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나들이 20 - 아비뇽과 무관한 피카소의 아비뇽 아가씨들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2974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6.18. 15:2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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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나들이 20 - 아비뇽과 무관한 피카소의 아비뇽 아가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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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1

7월5일 토요일

맛좋은 아침 바겟트 빵을 사다 식탁에 올려준 민박집 스테파니와 惜別의 ≪ 오르브아르 ≫를 하고 이번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잡힌 옛 교황청과 세계연극의 중심지 아비뇽(Avignon)으로 떠났다.

비제가 아를르女人을 作曲했다면 피카소는 ≪ 아비뇽의 아가씨들(Demoiselles d’Avignon) ≫을 그렸는데 피카소의 것은 아비뇽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 大作은 미술사에서 劃期的인 사건을 일으킨 그림중 하나이어서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그림이다.

그것은 피카소가 몽마르트르 ≪ 바또-라브아르(Bateau-Lavoir :세탁船) ≫아뜰리에에서 스믈여섯살 때, 자살해 버릴지도 모른다고 주위에서 걱정하던 가난 속에서도 새로운 것을 찾겠다고 인류학박물관에 드나 들면서 잡동사니로 여겨져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아프리카 조각을 보고 영감을 얻어 그린 괴상망칙한 그림이다.

서양미술의 傳統을 송두리채 흔들어 야유했다고 評하게 된 이 그림은 ≪ 마귀같이 생긴 女人들 다섯명 ≫을 原始的이고 야만적으로 形象化해서 고상한 아가씨라는 뜻일 ≪ 드므아젤 ≫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드므아젤 들은 피카소가 어렸을때 바르셀로나에 살던 집 근처 娼女村에서 오가며 보던 창녀들을 그린것이고 창녀들이 유곽앞에서 船員들을 기다리던 길은 ≪ 아비뇨(Carrer d’Avinyo) ≫였다.

그러므로 ≪ 아비뇨의 아가씨들 ≫이라고 했어야 할 그림명칭을, 어딘지도 모를 ≪ 아비뇨 ≫대신에 발음도 수월한 ≪ 아비뇽 ≫으로 둔갑시켜 놓는 바람에 난데없이 ≪ 아비뇽의 아가씨들 ≫이란 그림이 된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당시 모든 동료화가들의 눈에도 이 ≪ 아비뇽의 아가씨들 ≫은 그림이 아니어야 할 ≪ 도저히 불가능한 그림 ≫이었다.

巨匠들이 이루어 놓은 찬란한 업적을 완전히 無視하고 미술이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한 작품이라고 인정되지만, 브라끄, 마티스와 자기를 절대적으로 옹호해주던 친구 기욤 아뽈리네르까지도 가담한 빗발치는 공격에 피카소는 그 천덕 꾸러기 ≪ 뜨알(그림이 그려진 캔버스) ≫을 둘둘 말아 벽구석에 쳐박아 버렸다.

이런 얘기끝에 아비뇽에 도착해서 론느강가 城壁밑 교황청 地下주차장에 차를 넣었다.

아비뇽에 끄떡않고 남겨진 교황청(Le Palais des Papes)은 1309년 부터1377까지 68년간 로마교황 ≪ 쟝 21세(Jean XX I) ≫부터 내리 7代의 프랑스출신 교황들이 피난와서 거처하던 宮이다.

1305년 프랑스 출신 교황 ≪ 끌레망 5세(Clement V) ≫가 로마의 지독한 당파싸움 때문에 아비뇽에 피신해 온 후, 교황 ≪ 브느와 7세 (Benoit XII) ≫가 이 교황청을 짓기 시작해서 30여년만에 완성했다.

아비뇽의 땅 일부가1274년부터 바티칸 교황청 소유로 돼 있었기 때문에 교황이 아비뇽으로 쉽게 피난 오게된 緣由가 됐다.

신축한 교황청은 이미 장엄했으나 교황 ≪ 끌레망 6세(Clement VI) ≫가 1348년에 교황청 증축과 함께 방어벽을 쌓고 아비뇽市 전부를 사들여서 성벽을 둘르고 요새화해서 더욱 거창해 졌다.

이렇게 외적에 철저히 대비한 교황청은 외관상 교황청이기 이전에 어마 어마하게 큰 難攻不落의 요새로 보인다.

교황이 다시 바티칸궁으로 돌아간 다음부터는 有名無實해진 아비뇽 교황청을 프랑스 혁명후엔 감옥과 군대병영으로 사용했다.

1차와 2차로 지어서 연결된 新舊 교황청 내부도 그 구조가 어지간히 복잡했고, 웅장하고 견고했다.

교황청 건물은 지금 박물관식이 되어 당시 교황들의 유물을 진열하고 문화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특별기획전을 여는 大 전시장이 있고 ≪ 페스티발 다비뇽 (Festival d’Avignon ) ≫의 중심 극장인 ≪ 꾸르 도너르(Cour d Honneur) ≫가 신구교황청사이 안뜰에 가설무대로 설치되어 있다.

아비뇽 연극제의 TV중계로 눈에 익은 꾸르도너르의 가설극장에서는 무대장치와 조명장치를 하느라고 많은 근로자들이 한창 분주했다.

