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인디안 서머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5065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7.04. 09:5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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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인디안 서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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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27

≪ 가을을 타시나 봐요 ? ≫

내가 가을 넘기기를 늘 어려워 한다는 것을 아는 서울 친구가 걱정이 담긴 이메일을 보내왔다.

비와 바람의 심술로 연일 음울하던 파리의 가을날씨가 며칠 전부터 갑자기 봄날처럼 화창하다. 유럽에서 깊어져가는 가을에 이런 ≪ 인디언 서머 ≫는 운이 좋아야 한번 씩 만난다. 인디언 서머는 카나다 사람들이 자기나라의 이와같이 좋은 가을날씨에 맞추어 만든 단어다. 왜 어감이 좋게 ‘인디언( ?)’ - 북아메리카도 유럽인들이 가서 차지해버리기 전부터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땅이기 때문이겠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게 산란하다. 이런 날 그림작업을 해봤자 제대로 될 것 같지 않다. ‘그림을 망치느니 -.’ 하면서 문을 박차고 나가 낙엽이 흩날리는 가로수 밑을 정처 없이 걸어 본다.

‘ 아 ! 가을이 깊었구나 ! ‘

바싹 마른 낙엽이 발 밑에서 바스락 소리를 낼 때 내 마음이 산란한 것은 가을 때문이란 걸 알았다.

‘ 그림을 그려 무엇하리 ! ‘세상만사가 갑자기 덧없어진다.

‘ 어딜 가야 더 많은 가을을 느낄까 ? ‘

파리에서 이런 날 햇볕을 흠뻑 받으려면 ≪ 몽마르트르 언덕 ≫ 아니면 ≪ 쇼몽 ≫ 언덕으로 가야한다.

한 때 민둥산이었던 빈 언덕이 공원이 됐다 해서 이름도 그대로 쇼몽(대머리)공원이라 불린다. 반은 인공적으로 반은 자연적으로 조경해서 동굴, 구름다리, 폭포, 연못, 절벽이 있다. 절벽 위에는 대리석으로 지은 작은 정자가 있어서 시가지를 내다 보기가 좋다.

오늘따라 유난히 많은 빠리지엥들이 삼삼오오 오솔길을 걷고 있다. 그들도 나처럼 가을 병을 앓고 있는가?

아름들이 은행나무, 나이 많은 참나무, 훤칠한 북구 미인 같은 키 큰 자작나무, 그리고 마로니에와 너도 밤나무가 줄 지어 서 있는 오솔길을 걸어 본다.

늦가을 기운 하얀 햇볕 속 공원은 온통 하얗고, 활엽수들은 지나가는 슬쩍 바람결에도 우수수 낙엽을 떨군다.

아뜰리에로 돌아와서 산책 길에서 만난 가을을 캔버스에 옮겨볼 궁리를 해 본다.

이런 저런 가을 에스키스에 만족치 못한 나는 결국 색종이와 신문지를 오렸다.

--위의 글은 월간 미술정보지 "서울 아트 가이드" 2004년 1월호 원고청탁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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