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나들이 17 - 별들의 고향 뤼브롱 산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5234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6.14. 09: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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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나들이 17 - 별들의 고향 뤼브롱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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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08

뤼브롱 山은 알퐁스 도데의 아름다운 단편 ≪ 에뚜알(별) ≫의 이야기가 깃든 곳이다.

7월 어느날, 주인집 딸 스테파넷뜨(Stephanette) 아가씨는 앓고 있는 머슴을 대신해서 노새를 타고 산 꼭대기에서 양을 키우는 목동에게 식량을 전해 주러 갔다가 폭우 때문에 마을로 내려가지 못한다. 스무살의 양치기는 짝사랑하던 아가씨가 별들이 알알이 박힌 밤하늘,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서 목동의 어깨 위에 무심히 기대어 잠들었을 때 저 하늘에서 오늘 밤 길 잃은 별이 내려와 자기 어깨 위에 잠들었노라고 했다.

나는 양치기 목동이 山속 어디에서 별을 잠재우고 있었는지 그 뤼브롱 山속에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다.

우리는 ≪ 미디(Le Midi : 南佛지방 전부) ≫ 全域과 알프스 기슭까지를 볼 수 있다는 뤼브롱山의 頂上(1125미터) ≪ 검은 얼굴(Visage noire) ≫을 向해 달리고 있었다.

山길, 이 모퉁이 저 모퉁이에서 본 가뭄으로 황폐된 라벤더 밭들을 안타까워 하면서 중턱에 오르니 불현듯 음지와 양지로 주름잡힌 넓디 넓은 벌판의 視界가 열렸고 前景엔 그림엽서에서 볼 수 있는 그런 古色蒼然한 마을이 道路에 열지은 赤松 들 사이 사이로 내려다 보였다.

그 마을을 그냥 지나쳐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워 아쉬어 했지만 갈 길이 바쁜 우리는 頂上 밑 마지막 마을인 ≪ 오리보(Auribeau) ≫마을까지 내처 가야 했다.

그러나 마지막 마을에 다달았을 때는 이미 점심때가 지나서 우선 점심부터 먹어야 했다.

그러나 산비탈 동네는 조그마해서 낡은 農家만 있었지 식사할 곳은 없었다.

비탈진 길가, 窓門 달린 出入門을 두들기니 앞치마를 두른 여염집 아주머니가 나와서 점심을 먹으려면 ≪ 세공(Saigon) ≫까지 가야 한다고 웃는다.

세공은 아까 아쉽다며 지나친 그림엽서와 같던 마을이다.

할 수없이 되돌아 내려 가는데 中年夫婦가 우리車를 향하여 地圖를 펼쳐 흔들며 구원을 요청했다.

그 홀란드 부부는 얼굴에 흠뻑 젖은 땀을 햇빛에 번쩍이며 지금 자기들이 걷고 있는 이 길이 어느 길인지 알고자 했다.

이곳 地理를 훤히 파악하고 있던 나는 펼친 지도위에 現位置를 정확히 點찍어 보였다.

베낭을 짊어진 그들의 山行은 힘 들어 보였지만 太陽이 모자라는 北 유롭人들이라 南佛의 뜨거운 태양을 흠뻑 받는 행복감에 젖어 있었고 길을 정확히 알게 된다음엔 가던 길을 向해서 더 자신있게 걷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을 세공 마을은 과연 옛스러운 情致가 그윽하기만 하여 시간이 아주 아주 옛날에 停止돼 있는 곳 같았다.

레스토랑을 찾으니 예약이 완료된 食堂이 마을 입구에 하나 있고 점심을 때우기엔 좀 비싸기도 하고 먹는 시간이 좀 오래 걸려야 할 것 같은 또 하나의 레스토랑이 분수가 있는 아담한 廣場에 面해 있었다.

망설이던 우리는 두食堂 사이에 있는 簡易식당에서 야채셀러드와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며 시간을 절약하기로 했다.

그 식당 테라스는 양산살처럼 줄기를 펼친 나무가 넓적한 잎으로 그늘을 내리고 있었다.

풀과 나무를 보면 언제나 관심을 갖는 美羅麻와 柏田은 시원한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일까가 궁금 했는데 샌드위치를 날라온 ≪ 세르버즈(식당 여자점원) ≫아가씨가 뽕나무라고 곧 대답해 주었다.

아닌게 아니라 발 밑에 더러 떨어져 있는 길죽한 딸기같은 검은 열매들이 혹시 뽕나무 열매인 오디(桑實)가 아닐까 하고 美羅麻가 占치긴 했었다.

하긴 뤼브롱 地方 산속 토박이들이 옛날부터 해온 일이란 羊 기르는 목축업과 올리브 밭, 포도 밭, 라벤더 밭과 잡곡 밭을 경작했고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기르고 고치를 치는 일이었다.

서양에 와서 예기치 않게 뽕나무 그늘 아래에서 점심을 먹은 것이다. 뽕나무 故鄕은 東洋일진데, 이런 外地 地中海 沿岸지방 風土에서도 길들여 자라고 있는 것이리라.

