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나들이 18 - 중세마을 뀌뀌롱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4789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6.14. 19: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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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나들이 18 - 중세마을 뀌뀌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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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6

안리즈 베스 도자기제조소를 나와서 마을 외곽에 있는 12세기때 修道院의 유적지 ≪ 프리으레 드 까르뤽끄(Prieure de Carluc : 까르뤽끄의 소성당)를 찾아 나섰다.

세레스트 마을을 東北쪽으로 벗어나는 지점에서 조그맣게 표시된 안내판을 어렵게 찾아냈고 그 길은 언덕이 많은 벌판을 굽이 굽이 감돌고 있었다.

먼저 샛 江 ≪ 앙크렘므(l’Encreme) ≫를 건너 뛴 돌다리를 건넜는데 다리 난간은 한가운데가 뾰죽한 얕은 삼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둥근 ≪ 아치 ≫ 하나를 그리고 있었다.

다리는 中世期 것이지만 전형적인 로마時代의 육중한 다리를 흉내내 만들었기 때문에 마을에서 ≪ 로마다리 ≫라고 불렀다.

다리를 건너서 갈대밭옆에 車를 세우고 모두 물가로 내려가 보았다.

淸雅한 하늘빛을 그대로 反映하고 있는 江을 한발로 껑충 건너뛴 아치는 邱陵진 벌판과 구름 한점을 품은 하늘속까지 품고 있었다.

튼튼하고 雄壯한 것을 좋아한 로마人들의 性格을 그대로 닮은 높은 돌다리는 옛날 돌 쌓는 방식인 밭 ≪ 田 ≫ 字 로 쌓았고 이끼자국과 ≪ 돌맹이 문둥병 ≫을 앓아서 생기는 검버섯이 여기저기 있었다.

그런 돌틈으로는 寄生 담쟁이가 퍼져서 다리를 古風스럽게 장식했다.

냇가로 부터 돌다리 어깨뚝까지 비탈진 草原엔 억새풀을 비롯한 온갖 풀이 정강이가 빠지도록 무성히 자랐고 엉겅퀴의 진한 보라색 꽃이 가끔 홀연히 뽑내며 시선을 끌었다.

잎이 바르르 떠는 포플러 높은 가지에서 줄창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귀에 쨍쨍하며 노랑나비 흰나비가 나불 나불 춤추며 날아다니고 햇빛에 반짝거리는 냇물이 그늘진 돌다리에 어른거렸다.

우리는 다리 주변의 풀밭에서 시간을 잊고 아련한 風致에 취해 있었다.

다리위를 지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도 幻覺을 일으켜, 다리위엔 지금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을 즐기는 靑春男女가 멈추어 서서 냇가를 내려다 보는, 언젠가 흑백영화에서 보았던 그런 장면이 다리위에 겹쳐졌다.

즐거운 幻像에서 깨어나 차를 다시 타고 이제는 수도원 까르뤽끄 성당 유적지를 찾아 나섰는데 里程標가 확실치 않아서 이리 저리 헤메며 애를 먹게 됐다.

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오며 빈길에서 허둥대고 있을 때 쥐色 ≪ 드슈보 ≫(시트로엥 2기통 소형자동차)와 만났다.

그 드슈보를 멈추게 하고 길을 물었다.

드슈보는 皓皓白髮 할머니가 같은 나이의 할아버지를 옆좌석에 태우고 운전중이였다.

車窓 半을 접어 위로 올려 붙힌 자동차 속에서 우리가 묻는 방향을 듣던 할머니는 자기를 따라 오라며 앞장섰다.

얼마쯤 가서 벌판 한가운데에 있는 農家앞에 서더니 여기가 자기네 집인데 여기서 부터는 쉬우니 저쪽 모퉁이를 돌아 쭉 가기만하면 우리가 찾는 遺蹟址라고 했다.

심통 사나운 표정이라곤 보이지 않고 外地人에 대한 의심도 전혀 없는, 해 맑은 얼굴뿐인 노부부는 자기네들 보다는 아직도 젊은 동양인들이 전혀 다른 文化를 만나보기 위해서 찾아 다니고 있는 것을 대견스럽게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나대로 부축을 받아야 하는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와 명랑하기 그지없는 할머니에게서 느끼는 부부간의 依支와 幸福을 읽으며 마음속으로 그들을 祝福했다.

바짝마른 날렵한 몸매와 또렸한 발음으로 每事에 명랑한 할머니도 우리뒤에다 다정한 손을 흔들어 주고 서 있었다.

古風스럽고 모양이 유머러스한 쥐色 드슈보 자동차와 이상하도록 잘 어울린 호호 老夫婦에게서 받은 특이한 인상에 사로잡힌 조안은 오늘 아침부터 보고 다닌 것들 중에서 가장 히트 친 오늘의 ≪ 名場面 ≫이라고 讚歎의 말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영화감독다운 조안의 발언이었다.

