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나들이 15 - 언덕위의 중세마을들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2673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6.07. 16:5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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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나들이 15 - 언덕위의 중세마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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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9

알리스깡 근처 길 아래쪽 눈부시게 하얀 모래마당에서는 한 무리의 ≪ 프로방소(Provencaux :프로방스사람들) ≫가 ≪ 뻬땅끄(petanque) ≫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판판한 사각형 마당은 햇빛에 번쩍이는 플라타나스에 둘러싸여 있었다.

햇볕에 태운 검은 피부의 건장한 노인들과 장년의 사람들이 섞여서 뻬땅끄 놀이에 열중하는 정경은 남 프랑스의 한가한 여름 오후와 잘 어울려 보였다.

두 팀으로 나뉘어 한 사람씩 쇳덩어리 공을 번갈아 굴려서 ≪ 꼬쇼네(cochonnet : 표적으로 삼은 조그만 나무 공) ≫ 옆에 상대방보다 가까이 대면 점수를 따내는 공놀이다.

뻬땅끄 경기가 벌어진 둘레의 구경꾼과 코트밖 벤치에 앉은 구경꾼들은 마악 공을 던지려는 신중한 자세의 선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공을 맞추는 선수였는지 손에서 공이 날아가자 꼬쇼네옆에 이미 선점해 버티고 있던 상대팀 공을 정통으로 맞쳤다.

≪ 딱 ≫하는 쇳덩어리와 쇳덩어리가 부딛는 명쾌한 소리가 둘러싸인 플라타나스 숲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팀에겐 분명 얄궂은 소리였을 것이다.

선점해 있는 상대편 공을 때려서 멀리 쳐 내고 그 자리에 자기 공을 앉히는 ≪ 까로(carreau) ≫라고 부르는 어려운 묘기를 부린 것이다.

이 유명한 프로방스의 뻬땅끄놀이는 프로방스 뿐만 아니라 여름이면 프랑스 전국 어디서나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섞여 즐기는 스포츠다.

≪ 마르세이유 ≫에서 세계 뻬땅끄 선수권대회를 해마다 개최하고 있는데 멀리 일본선수들도 매년 참가하고 있다.

아를르를 떠나기 전 우리는 이 도시를 관통해 흐르는 론느강 강 뚝으로 올라가 오후의 햇살 속에서 유유히 흐르는 넓은 수면에 비친 아를르의 고전적 그림자를 한번 더 보고 지나침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예약한 저녁에 늦지 않으려고 일찌감치 민박집으로 향했다. 다행이 교통이 순조로워 도착이 일러졌기 때문에 오갈 때마다 멋있어 보인 절벽꼭데기 마을을 한번 올라가 볼 시간이 있었다.

그 마을은 ≪ 미라마-르-비으(Miramas-le-Vieux)≫라고 불렸는데 미라마라는 도시가 또 옆에 있어서 ≪ 옛 미라마 ≫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모양이다.

오르는 길은 간선도로에서 부터 가파른 언덕길을 돌고 돌아서 올라가야 했는데 다 올라 갔을 때 멋들어진 老松의 아치가 우리를 맞이했다. 그 소나무아치는 마을로 들어가는 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지방에 흔한 성벽을 둘러치며 요새화 한 중세 마을이다. 높은 절벽 돌출부에는 13세기 때의 성채가 세워져 있고, 성채 밑으로 연달아 붙은 마을은 프로방스에서 많이 보는 투박하지만 정다운 돌집들로 가득 차 보였다.

대충, 더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만 묘하게 보수해 놓아 성채의 원형을 짐작케 하였을 뿐인데 하늘로 뻥하니 구멍을 뚫어 놓은 것 같은 창문과 아치형의 문짝이 없는 문, 그리고 성채 내벽의 흔적과 잔재가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 내고 있어서 마치 고전연극장 무대장치를 연상케 했다.

베르디의 ≪ 일 트로바토레(음유시인) ≫의 무대라고나 할런지 ? 실제로 이 지방은 일 트로바토레들의 활기가 가장 활발했던 지역이다.

낮은 성벽을 친 테라스로 부터는 돌집마을에 비하면 초현대식 농가의 붉은지붕과 흰벽이 틈틈히 놓여있는 ≪ 뚤루르브(Touloubre)≫계곡이 내려다 보였다.

그 반대편으로는 노송이 만든 아치아래로 베르호수가 잔잔하기로 치면 누워있는 넓다란 거울같아서 그 노송과 호수가 만든 운치는 한폭의 동양화처럼 보였다.

