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나들이 11 - 아를르와 압상트주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5230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5.29. 20:17:58
첨부파일  
프로방스 나들이 11 - 아를르와 압상트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003-9-27

절벽위 ≪ 레 보 ≫마을에서 저녁을 먹으려던 우리는 라르슈 카페의 언짢은 일로 해서 관광안내소 앞에 있는 카페의 테라스에서 드미 한잔씩만 마시고 일어났다.

우리는 ≪ 아를르 ≫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시인과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불어 넣어준 아를르, ≪ 론느 ≫ 강가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고대-중세 도시는 내일 가는 것으로 예정돼 있었지만 오늘 저녁때 미리 입성해 보자고 한 것이다.

북쪽 성문을 통과해서 아를르로 들어간 우리는 곧바로 ≪ 아렌느 ≫(원형경기장)가 있는 고풍스러운 동네로 가서 주차장을 찾아냈다.

고대 반원형 노천극장과도 가까이 있는 아렌느는 님므의 것과 거의 같은 때 세워졌으며 크기도 거의 같다.

그러나 님므의 아렌느는 평지에 세워졌지만 여기는 비탈을 깍아논 평지에 세워서 아래쪽에서 올려다 볼 때 더욱 웅장해 보였다.

이 아렌느도 역시 잔인스러운 검투사시합이 중단된 후에는 경기장속을 도시속의 도시로 만들어서 한때는 200채의 집과 두개의 소성당이 있었다.

나는 미슐렌에서 추천한 ≪ 르 크릭께 ≫라는 레스토랑이 있는 ≪ 뤼 뽀르트-드-로르 ≫거리를 그 근처에서 찾고 있었다.

그집에 가면 젊은 주방장이 조리하는 ≪ 브리드(부이야베스의 일종) ≫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주석이 있었다.

아마도 비정규직 예술인 파업사태때문인지 여름축제 공연장인 아렌느주변엔 바리케이트를 치고서 경찰 두명이 경비하고 있었는데 한 경찰에게 다가가서 찾는 레스토랑이 있는 길을 물었다.

샌드윗치를 먹고 있던 경찰은 그 집은 정규휴일로 문을 닫았다고 했다.

그러면 어느 식당 하나를 추천해 줄 수 있는가 했더니 저 골목안이 그 길인데 그속에 있는 ≪ 루 깔르 ≫ 라는 식당이 괜찮다고 하면서 실망하지 않을 것 이라고 덧붙혀 줬다.

그 골목안엔 조그만 식당들이 많았다. 우리가 그 식당을 찾아 들어가니 생긋 웃는 젊은 ≪ 세르버즈(여자 종업원) ≫가 반가이 맞으며 가운데 하나 남아 있는 테이블에 우리를 안내했다.

≪ 에어 콘 ≫시설이 없는 식당안은 더웠기 때문이어서 식당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었는데 마침 앞쪽에 있는 고대극장 실편백 나무 사이로 불타는 석양빛이 우리 테이블을 뜨겁게 덮치고 있었다.

나는 석양을 정면으로 받아 눈이 부셔서 찡그리고 있자니 재빠른 주인여자가 얼른 가서 문을 닫아 햇빛을 차단해 주었다,

문을 닫고 성큼 우리 테이블로 온 주인은 메뉴판을 나누어 주면서 아페리티프를 들겠느냐고 물었다.

메뉴공부와 시킨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에 한잔씩 들자고 눈짓으로 주고 받은 우리는 아페리티프를 주문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생긋 웃은 세르버즈에게 조안과 미라마는 백포도주에 ≪ 오렌지 시럽 ≫을 탄 ≪ 오렌지 콜롬보 ≫라는 술을 골랐고 우리 남자 셋은 ≪ 압셍뜨 ≫를 시켰다.

지공과 백전은 파리에서 부터 프랑스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압셍뜨라는 술을 맛보고 싶어 했다.

파리에서의 두번째 날 저녁, ≪몽빠르나스 ≫에 있는 ≪ 라 꾸뽈 ≫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을 때 우리는 아페리티프로 대뜸 압셍뜨를 마시겠다고 갸르송에게 주문 했었다.

몽빠르나스 거리에서 최초로 생긴 라 꾸뽈은 ≪ 라 벨에뽁끄( 황금시대) ≫ 라고 부르던 ≪ 생활이 즐겁고 유쾌하기만 해서 빠리쟝들이 한창 흥청거리던20세기벽두 ≫ 에서 부터 유명한 레스토랑이다.

