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에 대한 사형제도부활을 외치는 루끼니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5163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6.27. 13: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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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에 대한 사형제도부활을 외치는 루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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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우주탐사 로봇 ≪ 스피릿 ≫과 ≪ 오퍼튜니티 ≫가 火星에 착륙해서 생체의 존재가능성을 말하는 물이 지하에 있을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머지않아 ≪ 판도라의 상자 ≫가 화성에서도 열리게 될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50년후가 될지100년후가 될지 내 생전이 아니지만, 화성에 관광단지가 언제고 생길테니 그것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 아니고 무었이랴 !

그런 나는 지금 화실창문을 통하여 에펠탑이나마 싫증안내고 바라볼 수 있으니 다행이다.

낮이나 밤이나 모든 기상상태에서 에펠탑은 언제나 우하하고 아름답다.

내가 너무 편애하는지는 몰라도 뽕삐두센터같은 건축물과 내창문이 마주했다면 나는 커튼을 내내 드리우고 살았을 것이다.

어느 날 한밤중에 TV를 켰다.

낯익은 배우가 가족과 함께 정원에 나와 있는 화면이기에 눈길이 갔는데, 가꾸지 않은 정원 풀밭엔 이끼낀 古木이 한그루 서있고 뒤로는 조용한 시골마을이 나무숲 사이로 틈틈히 보였다.

약간 허풍쟁이같은 외모를 가진 배우는 시청자가 많은 ≪ 베르나르 삐보(Bernard Pivot) ≫의 新刊문학을 소개하는 환담에 ≪ 아카데미시엥(학술원 인사) ≫과 문인들 사이에 끼어서 좌중을 사로잡던 才談꾼이고 웅변가로서의 그에 대한 인상이 깊었다.

배우는 지금 풀밭 한쪽에 서서 어느 연극대사인지를 열심히 외우고 있었고 그의 아내는 소쿠리속에서 넓다란 침대보를 꺼내 빨래줄에 널고 있으며 그집 딸아이는 풀밭에 주저 앉아서 그림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 정경은 평온한 田園生活相을 보여주는 한폭의 그림이었다.

그러던 배우는 슬며시 중앙에 있는 고목아래로 옮겨 가더니 갑자기 소리 소리 외치기 시작했다.

핏대를 세우며 난데없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연설인즉슨 오래전에 폐지된 사형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외침이었다.

그렇긴 한데, 사형제도를 부활시키긴 시키돼 건축가들에게만 해당시킨다는 조건을 달고 있었다.

≪ 여기를 보라 ! 여기는 이끼낀 古木들과 함께 옛날 마을이 고대로 남아 있다. 집 생김새로 부터 창문과 기와지붕, 또 조그만 교회당과 얕은 종탑까지도 우리를 한번도 위압적으로 억누르면서 위세를 부리거나 우리의 비위를 거슬르지 않고 자연속에서 자연과 동일한 자세로 서있지 않은가 ! ≫

≪ 이 얼마나 우리를 평화롭게 하면서 사랑스러운가 ! ≫

≪ 그러나 도시쪽으로 조금만 나가 보라 ! 도시의 美觀을 해치면서 새건물들이 흉칙스럽게 버티고 서서 뭇 사람들의 心性을 해치고 저마다의 新式 외관을 의시대면서 우후죽순으로 서 나가고 있다. ≫

≪ 한번 그렇게 세워진 건물들은 우리가 싫거나 좋거나 항상 보아야 하고 건물에 순종해야 한다 ≫

≪ 그리고 그속에 억지로 갇혀서 생활하여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 우리 인간사에서의 새로운 비극은 조잡하고 추악하게 건축가가 설계랍시고 정해 논 그런 공간에서 비롯되고 있다 ≫

≪ 그러므로 나는 도시에는 절대로 나가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 ≫

≪ 사람에게 위협과 혐오감을 주는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가들은, 어서 사형제도를 부활시켜서 그들이 건축작품이라는 미명아래 세울때마다 체포해서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 나는 사형폐지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해서 찬성했지만 사형제도는 건축가들에게 만은 남겨 놓았어야 했는데 완전히 폐지해 버린 것은 잘못 된 것이니 어서 부활시키자 ! ≫

얼굴이 뻘게지면서 아무도 없는 虛空을 향하여 손을 쉴세없이 내저으며 웅변조로 외쳐 대니까 아까부터 그림책만 뒤적이던 딸 아이가 참다못해 ≪ 아빠 !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잖아요 , 아빠도 참 !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것 아니얘요 ! ≫하면서 빨래를 널고 있는 엄마를 보고 아빠가 지금 정신이 돌지 않았느냐는 듯이 손고락을 머리에 대고 빙글 빙글 돌렸다.

