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 ami 베르나르 앙또니오즈 (6) - 궁리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815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8.28. 17: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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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ami 베르나르 앙또니오즈 (6) -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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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8-27

유럽에 가서 서양미술을 직접 목격하고 푼 갈망은 서양의 반대편에서 서양화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화가로서는 아주 당연한 것이리라.

옛날 화가들의 그 갈망은 더 더욱 컸었을 테니 더 이상 말 할 필요가 없지만 나도 대망의 꿈을 품고 파리로 떠날 때는 무엇 보다도 화집에서 보던 지옷또와 세잔느를 직접 보고 싶어서 였다.

프랑스 사람들이 너는 왜 여기 왔느냐고 호기심으로 물어 올 때는 서양미술이 정말 무었인지 목격하러 온 것이라고 주저없이 대답했었다.

우리나라 서양화가로 파리에 처음 도착한 화가는 젊은 배운성이었는데, 때는1923년이었다.

배운성은23살의 새파란 청년으로 파리에 체류해 보고 귀국했는데, 4년후에 파리를 못 잊어 다시 왔다가, 당시 프랑스에서 강하게 불던 좌익사상에 기울었는지 6.25동란때 월북하고 말았지만 자진해 간 땅에서 대접을 못 받고 오히려 미움을 사게되어 귀양살이로 고독하게 죽었다.

18살 어린나이에 동경유학을 떠났던 이종우가 그리운 파리로 온 때는 배운성이가 다녀간 2년 후인1925년이었다.

파리에 도착한 이종우는 3년동안 체류하면서 슈하이에프 연구소를 다니고 유화 ≪ 인형이 있는 정물 ≫ 을 1927년도 살롱 도똔느에 출품하여 입선하면서 서양의 살롱에서 입선한 우리나라 최초의 화가가 됐다.

동경에 유학했던 비련의 여류화가 나혜석이 세계일주에 나서서 1927년, 파리에 왔을때 그녀는 31살의 유부녀였다. 파리에 와서 보고 나혜석은 자기가 그려온 그림이 모두 가짜였다는 아품의 말을 파리에서 만나 연애에 빠진 최린에게 고백했다.

서양을 보고가서 오산중학교 미술교사로 있으면서 이중섭을 화가의 길로 떠민 임용련이 파리에 도착한 때는 그의 나이가 한창 때인 28살 때 였다.

임용련은 1929년, 미국 예일대학에 유학중에 대서양을 건너 파리에 왔다가 파리에 와 있는 25살의 백남순을 만나 결혼하고 이듬해 귀국, 서울에서 귀국 부부전을 열고 대환영을 받았다.

지긋지긋한 일제 식민지 치하, 한반도 안에서 열렬한 화가지망생들이 서양미술에 대한 앎이란 일본화단을 통한 간접적인 것 뿐 이었을 때, 동경을 거쳐 파리에 체류했던 화가들과 미국과 독일에서 공부한 장발 등은 서양미술을 본고장에서 직접 보고, 수업을 받고, 연구 했었음으로 해서 후진들에게 서양미술을 똑바로 전달할 수 있어서 서양미술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의 길을 열어 준 공로자들임이 틀림없다.

해방을 맞은후, 우리나라 화가들이 본격격으로 파리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부터 였다. 그러나 6.25전쟁과 가난때문에 금지 시킨 해외여행 때문에 먼저 세대와 같은 젊은 나이에 유학을 떠나지 못하고 모두 다 나이를 많이들 먹은 다음이었다.

김환기, 김흥수, 나희균, 남관, 이응노, 권옥연, 손동진,이세득, 함대정,박영선 등이 1950년대에 파리에 온 작가들이다. 이성자는 화가가 아니 었으나 파리에 도착하면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는 변종하, 한묵, 문신, 방혜자, 이용환, 김창열 등의 작가들이 파리에 왔는데 그때부터 장기적으로 계속 머룰기 시작하는 작가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이종우가 파리에 도착한 1925년 즈음, 프랑스에 있던 우리나라 사람수는 27명 이었다고 한다..

1971년, 내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의 한국인은 대부분 유학생으로 약 500명가량 이었는데 미술가로서는 남관, 이응노. 이성자. 문신, 한묵, 방혜자. 김창렬이 계속 머물고 있는 작가들 이었다.

1980년 부터 30세 미만의 청년층 미술가들이 파리에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는데 새로 도착하는 청년들은, 프랑스로 온 목적이 옛날에 먼저 도착한 선배미술가들의 그것과 많이 틀렸다.

그들의 대선배 작가들은 고국을 떠날 때 서양의 본고장 화단에 어떻든 간에 쳐들어 가서 명성을 얻고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화가로서의 한번의 운명을 요절 내려고 왔다면, 뒤에 온 청년 작가들은 아무리 부딛혀 봐야 좀쳐럼 통하지 않는 파리화단에서 미련스러운 뚝심으로 개성을 발휘해 보기 보다는 공부와 노력으로 시간만 들이면 인정받을 수 있는, 인문대학에서의 미술사나 조형미술학 같은 이론적 학문으로 미술학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고국에 돌아가 대학의 교수직을 겸한 작가생활을 더 바라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미술학교을 다니는 유학생 보다는 미술학을 강의하는 인문대학 쪽에 적을 두고 있는 유학생들이 점점 많아져 갔다.

그러나 순수미술을 하는 작가들이 너무 많은 나머지, 너무나 많은 작가들이 살아 생전에 알려져 보지도 못할 창작품을 위해 일생을 어이없이 허비 해 버리는 것 보다는 삶의 철학이 변한 오늘 날, 어떻게 보면 그것이 훨씬 낳은 선택 일지도 모른다.

