍 파리의 세느강변 뚝 ≪ 메지스리 ≫거리에 있는 유명한 조류시장에 가서 이 오리 한 쌍을 사가지고 차로 한시간 거리인 우리집으로 부리나케 달려 왔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오리고기를 술안주로 하고 싶다면 사냥한 오리를 그때가서 사면 되련만 그 값의 열배나 되도록 지불하고 관상용으로 파는 산 놈으로 사온 것입니다.

≪ 오리고기라면 사다가 요리 해 먹으면 될 텐데 -- . ≫ 하는 짧은 생각만 할 줄 아는 나는 불현듯 허를 찌르는 기습을 당하고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할말을 잊고 있었습니다.

L국장의 아내는 커다란 눈만 떴다 감았다 할뿐이었습니다. 남편이 신바람이 나서 아침부터 서둘러 한 일이기 때문에 자기로서도 어쩔 수 없었노라는 듯한 난처하고도 유쾌한 표정만 보이고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나도 한바탕 소리 내어 웃으면서 그것이 놀랍도록 재미있는 선물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L국장은 여기에 희안한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집오리는 알을 낳기는 낳는데 품을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리가 알을 낳으면 먹물로 오리 알을 새 까맣게 칠 한답니다.

점점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길래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새까맣게 칠한 오리 알을 이번에는 다시 흰 알이 되도록 검은 표면을 칼로 말끔히 베껴 낸 후 암탉이 품고 있는 달걀과 섞어 놓으면 부화가 되어 병아리와 함께 오리새끼가 태어 난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오화백댁에선 닭을 안키우니 어쩌나 ≫ 하더니 ≪ 이동네에 닭 키우는 집 없습니까 ? ≫ 하고 되 묻는 것 이었습니다.

오리박사 L국장의 이야기가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되었지만 더 물어 봐야 점점 바보가 될 것 같아서 머리만 긁적이고 있었더니 그는 이내 알아차리고 친절한 설명을 더 해주었습니다.

오리 알의 부화기간은 28일이기 때문에 21일만에 부화하는 달걀과 부화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오리알의 껍질을 얇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L국장 고향마을 사람들의 희안한 오리알 부화법이었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학교때 배운 달걀의 부화과정을 더듬어 생각해 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암수 한 쌍을 사온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오리를 번식 시켜서 술안주 감이 끊기지 않게 한다는 ‘음모’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또 한번 웃어야만 했습니다.

스파케티 국수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평원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익은 밀로 만들어야 제격이고, 바겟트 빵은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익은 보스 평원의 밀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보스 평원에서 생산되는 밀은 세계적으로 질이 제일 우수한 밀입니다.

이 평원에서 생산하는 밀을 도시로 운반하기 위해서 주인느 강은 뱃길로 이용되었던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철도가 깔린 것도 파리와 보스 평원을 잇는 철도였습니다.

강변 곳곳에는 밀을 빻는 물방아간이 있습니다. 규모가 아주 큰 기념비적인 물방아간들도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인느 강변에는 또 빨래터가 강변을 따라 여러 곳에 남아 있습니다.

마을 공용 빨래터는 규모가 크고 개인용은 조그맣습니다. 빨래터는 세탁기가 나오면서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빨래터를 잘 보수하여 기념물로 각기 보존하고 있습니다.

빨래터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마을의 빨래터와는 모양과 규모가 다릅니다. 빨래터의 건물은 돌로 번듯하게 벽을 쌓고 기와 지붕을 얹었으며, 건물 내부에 넓직한 공간이 있고 물가쪽은 벽을 안세워 여럿이 함께 빨래를 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빨래판으로 쓰이는 경사진 넓은 반석이 물가를 따라 설치되어 있고, 세탁이 끝난 침대보와 옷가지 등을 걸어 놓아 물을 빼도록 긴 철봉이 허리 높이로 튼튼히 가로 질러 놓여있습니다.

여성해방에 기여한 20세기 문명의 이기로서 제일 먼저 손꼽아야 할 것이 있다면 아마도 세탁기일 것입니다. 빨래터를 보고 있노라면 지난날 빨래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성가신 일이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러나 옛날의 빨래터에는 아낙네들이 시끌벅쩍한 수다와 웃음이 있고, 삶의 활기와 낭만이 넘치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나의 시골집 정원에도 빨래터로 쓰던 건물이 강가에 조금 남아 있습니다. 다 허물어졌지만 전에 이 집에 살던 사람이 남아진 ㄴ자 돌벽에 나무판자로 ㄴ자를 보태어 직사각형 ㅁ 자 모양의 닭을 키우던 우리가 남아있었습니다.

나는 L국장이 선물한 오리 한 쌍을 우선 거기에 가두었습니다.

그 날 밤 돌이는 밤새도록 컹컹 짖어 댔습니다. 새로 들여온 오리부부를 살괭이로부터 보호하려는가 보다하고 잠을 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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