그러나 엄마는 남편이 그러거나 말거나, 딸아이가 답답해 하거나 말거나 아랑곳 하지 않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널어논 빨래만 매만지고 있었다.

건축에 門外漢인 자기가 공개석상에 나가서 울분을 토해 봤자 아무 효과가 없을 테니까 횡포를 부리는 건축가와 도시설계가들에 대한 사형제도 부활을 나름대로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삿대질을 상대방없는 허공에 해서라도 가슴을 후련하게 하려는 뜻이 역력했다.

격렬한 연설을 한바탕 토한 ≪ 파브리스 루끼니(Fabrice Luchini) ≫는 이탈리아 이민 2世로1951년에 파리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학교공부보다는 아무에게나 얘기를 잘 꾸며대는 얘기꾼이였다.

어린 루끼니는 靑果商에서 아버지를 돕느라 ≪ 싱싱한 야채 사세요 ! ≫ ≪ 과일 사세요 ! ≫를 외치며 웅변술을 익혔다.

혼자서 차차 독서에 빠진 그는 프랑스말의 동사변화와 문장구조에 관심이 생기면서 ≪ 발작끄(Balzac) ≫와 ≪ 프루스트(Proust) ≫를 읽었고 다음은 문학에 열정을 갖고 ≪ 라 퐁뗀느(La Fontaine) ≫, ≪ 보들레르(Baudelaire) ≫, ≪ 쎌린느(Celine) ≫ ≪ 니체(Nietzsche) ≫를 탐독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졸업장이 없어 할일을 못 찾던 루끼니는 친구가 하는 ≪ 살롱 드 꽈피르(미용실) ≫에 나가서 살롱손님들에게 꾸민 얘기를 들려주는 얘기꾼노릇으로 푼돈을 벌었다.

얘기를 하도 재밋게 잘 꾸며댔기 때문에 이발소는 항상 만원이었고 심지어는 이발할일 없이도 손님들이 그의 재담을 들으러 올 정도였다.

프랑스 이발사는 머리를 깍고 손질을 하면서 줏어들은 얘기라도 무슨얘기든 줄줄 해줄 줄 모르면 손님없기가 십상이다.

프랑스 日刊紙 ≪ 르 피가로(Le Figaro) ≫는, 그래서인지 新聞명칭을 일부러 세빌리아의 이발사 이름인 ≪ 피가로 ≫로 택했슴직하다.

루끼니가 열을 올리는 모더니즘을 指向하는 현대건축의 문제점에 대해서 공공석상에서 벌리는 많은 토론은 어제, 오늘부터의 일이 아니다.

지적되는 문제점중에 하나는 새로운 건축이 너무나 실리, 실용위주로만 돼서 미관을 생각하지 못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세상엔 저것좀 안보고 살았으면 하는 건물이 수두룩 한것이다.

그 책임이 건축가들에게 있다고 추궁을 당할때면 건축가들은 하나같이 자기도 建物主만 잘 만나면 모양이 썩 좋은 혹은 환경친화적인 건물을 얼마든지 설계할 수 있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시끄러워 듣기 싫다면 라디오를 끄면 될 것이고, 미술품이 도대체 추해서 보기 싫다면 전람회장을 빠져 나오면 될 런지 모른다.

그러나 노출된 건축물은 그렇게 피할 수가 없다.

집은 居主地로서 인간생활에서 꼭 필요하기 때문에, 자칫해서 마음에도 없는 억지空間에 같혀서 거기에 맞추어 사느라 고생하기 마련이고 더 잘못하다간 운명적으로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야 하기때문이다.

古典으로 여기는 전통적인 건물과 닮게 설계한다면 건축비가 너무 많이 든다고 建物을 짓겠다는 개인이거나 정부관리들은 모두 싫다고 하면서 미적감각은 상관할 것 없고 실용적으로만 설계해서 건축비용이 적게 들게 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통적인 건물과 닮게 한다는 것은 그 구태의연함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 것이며 오래 살아 보아서 가치를 얻게된 편한함과 편리함을 말하는 것이고 그런 건축양식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요소를 지적한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건축가들은 환경에 딱 알맞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얼마든지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인데 과연 그런 실력들이 있는지 간혹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건물주를 아주 잘 만난 건축가가 설계비나 건축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창작적으로 실력발휘를 했다는 건축물중에서도 그런 의심을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게 하는 건축이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루끼니가 목청이 터져라 아우성을 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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