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본 이야기 - 진주 귀고리 소녀
작성자 김원 조회수 6417 건
홈페이지 작성일 2004.10.21. 15: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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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머리에

17세기 네델란드 화가 얀 페르메르의 그림 "진주귀고리 소녀"를 주인공으로 만든 동명의 영화를 최근에 보고 상당히 깊은 느낌을 받았기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네델란드에 관해서, 17세기 플랑드르畵派에 관해서, 화가 페르메르에 관해서, 그리고 그의 명화 "진주귀고리 소녀"에 관해서, 소설 "진주귀고리 소녀"에 관해서, 영화 "진주귀고리 소녀"에 관해서, 몇자 적는다.

1997년 7월에 타임誌는 2000년의 밀레니움을 준비하는 특집으로 "최고의 시대"라는 기획기사를 실었다.
새로운 세기와 새 밀레니엄을 기다리면서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뜻에서, 역사적으로 세계경제와 문화를 통털어 인류역사상 최고의 호황시대가 언제였을까를 정리한 기사였다.
사실 그런 의문은 21세기를 바라보며 우리가 늘 가져왔던 것이기도 했다.
인류는 언제 가장 행복했을까? 그리고 어디서?
원시시대의 메소포타미아? - 거기는 아담과 이브의 낙원이었다고 믿어지는 곳이다 -
중세기의 유럽? - 그때 거기 사람들은 하느님에게만 매달리면 행복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중국의 요순시대? 또는 조선의 영정조시대?

타임지의 결론을 따르자면, 17세기 이후 인류가 최고의 호황을 누린 6개의 황금기 가운데 1위는 최장기간의 경기호황을 누린 "네델란드의 17세기"였다.
영국이 대제국을 건설하기 훨씬 전부터 重商主義의 覇者로서 5대양 6대주를 지배한 네델란드사람들의 17세기는 그들에게 민족 역사상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최고의 황금기였다.
그 전성기인 1580년부터 1680년 사이의 100년은 그들에게 문화예술사회로서도 절정기였다.
스페인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하고, 가톨릭의 영향에서 벗어나 개신교, 특히 칼비니즘의 자유분방한 시민사회의 분위기 아래서 네델란드에는 위대한 화가들이 잇달았다.
시민사회의 낙천성과 자부심을 반영하는 한편, 중산층의 미술기호에 부합하는 화가들, 렘브란트, 루벤스, 얀 베르메르, 얀 스텐, 피테르 드 호흐...
내가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플랑드르畵派의 화가들이다.

네델란드 사람들은 일찍부터 세계를 돌아다니며 큰 돈을 벌었고 견문을 넓혔다.
17세기에 네델란드는 종교전쟁과 독립전쟁으로 40년 이상을 戰火속에서 보내어야 했다.
그리고 동시에 동서양의 중개무역으로 유럽 최대의 부국으로 떠올랐다.
전쟁을 겪으면서 그들은 과거의 가치관에서 탈피했고, 새롭게 얻어진 풍요로 인해 현재의 삶을 최대한으로 향유하자고 주장하게 되었다.
이같은 현상은 그들로 하여금 부유하고 안목있는 중산층을 두텁게 형성하였고, 개인주의가 전통주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하였다.

그와 같은 발상의 전환 속에서 그들은 새로운 일상의 중요성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과거에는 그림의 대상으로 간주되지 못했던 풍경화, 정물화, 시민의 초상화가 그림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양 역사상 처음으로 화가가 일상의 喜怒哀樂에 눈을 돌린 것이 이때였다.
신화와, 종교, 영웅의 역사, 같은 구시대의 상투적인 주제들 대신에, 아이의 머리에서 이를 잡는 어머니, 허리를 구부린 채 옷을 만드는 재단사, 편지를 읽는 처녀, 피아노를 치는 어린소녀, 아침단장을 하는 여인, 양파를 다지는 처녀, 엄마의 치마자락을 잡고 선 아이, 돌팔이 의사, 술잔을 든 뚜쟁이 여인, 그리고 "진주목걸이를 한 소녀"들이 그들 그림에서 "있는 그대로"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양미술사에서 이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 17세기의 장르畵가 개인적 일상의 사실적 재현이었을 뿐만 아니라, 삶의 교훈을 상기시키는 어떤 알레고리,또는 상징의 기능을 했다는 것이다.
(츠베탕 토토로프, "日常禮讚")