깔끔한 검은 정장의 라 꾸뽈 갸르송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우리집에는 그 술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말해논 갸르송은 설명이 더 필요했던지 아마도 그 술은 지금 판매가 금지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나는 의아해서 왜 판매를 금지했더냐 물으니 갸르송은 웃으며 검지 손고락을 머리에 대고 빙글 빙글 돌렸다. 그 술이 머리를 돌게했다는 뜻이다.

그러더니 갸르송은 조금 자신이 없어서 였는지 ≪ 마조르돔므(급사장) ≫ 에게 가서 물어 가지고 정확히 알아 오겠다 하면서 돌아 갔다.

갔다 온 갸르송은 20여년전에 그술은 판매금지시켰다가 최근에 다시 판매허가가 났다는데 지금 우리식당엔 없다고 하면서 당신들이 만약 프로방스에 간다면 원산지인 그곳에서 진짜 압셍뜨를 찾아 마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미술가, 문학가, 철학자와 시인들을 비롯한 숫한 파리의 명사들이 드나들면서 마셨을 압셍트를 라꾸뽈에서 맛 볼수 없었다.

그런데 라 꾸뽈에서의 저녁후 지공은 압셍뜨를 기어이 오늘 맛 보고 싶다고 우겼다.

그래서 길건너에 있는 몽빠르나스에서 또하나의 유명한 카페인 ≪ 세렉뜨 ≫로 옮겨가서 압셍뜨를 기어코 시켜서 마셨는데 그것이 석연치 않았다.

석연치 않았던 이유는 우리가 시킨 압셍뜨를 갸르송이 아무런 군말 없이 가져 왔으나 빠스띠스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났고 나중에 보니 아닌게 아니라 우리가 마신 술은 빠스띠스로 계산서에 찍혀있었기 때문이었다.

빠스띠스와 압셍트는 맛이 비슷하지만 ≪ 쓴 쑥 (압셍뜨) ≫으로 만드는 녹색빛의 압셍뜨는 빠스띠스보다 더 씁쓸하다.

그러나 압셍뜨는 독성이 강하고, 중독성이 있었음에도불구하고19세기 말엽에 크게 유행했었다.

루 깔르의 생긋이 잘 웃는 세르버즈는 우리가 시키는 진짜 압셍뜨를 정말 주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어이 본고장에 와서 압셍뜨를 맛 보게 돼서 기뻤다.

역시 압셍뜨는 향기와 씁쓸한 맛이 특이했고 물을 탄 녹색의 알콜은 연두색이 은은히 투명하여 어쩐지 황홀해 보였다.

우리는 연두색 석잔과 오렌지색 두잔을 부딛혀 프로방스의 명소 아를르에서의 저녁식사를 자축했다.

이렇게 시작한 저녁을 풀코스로 배불리 먹고 11시가 넘어 식당에서 나오니 아까는 웅장하게만 보였던 아렌느가 어디서부터 비쳐지는지 모르는 은은한 조명의 효과로 군청색 청청하늘아래에 우아하게 서 있었다.

아를르를 빠져나와 캄캄한 길을 따라 쌩 샤마로 향할 때 뒤에 앉은 지공은 오늘저녁 자기의 메추리고기가 쫄깃 쫄깃한게 양념도 정말 맛있었노라고 또 한번 자랑했다.

옆에서 힐끗 보기에도 맛있게 보이던 개구리 뒷다리 같이 생긴 지공의 메추리 넓적다리는 한쪽은 노릇 노릇하도록 잘 굽고 반대쪽은 슬쩍 구운 것이었다.

지공이 맛있다는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모두 조금씩 뺏어서 맛을 봤는데 연한 살에 감칠맛이 특별했다.

통통히 살찐 넓적다리에 소금과 후추가루를 치고 밀가루에 한번 굴려서 겨란을 풀은 그릇에 담갔다 건져 빵가루를 묻히고, 펄펄 달군 프라이 팬에 버터로 한쪽을 잘 지진 그런 조리를 한 것 같았다.

우리는 저녁때 레스토랑이 추천하는 메뉴인 향토메뉴를 각자 시키고 포도주로는 프로방스에서 이름난 ≪ 샤또 시몬느 ≫를 곁들였다.

그러나 나는 운전을 해야 해서 포도주 한모금으로 참아야 했는데, 그러니까 술 맛이 안난다고 하면서 모두 사양하는 바람에 포도주 한병만으로도 메뉴의 끝코스인 치즈까지 갔다.

아무튼 아를르에서 쌩 샤마까지의 길은 뻔한 길이었는데도 밤중 이정표에 햇갈려 좀 헤멨고 쌩 샤마에서 와서도 행인에게 길을 묻고 물어서야, 결국 밤12시가 훨씬 지나서 민박집에 겨우 도착했다.
Total : 76개 (page : 2/6)
처음 페이지 이전 페이지 1 2 3 4 5 6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