1990년도 IMF 직전, 프랑스에 체류하는 한국인은 급작스럽게 불어나서 그 수가 만여명이 넘을 것 이라고 들 했는데 미술로 체재하는 사람도 많아서 모두 다 합치면300명이 넘을 것 같다고 했다.

파리에서의 미술공부의 영역은 매우 광범위 해서 순수미술, 응용미술, 건축 뿐만아니라 도자기, 색유리, 따삐스리, 도시계획, 환경미술, 디자인, 의상디자인, 미술이론, 영화, 만화영화, 사진, 비디오, 설치미술, 해프닝, 퍼포먼스, 컴푸터 그래픽, 섬유미술, 의상디자인, 만화 등등 날이 갈수록 헤아릴 수없이 전문분야가 다양해 지고 있기 때문에 파리에서 누가 무엇을 하십니까 물으면 딱 대답할 말이 없을 때는 미술을 공부합니다로 대답하면 파리가 예술의 도시이기 때문에 그 답변이 이상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증가하다가 IMF사태가 터지자, 미술로 체류하는 사람들도 부쩍 줄어서 지금은 파리에 있는 한국미술가들의 숫자가, 적게 추산할런지 모르지만100명 내외일 것으로 보인다.

1982년, 국립현대미술관 주최로 재외 작가 초대전이 서울에서 처음 열렸을 때 초대를 받지 못한 재불작가들이 불만을 품고, 들고 일어나 초대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이었냐고 항의 하기 시작 했다.

현대미술관측은 프랑스에 체재하면서 현지에서의 작가 활동으로 작가의 삶을 영위 하는지에 초대의 기준을 두었다고 잘못 대답했다가 초대받지 못한 작가들이 초대작가 중에 누구 누구는 한국에서의 송금으로 살고 있는 작가라며 증거까지 대고 명단까지 발표하면서 항의하는 바람에 대소동이 벌어졌다.

이런일이 벌어진 후, 국립현대미술관은 계속 개최하려던 재외 작가 초대 전시회를 중단해 버렸다.

초대 전시회가 끝나서 반송되 온 출품작을 찾으러 문화원에 갔을 때 초대 문화원장 Y씨는 출품한 작품을 모두들 돌려 받지 않고 현대미술관에 기증한다고 했는데 나만이 반환을 요구했다며 공연히 언짢은 표정을 보였다.

그때 Y원장은 한국작가들이 파리에서 전시회를 갖기가 매우 어려운 처지에 한국문화원이 개원됐으니 재불작가들에게 얼마나 좋습니까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프랑스에 오래전 부터 와 있던 작가들은 문화원에서 전시회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었지만 그런 연륜이 있을 수 없는 온지 얼마 안 된 청년작가들은 문화원에서 전시회를 해 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청년작가가 전시회를 열려면 개인전은 받아주지 않았고 외국작가를 동반하는 2인전이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구룹전을 열어야 했다.

파리 한국문화원이 파리에 오래 있는 화가의 작품전을 개최하는 것도 개최하는 것이지만 파리에서 발표해 볼 기회가 별로 없는 청년작가들의 전시회를 좋은 기획하에 자주 열어서 파리 화단에 청년작가들을 적극적으로 데뷰시키기는 일도 매우 중요할 것 이었다.

1983년, 에꼴데보자르에 다니는 청년들이 중심이 되서, 프랑스에 적응하기에 어려운 청년들 서로간 상부상조하려는 목적의 재불청년작가협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해 부터는 문화원에서 자기들 협회전을 매년 열기 시작했다.

1970년 초, 재불작가들이 객지에서 일년에 한번이라도 만나 서로 인사하고 지내자는 의미의 재불작가친목회를 만들려고 시도했다가 그런 친목회가 무슨 소용이 있다고 만드느냐는 반대에 부닺쳐 좌절된 역사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1980년 초, 재불미술가협회를 만들면 고국의 문예진흥원에서 많은 후원금을 지원 받을 수 있다면서 누군가가 주동이 되어 갑작스럽게 창립되는 단계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의 해외작가초대전 불만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저절로 와해 돼 버렸다.

물론 작가들은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섣불리 친목회같은 데 끼지 않으려는 작가도 상당수 있고, 반대로 외지에서 외롭게 스스로 차단하고 있느니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활기를 얻고자 협회 가입을 원하는 작가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파리에 살면서, 먼저 도착한 선배로서 나중에 도착하는 후배들인, 청년작가들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격려해줘야 할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며, 그리고 프랑스 생활에 적응하고자 애쓰고 어려웠던 때의 기억과 더불어, 되도록 시간을 내어 청년작가들의 전시회에 가 보았고 문화원에서 열리는 재불청년작가전을 관심을 갖고 관람했다.

재불청년작가 협회전은 작품 성향이 같은 작가들이 모인 구룹전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히 경향이 각기 다른 작가의 작품전 일 수 밖에 없었지만, 나는 전시회를 보고 나오면서 저 젊은 작가들 중에 빼어난 훌륭한 작가가 있다고 한다면 그를 어떻게든 밀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하고 매번 궁리 해 보았다.

왕복 약 1시간 걸리는 나의 집에서 문화원 사이의 길은 세느 강을 건느기도 하면서 고개를 들기만 하면 하늘 속 에펠 탑 정상이 보이는 샹-드-마르스를 내내 걷는 공원 길 이어서 그런 저런 궁리를 하기에 아주 좋은 걷는 코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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