사실이지 나도 프랑스에 오자마자 이車에 반해서 빨간色 드슈보를 사서 타고 다녔다. 드슈보 車色갈이 여러번 변했는데 1970년도에는 ≪ 리오 ≫라는 別名의 빨간색이 유행했다.

반으로 접어 올려 붙힌 車窓은 그 접은 모양이 꼭 매미 날개같아 보였다.

드슈보는 달릴 때 車에 중심이 없는 듯이 앞뒤로 건들 건들 움직여 매우 불안전하게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만들다가만 車같은데 이것이 이차의 매력이었다.

나는 1972년부터 여름마다 이차를 타고, 덮게포장을 돌돌 말아 뒷窓에 매달아서 무개차로 만들고 남쪽으로 이태리와 스페인 그리고 홀란드와 독일을 건들거리는 ≪ 쿠션 ≫을 즐기며 미술관을 巡訪했다.

≪ 씨트로엥 ≫자동차회사에서 1940년대에 생산한 ≪ 드슈보 ≫는 프랑스 경제가 한참 어려웠을 때 프랑스人들이 國民車로 여기며 사랑했다.

그것도 그럴것이 주먹만한 600cc짜리 모터는 휘발유가 적게 들어서 앞서 가는 車의 휘발유 냄새만 맡아도 가는 車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또 잦은 파업때문에 만들다가 미완성인 채로 出庫된 차라서 다시 가지고 가서 마무리 해 달라고 해야 한다는 그런 弄들을 하면서 사랑했다.

이차는 십여년전에 프랑스人들이 애석해 하는 가운데 생산을 중단했는데 이렇게 만나니 鄕愁를 불러 일으킨다.

아무튼 친절한 할머니 덕택에 12세기 수도원 廢墟趾에 잘 도착했다.

외침에 의해 오래전에 부서진 수도원은 그 자취만 어렴풋이 남아있을 뿐이었고 관리하는 사람도 없고 방문객도 우리와 산책삼아 온 이 지방의 몇 사람들뿐이었다.

성당(까르뤽끄의 소성당) 基壇에서 보는 石棺무덤들이 특이했다. 아리스깡에서 본 석관들과는 다르게 커다란 바위덩어리에 구멍을 뚫고 屍身을 넣은 방식이었다.

바위를 깊이 파서 만든 회랑엔 시신 크기로 구멍을 파서 유해를 넣도록 한 붙박이 석관들이 한켠으로 줄지어 있었다.

회랑 위 노출된 바위 위로도 어린아이로 부터 成人에 이르기 까지 키 크기대로 뚫어서 만든 석관들이 나란히 있었다.

폐허지를 본 우리는 뤼브롱山 동쪽을 돌아 또하나의 중세도시 ≪ 뀌뀌롱(Cucuron) ≫에 닿아 도심에 있는 연못가에 차를 세웠다.

거기서 무너진 성채의 망루탑밑 테라스에 올라갔다. 거기에서는 우가 지금까지 지나 온 盆地와 분지 너머의 쌩트 빅뚜아르 山이 똑바로 보였다.

쪽빛 하늘아래에서 내려다 보이는 뀌뀌롱 市街地는 현대적으로 加味한 흔적이라고는 일체 보이지 않았다.

주홍색에 갈색이 섞여 도는 붉은 지붕을 이고 있는 퇴색된 흰 벽의 집과 로마네스크 교회당 종탑이 보일 뿐이다.

촘촘히 서로 붙은 붉은 지붕들은 50년대의 영화 ≪ 팡팡 라 튤립(Fanfan la tulipe) ≫에서 까망 마스크의 ≪ 제라르 필립 (Gerard Philip)≫이 검은 망또를 휘날리면서 칼을 휘져으며 뛰고 날라 다니던 지붕을 연상케 했다. 또 ≪ 장 지오노 (Jean Giono) ≫의 소설 ≪ 지붕위의 輕騎兵 Le Hussard sur le toit) ≫ 의 무대를 보는 것 같았다.

올라간 성채의 테라스를 반댓길로 내려가 우리는 중세마을의 차분한 아름다움을 다른데에서와 같이 여기서도 똑같이 지니고 있는 골목들을 나오면서 만난 광장의 분수물에 뜨거워진 손을 한번 담가 식히고 차를 세워둔 연못가로 돌아 갔다.

잉어떼가 몰려 다니는 직사각형의 연못은 제법 컸고, 오래된 프라타나스가 삥 둘러싸고 있어서 장관을 이루었다.

늙은 프라타나스는 프로방스에서 본 것 중 가장 우람하고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그 연못은 프라타나스 궁전 속에서 한껏 뽑내고 있었다. .

1720년에 휩쓴 무서운 페스트가 이마을만을 피해 간 것에 감사하기위해서, 5월 말에 이 프라타나스의 제일 높은 가지를 짤라내어 성당까지 운반하는 유명한 ≪ 뀌뀌롱의 五月 ≫이라는 祝祭가 이 마을에서 벌어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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