이를테면 절제, 정숙, 검약, 같은 것이 미덕이 되고, 사치, 방탕, 허영이 악덕이 됨을 선언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종교화 이상으로 하느님의 창조하심을 찬미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삶의 예찬"은 음탕한 酒興을 묘사할 때에도 - 예컨대 렘브란트의 유명한 "아내 사스키아와 함께한 화가의 자화상"- 그것을 삶의 歡喜와 充溢로 해석하는 것이다.
"일상의 재현을 가능케 했던 애초의 도덕적 명분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일상적 미덕을 발견한 화가들은 이제 그 미덕을 규정하는 입법자가 된다.
시선의 혁명을 통해 사물이 미학적 찬미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윤리적 찬미의 대상임을 이 시기의 화가들은 입증했다.
아름다움이란 세상 모든 존재 속에 고루 스며들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발견했던 것이다."-토토로프-

네델란드 회화 전문가인 토레 뷔르거는 이렇게 말한다.
"옛날에는 神과 군주를 위한 예술을 했었다.
그러나 이제 인간을 위한 예술을 할 시기가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헤겔이 한 말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네델란드 회화처럼 평범하고 범속해 보이는 대상을 주제로 한 예술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네델란드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이다."
이것이 내가 네델란드 사람들의 기질, 그리고 상업주의와 연관한 예술적 안목의 독자성 따위에 관해 깊이 느낀 점들이었다.
그때 김수근선생에게 여기까지 설명을 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장사꾼으로 성공하면 예술에도 눈이 뜨인다.
어느 한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면 다른 것들에도 높은 안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네델란드 사람들이 일찍부터 세계를 항해하면서 여러가지를 눈여겨 보아온 오랜 경험은 그대로 고스란히 축적되어 그들로 하여금 오늘날 아무도 갖지 못한 훌륭한 미술품들을 알아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 주었다.
알아본다는 것은 자신들이 그것을 감상하고 즐길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남들에게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투자가치이며, 훗날 큰 재산가치를 가져다 줄 것도 알아챈다는 뜻이 된다.
내가 네델란드 사람들에 관련하여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나는 어렸을 적에 그림을 잘 그린다는 이야기를 주위에서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정말 그림을 잘 그린다고 믿고 있었다.
그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중반쯤에 읽게 된 「프란다스의 개」라는 소년소녀 문고가 있었다.
옛날에 프란다스라는 곳에 그림을 잘 그리는 소년이 있었는데, 그 아이는 너무 가난해서 수레를 끄는 개를 데리고 우유를 배달하며 산다.
그리고 어느해 미술대회에 그림을 출품하고, 수상작 발표가 나기 전에 소년과 그의 개는 추운 겨울 날 배가 고파서 거리에 쓰러진다.
소년은 쓰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대성당에 들어가, 존경하는 화가(아마도 Rubens였을 것이다)의 명작 그림을 보고 돌아서 나온다.
수상작을 발표하는 날, 입상소식을 들은 심사위원장의 딸이 친구인 그 소년을 찾아다니다가, 개와 함께 끌어안고 숨진 현장을 발견한다.
너무 오래 전의 책이라 기억이 희미하지만, 뭐 대강 그런 줄거리인데, 나는 어린 마음에 그 책을 붙들고 많이 울었다. 그 나이에는 감동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란, 항상 읽는 이에게 동일시 기제(同一視 機制 : Identification mechanism)의 대상인 것이다.
그리고 그 소설속의 이야기가 오래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나이 삼십이 가까워서 네덜란드에 공부하러 갔을 때, 그 프란다스라는 곳이 플랑드르지방, 즉 지금의 벨지움에 있고, 내가 있던 롯테르담에서 가까운 앤트워프 서쪽지방이라는 것을 알고 찾아가 보았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벨지움의 호보켄(Hoboken)에 있는 동화 박물관 앞, 네로 소년과 애견 파트라슈의 동상이다.
옛날에는 van Eyck를 비롯한 훌륭한 화가들을 많이 배출했고, 우리가 건축에서 배우는 플래미시 벽돌쌓기(Flemish Bond)의 고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네로 소년이 그토록 보고싶어 했던 화가는 이곳 출신의 루벤스라는것도 확인하였다.
잘은 모르지만, 그 근처에서 활동했던 Rembrandt와 Vermeer와 Van Dyck, van Eyck가 모두 비슷한 계열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결국 그 지역적 전통은 Vincent van Gogh로 이어지는 게 아니었을까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 많은 화가들 중에서도 내 눈에 번쩍 띄도록 놀라운 화가는 얀 페르메르(1632-1675)였다.
그에 대해서는 루벤스나 렘브란트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사후 200년간 잊혀졌다가, 갑자기 각광을 받게 된 그는 미술사의 다른 천재들과는 달리 평생 고향 델프트에서 살았고, 길드에 속하여 그 대표를 지내기도 했지만, 한평생 평범한 화가로 살면서 중산층의 일상생활과 델프트의 풍경을 주로 그렸다.
그의 그림은 오늘날 35점이 남아있을 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네델란드는 프로테스탄트(개신교), 특히 칼빈파(Calvinism)라는, 상당히 원리주의적인 교파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그는 독특하게도 소수파인 구교로 개종한 별난 인물이었다.
네델란드가 프랑스와 전쟁해서 패하고(1667-8년) 나라가 어려워졌을 때, 페르메르도 몰락했다.
아이가 열명이나 되었지만, 그래도 그는 부유했던 처가의 덕으로 2,3년에 한점 정도의 그림을 그렸어도, 그걸 팔아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이런 정도가 그에 대해 알려진 전부이다.

