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 ami 베르나르 앙또니오즈 (4) - 10주기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2819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8.14. 10: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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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ami 베르나르 앙또니오즈 (4) - 1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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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4

10년전 프랑스 혁명기념일인1994년 7월 14일, 정오 무렵 시골집의 전화가 울렸다.

정원에 나가 있던 나는 이상한 예감을 느끼며 집안으로 들어가 수화기를 들었을 때 전화를 건 사람은 뜻밖에도 즈느비에브 앙또니오즈 임을 알았다.

즈느비에브는 매우 침착한 목소리로 오늘 아침에 베르나르가 운명했다고 알리고 있었다.

나는 나의 귀를 의심했다. 아무런 건강문제가 없었던 베르나르가 갑자기 돌아 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베르나르는 은퇴해서 심심히 지내고 있었지만 건강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당시 시골에 있는 아뜰리에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베르나르를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곧 뤽상부르그 공원 뒷쪽에 인접해 있는 집으로 달려가 애도의 뜻을 표하기 위해 서둘렀다.

그날은 여름 바깡스 철이고 더구나 국경일인 휴일이어서 늘상 차량이 많은 파리로 올라가는 국도 20번 도로는 한산했다. 한시간 가량 운전해 가면서 베르나르를 만난 날 부터 지금까지 베르나르에 대한 많은 생각이 겹치고 겹쳤다.

파리의 길거리도 매우 한산했다. 수직으로 내려 쬐는 따거운 햇볕은 쭉 늘어선 가로수의 그림자를 땅에 진하게 드리웠다. 간간히 걷는 사람들의 그림자도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주차하기에 항상 어려웠던 뤽상부르그 공원 주변 가로수 길에도 차 세울 자리가 많았다.

파리 6구 블르바르 쌩미셀에서 가지를 친 길 오귀스트 꽁트에 있는 석조로 짓고 외관을 조각한 아파트의 육중한 나무 문을 열고 세 사람 밖에 타지 못하는 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데기 층에서 내렸다.

오래간 만에 방문 한다는 것이 베르나르의 죽음에 대하여 조문하러 오게 될 줄이야 몰랐다.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한 층을 더 층층계로 올라가야 했다. 아파트의 층층은 모두들 바깡스를 떠 나서 인지 죽은 듯 고요해서 내 발자국 소리만 요란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벨을 눌렀다. 아파트 문을 열어준 사람은 이자벨 이였다. 집에는 딸 이자벨과 즈는비에브 밖에 없었고 아들들 셋은 보이 질 않았다.

이자벨이 안내한 살롱에서 나에게 별일 없었느냐고 물으며 뺨을 서로 대는 인사를 맞친 즈느비에브는 곧 바로 베르나르가 누워 있는 방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 방의 침대 위에 베르나르는 반듯이 누워 있었다. 베르나르는 그가 즐겨 입던 황금색 낡은 평상복을 입고 그가 좋아하던 짙은 고동색 낡은 넥타이를 그대로 매었고 반짝이는 검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베르나르는 잠시 눈을 감고 쉬고 있는 것 만 같았다. 베르나르의 모습은 너무나 편한해 보이며 행복해 보였다.

나는 너무나 기가 막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그를 내려다 보기만 했다.

내가 아무 말을 못하고 있을 때, 즈느비에브는 평상시 처럼 베르나르의 손등을 쓰다듬으면서 ≪ 먼저 가 있으세요. 내가 곧 따라 갈 테니, 나를 기다리면서, 알았지요 ! ≫하고 살아 있는 베르나르에게 말하는 것 처럼 혼자 말로 조용히 말했다.

즈느비에브는 삶과 죽음 사이를 마치 의미없는 경계인양, 그래서 영혼들의 같은 세계인양 여기는 듯 했다.

나는 즈느비에브가 나중에 자기가 죽으면 베르나르를 만난 다고 말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해 보이 질 않았다.

즈느비에브와 베르나르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즈느비에브의 신앙 생활은 깊고 깊어서 어떤 때는 거의 聖女와 같이 보이기도 했다. 즈느비에브는 아무 에게도 자기가 카톨릭 신자 라는 것을 표면에 나타 내지 않았고 카토릭을 믿으라고 남에게 전파하는 적도 물론 없었다.

그 사이 베르나르는 잠에서 깨어나 눈을 꼭 뜰 것만 같갔다.

베르나르는 문화성에서 은퇴는 했지만 자기가 쓰던 사무실을 동료들이 그대로 비워 두고는 언제든지 오라고 했다며 그래서 가끔 사무실에 놀러 삼아 간다고 나에게 자랑삼아 말 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말한 때가 엊그제 같았다.

오랫동안 살고 정든 고불렝 관사를 베르나르의 은퇴로 떠나야 했을 때 파리에 살 집이 없었던 베르나르는 뤽상브르그 공원이 좋다며 이 조그만 아파트를 마련해서 이사를 했다.

외관을 모양좋게 잘 짓기는 잘 지은 파리의 전형적인 아파트였지만 베르나르의 새로운 아파트는 꼭대기 층 망사르드를 넓혀서 만든 것이 었다.

