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미래를 건너가는 아름다운 다리 - 오천룡 화백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13038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09.12.28. 22: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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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무엇과 무엇에 대한 매개이다. 창작자와 향유자의 매개, 창작자와 세계(혹은 향유자와 세계)의 매개, 가상과 실재의 매개. 그러므로 예술은 아름다운 다리이다. 11월 24일부터 12월 6일까지 열린 정헌메세나 후원 작가전의 이름이 "아름다운 다리"인 것도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화가와 표현대상, 화가와 관람객, 또 관람객과 표현대상을 잇는 다리로서의 그림. 아름다운 다리전이 열리는 예술의 전당 로비에서 정헌메세나 회장인 오천룡 화백을 만났다. 그의 출중한 패션 감각은 로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단연 도드라졌다. 햇볕을 받을 때마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백발 아래, 색채감각이 뛰어다니는 평을 받는 자신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원색의 옷이 멋지게 어울렸다.

추상화에서 구상화로, 변화 속의 일관

서울대학교 미대를 졸업한 뒤 추상화가로 화단에 데뷔한 오천룡 화백이 프랑스로 건너간 것은 만 서른 살이 되던 1971년의 일이었다. 한국에서 추상화가로 활동했던 그이지만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풍경화를 그리고 싶은 욕구를 느꼈고 구상화로 돌아갔다. 이 회귀의 시절에 관해 그는 "나를 제로에 놓고 출발했다"는 말로 표현한다. 그로부터 38년 동안 프랑스 화단에 활동하면서 오 화백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왔다. 쉼 없이 변화하는 경향과 기법과 소재 속에서 그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것은 색채다. 그러한 특징이 극대화된 것이 90년대에 발표한 나뭇잎 연작이다.

"파리에서 살다가 시골에 아틀리에를 장만해서 7년 동안 생활했어요. 그때 자연과 많이 친해졌죠. 말했다시피 저는 색을 좋아합니다. 나뭇잎 연작은 나뭇잎을 그렸다기보다 나뭇잎을 빌려 색채를 극대화하는 작업이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싱싱한 잎보다는 색이 다채로운 낙엽을 그리게 됐고요."

낙엽 이후 최근 그가 몰두하는 것은 선으로만 표현하는 그림이다. 이 작품들은 단순하면서도 여백이 많아 동양적인 정감을 느끼게 한다. 외국에서 오래 활동했음에도 작품 속에 동양적인 정취가 느껴진다는 말에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봐주시는 건 제게 정말 기쁜 일입니다. 왜냐하면 외국에 있든 국내에 있든 저는 제 작품 속에서 동양적인 감각, 한국적인 정서가 배어나오길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해도 안 되는 일이고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데, 보는 분들이 그렇게 느낀다면 다행이죠."

예술지원은 미래에 봉사하는 것

한 가지 방식으로 작품의 경향이 굳어지는 것을 경계하는 화가, 그래서 쉴새없이 변화를 모색하는 화가. 오 화백을 수식하는 이런 말 앞에 정헌메세나 회장이란 다소 딱딱한 직함이 더해진 계기를 물었더니 그는 "운명적인 동기"가 있었다고 말한다.

"프랑스에 재불 청년작가 협회라는 게 있는데, 한국문화원에서 1년에 한 번씩 이 협회의 전람회를 열어줘요. 그런데 문화원에서는 장소 대관만 해줄 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요. 행사를 위한 행사지요. 문화원이라 하면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발탁하고 지원해줘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 문화원장에게 건의했습니다. 1997년에 내가 전시회를 보고 마음에 드는 작가 두 명을 골라 그해 겨울에 개인전을 열어주도록 했어요. 개인이 추천했다는 것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몰라 제가 도움을 줬다는 사실은 비밀로 했지요."