2003년 8월에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위대한 회화의 시대 - 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델란드 회화전"은 헤이그의 마우릿츠휘스 왕립미술관(Royal Cabinet of Paintings, Mauritshuis, den Haag) 소장품들이었다.
그 전시회에서 나는 다시 한번 그 화가들의 "빛"을 보았고 페르메르의 "빛"을 보았다.
그림들을 따라온 큐레이터는 설명회에서 페르메르가 그린 "진주 귀고리 소녀"는 못 가져 왔다고 했다.
그 그림은 아직까지 단 한번도 해외에 반출된 적이 없다.
그 그림을 가져올려면 "대통령이 나서야 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 어렸을 적 미술책 표지에 실렸던 노란 세타를 입은 "우유 따르는 하녀"라는 그림이 그의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페르메르의 그림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 하는 것은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1665)"이다.
이 그림을 두고 사람들은 "북구의 모나리자"라는 찬사를 보내지만, 내가 보기에 "모나리자"가 차라리 "남구의 귀고리 소녀"다.
그림속 소녀의 아름답고 커다란 두 눈망울은 약간 놀란 듯 쳐다보면서도 방심한 듯 슬프고, 두렵고, 그러나 갈망하듯, 유혹하듯, 어쩌면 절망적인, 그리고 어쩌면 처절한 기다림의 눈빛이다.
정면이 아니고 약간 옆으로 그려진 이 불가사의한 소녀의 표정을, 도저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소녀의 슬픔을, 화가는 붓으로 그려 내었다.
모나리자의 불가사의한 미소보다도 이 소녀의 슬픔은 더욱 불가사의하다.
모나리자의 신분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것보다 훨씬 더 이 소녀에 대해서는 알려진게 없다.
페르메르의 그림들에서 가장 많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인물의 특징들은 고요함과, 무언가에 몰두해 있는 표정들이다.
"레이스 짜는 여인"에서 수놓기에 몰두해 있는 소녀,
"지질학자"에서 그 학자는 고개를 들어 깊은 사념에 빠져 있다.
"편지 쓰는 여인"의 표정에는 그녀가 쓰고 있는 편지의 내용이 묻어난다.
"진주를 저울질하는 여인"은 시선을 저울대에 집중하여 그 일에 몰두해 있다.
그러나 이렇게 고요한 상황 속에 그려진 정지된 균형은 그 속에 역동적인 에너지를 감추고 있다.
"진주 귀고리의 소녀"는 그 고요 속에 엄청난 비밀을 감추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그림의 가장 강조하는 부분을 소녀의 작은 귀에 매달린 진주귀고리에 두었다.
북유럽의 어두운 햇빛아래서는 한방울의 빛이라도 아껴야 했던 이곳 화가들의 가장 고유한 주제는 "빛"이었다.
그들이 자기 그림의 하이라이트를 모델의 흰 이마나, 날카로운 코끝이나, 반짝이는 양복 깃이나, 여기서는 소녀의 귀고리가 그림의 중심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이 그림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했다.
나도 그의 말에 동감이다.
그래서 나는 그 그림책-페르메르의 화집-을 그때 내가 가장 좋은 것을 선물하고 싶었던 여인에게 사 보내었다.

그리고 이 그림이 그려진지 300년이 더 지난 1998년에 미국 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이 그림 속 소녀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다.
그녀도 역시 그 그림을 좋아해서 그 복사본을 침대머리에 걸어놓고 살았다.
그 그림을 붙여 놓은지 10년이나 지난 어느 일요일날 아침, 그날도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귀고리에 대해 여러가지 의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겉옷과 머리수건으로 보아 평범한 집안의 소녀임이 분명한데 진주 귀고리를 하고 있다.
화가에게 초상화를 의뢰할 만큼 부잣집 딸 같지도 않다.
진주라면 당시에는 동방에서 가져오는 귀중한 보석이다.
더구나 이 소녀의 애매모호한 표정의 매력을 매일 보아온 터다.
소설가는 그녀를 대신하여 그녀가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야기를 풀어 놓기로 결심한다.