어떤 멋쟁이 빠리지엥들은 이런 아파트가 운치 있게 보인다고 하여 일부러 찾아 살지 모르지만 노부부인 베르나르와 즈느비에브 에게는 퍽이나 쓸쓸한 거처일 수 밖에 없었다.

노인들에겐 불편한 맨 윗층에 있기도 하려니와 아파트엔 밖을 시원히 내다 볼 수있는 창문다운 창문이 한군 데 밖에 없었고 다른 창문들은 어떻게 된 것인지 눈 높이 보다 다 높게 달려 있어서 그들 조그만 창문으로는 하늘만 멀건히 보일 뿐이었다.

내가 처음 그 아파트를 방문 했을 때 베르나르는 여기가 높긴 높아서 파리 시내의 전망이 꽤 좋다면서 창문 밑에 놓인 높은 발판을 가르키며 그 발판에 올라 가 밖을 내다 보라고 권했다.

발판에 올라 서서 밖을 보니 아닌게 아니라 창문을 통하여 화려한 뤽상부르그 공원의 일부가 내려다 보였고 딴 창문을 통해서는 빵데옹의 돔이 바로 앞으로 보였다. 그리고 수많은 파리의 지붕밑 방들의 지붕과 창문이 한 눈에 들어 왔다.

나는 발판에 올라서서 왠지, 쓸데없는 측은한 생각에 잠시 잠겼었다. 일생동안 청빈한 관료 생활에 즈느비에브의 검소한 생활이 줄 곧 따랐다 해도 결국 천정이 네모지게 높고 창문이 의젓한 수많은 파리의 그럴듯한 아파트중의 하나를 차지해서 여생을 보낼 수 없다하는 생각 이었다.

은퇴하면 전원에 내려가 산다고 마련했던 비에이으 에스트레의 시골집은 그동안 수리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이 너무 낡아서 였기도 했지만 아직은 파리에서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 부부는 그 쪽으로 당장 이사해 가지 않았다.

베르나르를 만나면 언제나 웃으운 에피소드를 한편 씩 해 주곤 했었다.

언젠가 한번은, 어느 전람회의 베르니사즈에 갔다가 거기에 손님으로 와 있던 두 여인에게 납치를 당해 어디론가 끌려갔던 얘기를 했다.

안면이 전혀 없는 어느 중년의 두 여인은 베르나르를 보자 꼭 할 얘기가 있다면서 느닷없이 차에 태워 브와드 블론뉴 숲속길을 지나 어디 인지 알 수 없는 집으로 납치하듯 데려 갔다.

생면부지의 여인들이 베르나르를 부리나케 데려 간 곳은 어느 화가의 아뜰리에 였는데 거기엔 마루 바닥에서 부터 사방 둘레 벽까지 그림들이 아무렇게나 순서없이 꽉 차서 진열돼 있었다.

베르나르를 아뜰리에에 들여 놓자 마자 여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화가는 자기들의 오빠이고 남편인데 병으로 일찍 죽었지만 화가로서의 평생의 소원이 자기의 작품이 미술관에 걸리기를 죽도록 바랬다고 했다.

베르니사즈에 참석해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 우리 화가의 소원을 성취시켜 줄 능력이 있는 분 이라고 말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곳까지 모셔 온 것이니 용서해 주십시오하면서 두여인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베르나르는 여기 까지만 얘기 하고 웃기만 했다. 그래서, 다음이 어떻게 됐느냐고 다구쳐 물어도 베르나르는 그날 저녁 끝끝내 웃기만 했다.

베르나르가 어떤 좋은 대답을 그 여인들에게 주어서 달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날 밤의 두 여인들에게서 큰 감동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였다.

또 한번은, 아브뉴 마띠뇽에 있는 한 화랑에서 요란하게 열린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화가 B의 전시회에 갔다가 오는 길 이라면서 기분이 꽤 얹잖은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니, 그 유명한 B가 개인전을 열어 놓고 진열한 유화 작품들은 모두 견본으로 내 놓은 작품이어서 어떤 사람이 그림을 사겠다고 하면 작품을 주문받아 언제까지 똑같이 그려 준다는 전람회 였다는 것이다.

더구나 똑 같은 그림을 여러번 주문 받으면 빨간 딱지위에다 주문 받은 숫자를 적어 놓고 있으니 그것이 어찌 좋은 화가가 할 짓이냐고 분개한 것이다.

베르나르의 장례식은 가족들만이 모여서 치루고 조문객들을 위한 장례미사는 바깡스가 끝난 9월 첫 일요일에 인근 성당에서 갖겠다고 했다. 집안에 상을 당해서도 프랑스 사람들의 바깡스에 대한 관렴은 이렇게 철저해서 휴가를 떠난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빈곤 퇴치운동을 위한 사회구호 단체인 ≪ 제4세계 ≫ 의 총재직을 맡아 계속 봉사활동에 전념했던 즈느비에브 드골-앙또니오즈도 3년전에 마침내 돌아 가셨다.

오늘, 베르나르 앙또니오즈의 10주기를 맞이하여 즈느비에브와 다시 만난 고인의 명복을 길이길이 빌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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