그는 예술가에게 가장 큰 도움은 인정과 격려라 믿는다. 서른 살에 파리 생활을 시작해 40대까지, 그 역시 외롭고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 때 선배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인정해 주고 격려해줬다면 그 길이 그토록 쓸쓸하고 고되지 않았을 것이다. 60대가 된 지금, 그는 젊은 날 자신이 갈망했던 그 격려를 후배들에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청년 작가들의 바람과 요청에 응답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정헌메세나이다.

정헌메세나는 동일방직의 정헌재단이 그 모태다. 1979년 학술재단으로 출발하여 이후 예술 지원이 더해지면서 정헌메세나 협회가 되었다. 오천룡 화백이 친구이자 동일방직 대표인 서민석 회장과 뜻을 모아 청년 작가를 후원하기 시작한 건 2002년의 일. 오 화백은 서 회장에게 정헌재단이 예술지원을 하려면 이미 인정받은 대가가 아니라 가능성 있는 신인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예술지원은, 명망 있는 대가의 작품을 수집 소장하는 "과거 기록적인 것"이 아니라 미지의 젊은이를 응원하는 "미래 봉사적인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정헌메세사는 매년 유럽에서 활동하는 35세 미만의 한국 청년작가 중 한 명을 선정해 "청년작가상"을 시상하고, 35세 이상의 작가 중 네댓 명을 선정해 작품 제작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수상자와 제작비 수혜자는 캔버스 작업을 하는 회화작가에 한한다.

"그런 제한을 둔 이유는 현대미술이 발전과 변화를 거쳐 어쩌면 변질이라고까지 해야 할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디오, 설치, 입체, 사진.....현대미술이는 테두리 안에 새로운 예술이 많이 출현했지만, 이중 어떤 것은 인간의 정서를 돕는 게 아니라 파괴하는 쪽으로 흘러간다는 우려가 들어요. 지금은 비주류가 되어버린 캔버스 작업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아름다운 다리전은 지난 5년 동안 정헌메세나 협회가 해온 활동의 결산이다. 정헌메세나가 배출한 다섯 사람의 수상자와 열일곱 명의 작품제작비 수혜자, 이렇게 스물두 명의 작가가 개성 강한 작품들을 출품했다. 오천룡 화백의 말처럼, 예술가에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것 이상 힘이 되는 일이 어디 있을까. 정헌메세나의 이러한 후원은 고독과 실의에 빠진 많은 작가들을 일으켜 세웠다. 오 화백이 젊은 시절 염원했던 인정과 격려를 그의 후배들이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정헌메세나의 이러한 활동을 "작가의 작업실과 세상을 잇는 교량 역할"이라 말하는 오천룡 화백. 예술뿐 아니라 예술 지원 역시 또 하나의 아름다운 다리인 셈이다.

삶과꿈, 201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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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답글 [답변]새 그림들 보여줄 수 있어서 흐믓하였네 오천룡 첨부파일 2010.05.26 13357
272 유럽 출장 김원 2010.05.12 13224
271   답글 [답변]반갑네! 오천룡 2010.05.13 12840
270 전시회 - 파리에서 비롯된 네개의 길 오천룡 2010.06.01 13262
269 안녕하세요^^선생님~ 찰스장 2010.04.09 13055
268   답글 [답변]안녕하세요^^선생님~ 오천룡 2010.04.09 13087
267 안녕하세요 아트놈 2010.04.08 13155
266   답글 [답변]안녕하세요 오천룡 2010.04.09 13057
265 안녕하세요 오천룡화백님.^^ James 2010.04.01 13119
264   답글 [답변]안녕하세요 오천룡화백님.^^ 오천룡 2010.04.03 13082
263 안녕하세요..학생입니다.... 윤채 2010.03.26 12979
262   답글 [답변]안녕하세요..학생입니다.... 오천룡 2010.03.27 13180
261 신년축하로 사진 올립니다. 김원 첨부파일 2010.01.21 12898
260 저녁만찬 김원 첨부파일 2010.01.18 12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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