≪ 뽕나무 아래에서의 점심식사 ≫후 우리는 곧바로 오리보 마을로 다시 가서 아름다운 꽃길로 인도된 산기슭 登山客 주차장에 車를 세웠다.

프로방스에 도착 첫날에 ≪ 세잔느의 스켓치 길 ≫을 따라서 ≪ 쌩뜨 빅뚜아르 ≫山을 오를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볼 것도 많은 데 山은 멀리서 쳐다 보고 끝내자는 之空의 제안으로 그냥 넘어간 적이 있었다. 그러기에 주차장에서 부터 5킬로가 넘는 山 頂上까지 往復해 볼 욕심들은 처음부터 모두에게 없었다.

마침 미스트랄이 세차게 불었고 오후의 일정을 위해서 힘을 아끼자면서 등반도중에 뒤돌아 내려와 다음 行先地로 유감없이 떠났다.

꼬불랑 거리는 지방도로 48번 산길을 돌고 돌아 내려와서 탄탄한 국도 100번을 만난 다음 곧 또 하나의 로마도시 ≪ 세레스트(Cereste) ≫에 닿았다.

그러나 로마유적을 또 찾아 보기 보다는 큰길가에 화살표로 표시해놓은 도자기工房을 방문해 보기로 했다. 도자기는 조안(朝安)에게 관심이 많은 분야다.

지중해 연안 나라를 여행하게 되면 到處에서 도자기 제조소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도 쉽게 눈에 띈 것이다.

우리의 인기척을 듣고 가슴까지 올라오는 작업치마를 두른 젊은 女陶工(陶藝家)이 안에서 가게로 나와 인사를 하고는 窓가에 마련된 작업대로 가서 아무말없이 흙반죽을 했다.

조안은 진열된 도자기 작품들을 이것 저것 흥미있게 살피다가 마음에 드는 그릇을 둘 골랐다. 美羅麻도 작품에 끌렸는지 받침있는 찻잔을 잡았다.

나는 흙반죽을 하는 젊은 女陶工에게 흙은 어디서 가져 오는 흙이며, 도자기 만든지는 얼마나 됐으며 여기 벽에 붙힌 老人사진이 선생님이냐고 괜히 묻고 있었다.

젊은 여도공은 조안과 美羅麻가 고른 그릇을 정성을 다하여 엷고 부드러운 색종이로 겹겹히 싸고 리봉을 맸다.

≪ 안리즈 베스(Annelise Vaysse) ≫라는 이름의 이 女도예공은 장식용으로 쓰거나 일상생활에서 실용적으로 쓸 수 있는 食器를 ≪ 파이앙스 ≫ 도자기로 구어내고 있었다.

四角形 혹은 타원형의 넓적한 접시에 경쾌한 수채화의 느낌처럼 투명한 색상과 필치로 새와 염소, 프로방스의 들꽃과 하늘에 떠있는 가벼운 구름, 과일과 채소를 침착하게 그려 넣었다.

찻잔과 그릇(容器)에도 그런 그림들로 채워서 여성다운 잔잔함과 다정함이 배어난 무리없는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조안을 향하여 이분도 도자기를 배우고 있다고 했더니 반색을 하면서 조안에게 뒷쪽의 작업장과 가마를 보여 주겠다고 해서 우리도 덕분에 따라 들어갔다.

그 뒷쪽은 둥근 천정으로 궁륭을 이룬 동굴속 같았다.

거기에 놓인 재료들을 소개하여 여도공은 이런 유약을 사용해서 이런 절차로 유약을 바르고 이 電氣가마가 한번에 구워낼 수 있는 작품수가 몇개나 되며 안료는 무었을 쓰고 어떻게 채색 하노라고 자기의 秘法같은 것을 조안에게 친절히 설명했다.

그리고 이곳 ≪ 보끌뤼즈(Vaucluse) ≫와 알프스쪽 북부 프로방스 지방에만도 100개 이상의 요업소(도자기 혹은 도기 제작소)가 있어서 이들로 구성된 ≪ 프로방스의 흙 ≫이라는 이름의 도자기협회가 있다고 했다.

협회에서는 門戶를 세계로 開放하고자 外國의 도예가들과 交流展을 개최하고 있는데 작년에는 일본 도예가를 초청해서 전시회를 열었다고 했다.

또한 협회는 부활절(四月 中)에서 부터 ≪ 노엘(Noel : 크리스마스) ≫까지 스물 다섯번의 도자기市場을 到處에서 열고 있어서 거기에 매번 참가하고 있으며 금년10월초에는 파리근교 믈렁(Melun)市에서 열리는 全國市場에도 참가할 예정이라고 자기의 창작활동을 소개했다.

여도공은 紅潮를 띈채 이렇게 설명을 열심히 했는데 매우 수줍어하는 기색이 너무나 역역했다.

이런 수줍은 表情의 아가씨를 본지가 하도 오래된 나머지 우리는 모두 잊고만 있었던 그 새로운 純眞함에 마음속으로 놀라워 하고 있었다.

≪ 까르멘 ≫중에서 ≪ 돈 호세 ≫의 ≪ 미카엘라≫와 같은 순진한 시골처녀를 프로방스 구석에서 찾아 낸 것이다.

그녀는 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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