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나들이 8 - 님므 2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5308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5.23. 17: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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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나들이 8 - 님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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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8-18

꼬부라지고 휘어진 오래된 골목길은 각종 상점의 진열창으로 점철돼 있었으며, 가끔 의젓한 개인저택이 나타나는가 하면 한창 수리중인 빌라도 보였다.

≪ 뤼 드 라 마드렌느 ≫ 거리에는 ≪ 비야레 크로깡 ≫이라는 이고장 유명한 비스켓을 원래의 가마에서 200년동안 한결같이 구어 내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 비야레 ≫제과점이 있는가 하면, 님므에서 가장 오래된 ≪ 로마의 집 ≫이 있었다. 그 집 파사드에 새겨 논 부조장식이 참으로 정교해 보였다.

골목길 깊숙히 빨려 들어가다 보니 아기자기하게 만든 예쁜 분수가 있는 제법 넓고 반듯한 ≪ 시장 광장 ≫이 나타났다.

그 분수는 로마 유적 터에 흔히 뒹구는 부러진 대리석 기둥을 본떠서 만든 돌기둥 위로 샘물이 솟아 반들반들한 기둥을 타고 좔좔 흘러 내려가고, 기둥 밑 반석에는 ≪ 밧줄로 목이 묶여 종려나무에 매어 있는 악어 ≫가 제 모습을 맑은 물속에 비춰보는 모양이었다.

이 종려나무와 순해 보이는 악어 동상의 ≪ 앙상불 ≫은 님므를 상징하는 ≪ 마스코트 ≫다.

미로속 같은 고색창연한 골목길을 방금 빠져 나온 관광객들은 바닥 포장이 매끈히 잘된 광장에서 만난 용솟음치는 분수를 보고 즐거워하며 뜨거워진 손을 찬물속에 담가보고 악어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다. 우리도 질세라 한 컷씩 사진을 찍었다.

오래된 골목길과 중세의 건물들은 외양이 산뜻하게 잘 정리돼 있어서 한군데도 구차해 보이는 구석이 없고 보기 흉해서 얼굴 찡그려야 할 데도 없었다.

프랑스가 옛 도시들을 아름답게 가꾸고 본래의 모습대로 보존할 수 있는 것은 그 일을 책임진 미장이, 석수장이, 목수 등 장인들의 꼼꼼하기 짝이 없는 직업의식이 있기 때문이리라.

님므와들도 끊임없이 밀어 닥치는 현대화 물결과 대결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고장의 오랜 풍습과 도시 경관을 옛 그대로 간직하고 아끼느라 고심했을 것이고 남다른 정열을 가지고 대처해 왔을 것이다.

프랑스 건물의 특색인 지붕밑방 지붕을 아연판 지붕으로 잇는 땜장이도 그렇고, 대문에 철물 조각장식을 해대는 대장장이들도 그렇고, 모든 장인들이 옛것에 대한 높은 안목을 바탕으로 수리하고 보전해내는 실력들이 보통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옛것을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며 보전방법을 더욱 연구하여서 영구히 하고자 하는 그런 전통이 애초부터 굳건하였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광장에서 또 다른 골목길로 들어가 기웃둥한 집들이 서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기댄 듯한 오묘한 조화와 조그만 옛 흔적 하나라도 있으면 벽에 노출시켜 오래된 것이 자랑스럽게 보이도록 해놓은 배려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 보았다.

미라마와 지공은 그들대로 나는 나대로 망원경을 꺼내들고 지붕 꼭대기 굴뚝모양에서 부터 지붕밑방으로 해서 아래 창틀과 커튼모양까지 님므와들이 사는 집들의 외관을 요모조모로 뜯어보고 훔쳐 보았다

흩어져 있던 우리 다섯은 한군데 모여서 방금 각자가 발견하고 감탄한 창문 틀의 생김새, 붉은 기와를 촘촘히 이어논 지붕의 물매, 처마 밑 벽에 띠같이 두른 부조장식, 그리고 대문의 깜찍한 쇠장식 등 서로가 발견한 이 도시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층, 삼층 창문에 돌출된 날씬한 발코니의 검정색 난간들은 집마다 모양이 달랐으나 철물로 날아갈듯 가볍게 ≪ 디자인 ≫ 됐고 활짝 열어 붙힌 덧문의 색갈은 어느 집이나 모두 푸른 빛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집들은 모두 각자의 특색을 지니고 있었지만 옆 집을 제치면서까지 유별나게 보이려고하지는 않았다.