소설가는 그 소녀가 화가선생님에게 못다한 이야기를 풍부한 상상력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로 그려 낸다.
그렇게 그 소녀에게는 생명의 숨결이 불어 넣어진다.
그리고 그 소녀의 부끄러운 듯 방심한 표정은 고요하지만 격정적인 사랑 이야기로 다시 태어난다.
소녀와 진주귀고리를 사랑이라는 주제로 묶은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도 당연해 보인다.
누가 보아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 화가의 이 그림의 주제는 "사랑"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주인공들은 어쩔 수 없이 화가와 소녀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어떤 가난한 집 딸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한 유명 화가의 집에 하녀로 들어간다.
그 집에서 그녀의 일은 우선 청소하는 일인데 거기에는 화가의 작업실도 포함된다.
화가가 없는 시간에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은 것처럼 청소를 해야하는데, 여기서 소녀는 화가의 생활을 엿보게 되고, 나아가 화가의 작업을 엿본다.
그것은 지금까지 본적이 없는 예술세계에 대한 첫번째 눈뜸이자 충격에 가까운 감동이었다.
화가는 소녀에게 빛에 대해, 색깔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물감을 만드는 일을 시킨다.
값비싼 물감재료들을 다루는 일은 소녀에게 또 다른 하나의 예술세계에 입문 하는 것이며, 화가에게는 작업의 동료를 얻은 것이 된다.
화가는 소녀의 청순함에서 깊은 영감을 느끼며 그녀를 최상의 모델로 생각한다. (이 대목은 바로 17세기 프랑드르 화파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졌던 일상의 환희, 평범한 피조물에 대한 영광과 감사의 마음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는 그 소녀를 그리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림이 되어가는 사이, 아내의 귀고리를 꺼내다 그녀의 귀에 달게 한다.
그러나 이들의 절제된 사랑은 주위의 시선과 신분의 차이 때문에 안타까운 눈빛의 교환으로만 표현 된다.
그림이 완성된 후 화가의 가족들은 이들의 조용한 열애를 알게 된다.
그리고 소녀는 집으로 돌아온다.
정말로 오랫만에 나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이렇게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의 흐름을 훔쳐보았다.

소설의 끝부분에서 소녀는 화가가 죽고 난 후,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다.
화가가 임종할 때 그가 침상 옆에 "진주귀고리 소녀"를 갖다 놓았다고...

2004년에 피터 웨버는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그는 감독으로서 이 영화가 처음이다. 그 전까지는 TV드라마를 제작했었다.
거기에 프랑스 출신의 촬영감독 에드왈드 세라가 합세하여 아름다운 "그림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모든 장면들이, 정말로 모든 장면들이 한장한장 아름다운 그림의 연속이었다.
특히 촬영감독은 최대한으로 자연광을 살려서 플랑드르화가들의 빛과 페르메르의 정밀(靜謐)을 재현해 내었다.

가장 중요한 주연배우,
진주귀고리의 소녀로 열연한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여배우는 바로 이전에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그녀의 첫번째 작품으로 단번에 2003년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큼 운좋고 감각있는 배우다.
화가 페르메르로 분장하여 소위 "내면의 연기"를 펼친 남자는 콜린 퍼스라는 배우로 전작 "러브 액츄얼리" 또는 "브리짓 죤스의 일기" 등으로 제법 알려진 인물이다.

영화는 소녀가 여러가지 색갈의 채소를 칼로 써는 장면을 클로즈엎 시키며 시작된다.
서걱서걱 야채가 베어지는 칼질 소리를 상징적으로 강조하면서 영화의 날카로운 긴장과 비극적 결론이 암시된다.
그리고는 숨고르기처럼 소녀가 집을 나와 델프트의 옛 시가지를 걸어, 하녀로 일하게 된 화가의 집을 찾아가는 동안, 이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과 17세기 네델란드인들의 일상과 분위기가 설명적이고 사실적으로 전개된다.

소녀가 처음 화가의 "빛"에 눈 뜨는 장면을 영화는 이렇게 묘사한다.
아무것도 만지지 말고 청소만 하라는 명령에, 하녀는 덧문을 열고 유리창을 닦아야 할지를 망설인다.
사모님은 왜 더러워진 유리를 안닦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소녀는 유리를 닦으면 너무 빛이 강해 질까봐 그런다고 대답한다.
첫 대면 치고는 심상치 않은 대화가 오가는 것이다.