이 경순씨는 석양의 이 마을에 완전히 매혹되었는지 ≪ 이제부터 나는 아호를 미라마로 하렵니다 ≫라고 내리막길 차중 뒷좌석에서 갑자기 선언했다.

≪ 미라마(美羅麻) ≫라는 아호가 태어난 순간이다.

모두가 새 아호가 좋다고 한 마디씩 하고 축하했다.

우리는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민박집 가까이에 있는 또하나의 조그만 중세마을 ≪ 꼬르니용-꽁푸(Cornillon-Confoux)≫에도 올라가 보기로 했다.

높은데 있으면 다 그렇듯이 방금 본 옛 미라마와 똑같이 절벽 바위위에 걸터앉은 전형적인 중세촌락인 이 마을도 사방에 아름다운 전망을 부럽도록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

언덕의 중심부에는 햇빛을 받아 화사한 빛을 내 뿜는 마을의 돌집들이 있고, 그 둘레를 절벽을 따라 도로가 띠같이 둘러 있어 어디에서나 전망이 좋았다.

덕분에 우리는 사방팔방을 다 전망해 볼 수 있었는데 잔잔한 베르호수가 더 높은 각도에서 가까이 보였고, 호숫가 쌩 샤마의 市街地, 뚤르브르강과 넓디 넓은 벌을 이룬 ≪ 사롱 ≫지방, 그리고 더 멀리로는 ≪ 뤼브롱 ≫산맥과 ≪ 방뚜 ≫산 정상까지 거침없이 똑바로 보였다.

꼬르니용-꽁푸에서 내려와 쌩-샤마로 들어 가는 길 오른편에는 1세기때의 ≪ 뽕 플라비앙(Pont Flavien) ≫이라는 옛 다리가 있었다. 뚤르브르강을 건너 띈 이다리는 플라비앙이라는 로마귀족이 세운 다리인데 두개의 개선문위에 작은 사자상들을 올려놓아 장식해 놓았다.

그러니까 남불엔 사방에 이런 로마의 유적이 흩어져 있는 셈이다.

그런 구경을 덤으로 하고 나니까 우리는 민박집에 저녁 8시 20분쯤에야 도착했다. 부리나케들 대충씻고 약정된 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저녁식탁에 앉았다.

오늘의 긴 일정에 모두 좀 피곤했지만 야외 식탁에 놓인 포도주와 스테파니가 날아다 주는 맛있는 음식들을 보니 즐거웠던 하루를 더 연장하기 위한 유쾌한 저녁시간을 갖고 싶었다.

스테파니는 오븐에 구어낸 돼지고기를 내왔다. 어깨고기 살을 실로 칭칭 감아서 구어낸 요리였다.

아침에 떠날 때 스테파니에게 식성이 까다로운 조안을 생각해서 메뉴를 소고기나 생선으로 주문했어야 했던 것인데 조안은 오늘 저녁식사에 또 운이 없었다.

아무튼, 모두들 여행의 훈훈한 분위기에 취하고 포도주에 취해서 유쾌히 떠들었다.

운전을 계속할 필요가 없어진 나는 마음 놓고 포도주잔을 기울였다.

디저트까지 먹었으나 모두들 일어날 줄을 몰랐다.

스테파니가 퇴근해야 했기 때문에 몇 병의 포도주를 더 달라고 하여 치즈접시를 들고 객사 현관문 앞의 정원식탁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엔 외등이 없었고 사람이 나타나면 저절로 켜지는 센서 조명등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켜졌던 외등은 잠시 후 꺼졌다.

밤하늘엔 초생달이 걸쳐 있고 별들은 초롱초롱하였다. 어스름한 달빛이 밤의 분위기를 더욱 그럴 듯 하게 만들었다.

초생달이 집 너머로 사라진 후에는 어두워서 불을 켜야 했고, 그 때 마다 우리는 센서 조명등에 손을 높이 쳐들고 흔들어 불을 켰다. 다 큰 어른들이 어둠 속에서 그 장난들을 하면서 재미있다고 한참 동안 웃어 댔다.

불이 꺼지고 나면 캄캄한 밤하늘엔 수많은 별들이 다시 반짝였다. 우리는 별빛 속에서 별들을 쳐다 보면서 포도주잔을 기울였다.

밤 하늘에 뿌려진 수많은 별들을 보면서 우리는 먼 나라 먼 시간의 먼 곳으로 헤매고 있었다. 서로의 희미한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거나, 쳐다보다가는 희미한 미소를 짓거나 그러다가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모를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새벽 2시까지 거기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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