제라르 필립(Gerard Philipe)도 활약했던, 1947년부터 시작된 ≪ 페스티발 다비뇽≫은 여름20일동안 무려 600여개의 세계각국 연극단체가 연극, 춤, 詩낭독회, 전시회, 文化會見, 음악회등을 개최하고, 매년10만명이상의 관객을 끌어 들이고 있다.

페스티발 다비뇽 을 < in > 과 < off > ≫로 나누어 부르는데 < in > 은 ≪ 꾸르 도너르 ≫처럼 크고 작은 수많은 극장의 內部공연을 가르키고 < off >는 길거리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露天공연을 지칭한다.

아비뇽과 엑스앙프로방스를 비롯해서 수많은 도시와 마을에서 열리는 여름축제 공연과 문화행사에 빠리지엔들과 세계의 愛好家들이 몰린다. 그래서 텅텅 빈 파리에 비유해서 南佛을 ≪ 여름의 파리 ≫라고 까지 부르고 있다.

우리는 불행히 演劇祭가 열리기 바로 직전에 아비뇽에 왔다 가게 됐지만, 금년엔 문화예술계 非定規職 근로자 파업으로 먼저 취소된 엑스앙프로방스 페스티발 여파로 아비뇽도 시내 도처에 연극포스터가 벽지처럼 촘촘히 붙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축제의 生氣를 잃고 있었다.

우리는 교황청을 둘러보고 나와서 ≪ 로셰 데 동(Rocher des Doms) ≫ 바위위에 만든 정교한 정원 테라스 전망대로 부터 멀리 보이는 방뚜산을 비롯하여 우리가 여태까지 여행다닌 알삐으 산맥, 뤼브롱 산과 보뀌뤼즈지방의 파노라마를 둘러보았다.

거기서 가파른 돌층층계룰 돌아 돌아 내려가면 론느江을 건너다 만 아비뇽다리(Pont d’Avignon) 입구에 닿는다.

≪ 아비뇽 다리 ≫하면 ≪ 쉬르뽕 다비뇽, 오니당스 오니당스…≫라는 프랑스 민요가 귀에 들리는 것 같다.

≪ 아비뇽 다리(위)에서, (여럿이)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아비뇽 다리에서 춤을 춘다, 둥글게 돌면서 춤을 춘다.
(춤이 끝나면) 나리들은 귀부인들에게 (허리굽혀) 이렇게 절한다.
그리고 또다시 (더 허리굽혀)이렇게 절한다. ≫

옛날에 귀부인들에게 절(인사)하는 법을 가르칠려고 부르던 노래였다 한다.

그런데 가사에선 ≪ 다리위에서 춤춘다≫고 하지만 폭이 좁은 아비뇽 다리위에서는 여러사람이 둥글게 돌면서 춤출수 없었고 실제로 춤을 춘 곳은 다리 교각 아치 밑이었다.

2절에선 후렴으로 ≪ 나리들 ≫ 대신에 ≪ 귀부인들 ≫로 바꾸어

≪ 귀부인들은 나리들에게 (허리굽혀) 이렇게 절한다.
그리고 또한번 이렇게 (더 허리굽혀) 절한다 ≫

이런 가사가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市民들의 입에서 다른 가사로 바뀌었다.

1,2절다음3절 4절로 이어서 노래를 부를때의 후렴은 나리들 대신에 ≪ 세탁소사람 ≫, ≪ 구두수선쟁이 ≫하면서 일반 직업명을 줄줄히 넣고 부른다.

우리도 서울의 청계천이 복원되면 옛날에 광교위에서 다리 밟기 춤을 또다시 살려서 추게 될지 모르리라.

보통은 ≪ 뽕 다비뇽(Pont d’Avignon) ≫이지만 原名은 ≪ 뽕 쌩-베네제(Pont St-Benezet) ≫다.

1177년, 목동 ≪ 베네제 ≫는 론느(Rhone)강에 다리를 놓으라는 하늘의 소리를 듣고 한 天使의 인도로 강가에 와서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옮겨다 다리를 놓으려고 하니 市관리들은 미친자로 취급했으나 자발적으로 모여든 아비뇽사람들이 힘을 합쳐 8년만에 다리를 완성했다는 傳說이 있다.

베네제 다리는 17세기때 큰洪水로 강이 범람하면서 다리 한쪽이 떠 내려 가 버린채로 남아있는 것이다.

다리를 구경한 다음엔 점심을 먹으러 “체크무늬 소”라는 식당을 찾아 가느라 교황청 높은 성벽아래로 난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더니 청아한 中世風 노래가 울려 퍼진다.

노래소리가 나는 골목길 끝 좁은 광장에는 헐렁한 중세식 망토를 둘러 입은 한 알토(Alto)와 하프 반주자가 괴괴하고 哀切한 음률로 사람들 가슴을 울리고 있었다. 之空은 美羅麻에게 동전 몇잎을 달래서 그들 앞에 놓인 바구니 속에 넣었다.

점심 후 우리는 엑스앙프로방스 驛으로 달려 가서 車를 반환하고 오후6시 14분발 TGV을 타고 9시 11분에 파리 리용역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먼 추억이 될 우리의 프로방스 여행이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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