화가와 소녀가 몇 번에 걸쳐 서로를 훔쳐보는 침묵속의 교감이 있은 후에, 둘이는 색갈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 아마도 처음으로 - 나눈다.
"저 구름들이 무슨 색이지?"
"하얀색이지요, 주인님."
"그리트, 넌 더 잘 할 수 있어, 또 무슨 색이 있니?"
"....푸른색도 약간 있고요, 음....노란색도, 그리고 약간 초록색도 있네요!"
"그래, 그리트, 사람들은 구름이 하얗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구름 속에서 하얀색은 찾기가 힘들지"
화가는 소녀의 속안 깊이 감추어진 예술의 눈을 일깨운다.

다음에 화가는 소녀에게 물감 만드는 일을 시킨다.
물감을 만드는 재료들은 아주 귀하고 값 비싼 것들이다.
그 재료들을 조심조심, 섬세한 손길로 다루는 장면은 두 사람의 조심스러운 접근을 아주 잘 묘사한다.
게다가 영롱한 빛을 발하는 물감 재료들의 맑은 색조는 마치 두 순수한 영혼의 아름다운 결합을 의미하는 듯하다.

영화의 압권은 두 사람이 사진기의 초기 단계 발명품인 어둠상자(camera obscura)를 번갈아 들여다보는 장면이다.
소녀는 렌즈를 통해 어두운 상자 안에 잡히는 형상(形像)을 보고 놀라며, 화가의 설명을 듣고, 그것이 왜 거꾸로 서 있는지, 왜 실물보다 작고 예쁘게 보이는지 알게 된다.
그것은 한 소녀가 정말로 전혀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는 장면이다.

그리고 클라이막스.
화가는 "가장 그리고 싶은 하느님의 피조물"을 이젤 앞에 앉힌다.
그에게 그 일은 최상의 기쁨이자, 가장 큰 고통이다.
그림은 잘 되지 않는다. 무언가가 절대적으로 빠져 있다.
그리고 소녀는 그 이유를 알것 같다.
화가는 아내의 진주귀고리를 몰래 꺼내다가 그녀의 귀에 걸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림의 균형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소녀는 아직도 귀뿔이 뚫리지 않아, 귀고리를 달수가 없다.
화가는 소녀의 귀를 뚫겠다고 한다.
그리고 소녀는 그렇게 하라고 허락한다.
침묵의 고통 뒤에 소녀의 작은 귀바퀴에서 흘러내리는 한방울의 붉은 피.
지극히 절제되었으되, 대단히 육감적인 표현이다.

완성된 그림을 보고 화가의 아내는 경악하며 비명을 지른다.
"이것은 외설이예요!"
이 장면은 소설에는 없는, 영화감독의 대사이다.
소녀는 원래 자기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일년 후, 화가집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하녀가 찾아온다.
화가가 작은 포장으로 싸서 보낸 선물, 진주귀고리가 들어 있다.
소녀가 그 선물을 펼처 보는 장면은 자신이 결혼식에 입을 웨딩드레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의 끝 부분에 화가가 죽고 난 후, 소녀가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 화가가 임종할때, 그가 간직했던 그림 "진주귀고리 소녀"를 그의 침상 옆에 갖다 놓았더라는 이야기는 영화에서는 생략되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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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제목 작성자 첨부 작성일 조회
33 천룡에게 김원 2004.12.28 11608
32   답글 [답변]해를 넘기기 전, 조용한 밤에... 오천룡 2004.12.28 11884
31 자신의 그림에 만족하다가는 실망하기를 반복하며 잎새 2004.11.19 11924
30 홀로코스트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신우재 첨부파일 2004.11.11 11692
29   답글 해외에서 한국의 예술가들에게 선언함 오천룡 2004.11.16 11633
28 죽음과 절망을 떠나 보내던 날 아침 사진 오천룡 첨부파일 2004.11.08 12026
현재글 영화 본 이야기 - 진주 귀고리 소녀 김원 2004.10.21 6418
26   답글 [답변]김 원 선생님 글이 경기여고 홈페이지에.... 이경순 첨부파일 2005.01.05 12935
25 죽음과 절망 오천룡 첨부파일 2004.11.01 12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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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답글 [답변]죽음과 절망을 그린 이유 오천룡 2004.10.18 11839
22     답글 다시 오화백님께 전정자 2004.10.23 11856
21      답글 [답변]죽음과 절망을 선으로 그린 이유 오천룡 2004.11.01 12092
20    답글 죽음과 절망 중앙부분 확대 오천룡 첨부파일 2004.10.30 11577
19     답글 죽음과 절망 왼쪽부분 확대 오천룡 첨부파일 2004.10.30 11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