참나무로 만든 오래된 작은 현관문에는 문을 두들겨 방문을 알리는 구리주물로 된 망치가 달려 있었다. 망치 밑에 푹 파인 자국을 보니 초인종대신에 아직도 망치 두들기기를 좋아하는 방문객이 많은가 보다. 그런 망치의 형태는 대개 여인의 손이었다. 방문객은 아릿다운 여인의 손등에 살며시 자기손을 얹어 잡고 문을 두드릴 것이다.

우리는 골목에서 이런 여러개의 손을 눈여겨 보았는데 한집 대문의 것은 정말 아름다운 소녀의 손 이었다. 그 소녀의 손은 통통했고 수줍어한 손 이었으며, 온기가 감돌고 있는 손은 반지르르 하게 길이 들어 황금색이었고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또한번 골목길을 돌아 섰을땐 무슨감각이 있어 올려다 보니 열어재친, 속이 캄캄한 5층 창문틀에 왠 난데없는 건장한 사나이가 웃통을 벗어 제친 채 문득 햇빛에 서 있는가 하면 비스듬히 보이는 3층 창문엔 문턱에서 턱을 괸, ≪ 르노아르 ≫ 그림에나 있어야 할 것 같은 젊은 여인이 몸을 내밀고 앞쪽의 무엇을 응시하고 있기도 했다.

이렇게 꿈나라 같은 중세의 동네를 하염없이 즐기며 마지막 골목길에서 나오니 거기는 다시 육중한 ≪ 아렌느(원형경기장) ≫가 있었다.

우리는 배가 출출하여 이젠 점심을 먹어야 했다.

나는 ≪ 기드 미슐렝(가이드 책) ≫에서 수수하고 값이 적당하다고 돼 있는 ≪ 비스트로 데자렌느 ≫라는 레스토랑을 찾아 냈다. 그집은 마침 근처인 대로변 건너편 ≪ 뤼 비고 ≫라는 좁다란 길속에 있었다.

여행중 레스토랑을 잘 찾아내는 것은 구경을 잘 다니는 것 만큼이나 중요해서 좋은 식당을 만나면 그날 하루종일 기분이 좋은 법이다.

그곳으로 가는 뒷길은 인적이 없었다. 그길 중간쯤에 있는 식당에 들어 갔을 때 식당 속엔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테이블이 다 찬 첫번째 홀을 지나 두번 째 홀에 안내 받았다.

주인인듯 싶은 서비스하는 날씬한 중년 여인은 우리를 자리에 앉힌 다음 아페리티프를 마시겠느냐고 물었다.

목이 말랐던 참에 우리 모두가 ≪ 프로방살(프로방스사람) ≫인양 너도 나도 ≪ 리까르(빠스띠스 상표) ≫를 시켰다. 빠스띠스는 프로방살들이 목마른 여름에 잘 마시는 대표적인 음료다.

이것은 ≪ 아니스 ≫라는 향초를 알콜에 오래 담가둔 술로서 프로방살뿐만 아니라 지중해 연안 사람들이면 모두 즐겨 마셔서 그리스와 터기에서는 이것을 ≪ 우조 ≫라고 부른다.

아니스향은 과일의 까망색 ≪ 젤리 ≫향인데 그러니까 좀 향이 독특하고 씁쓸한 맛이다.

아마도 서인도 제도의 ≪ 마르티닉끄 ≫ 아니면 ≪ 구아드룹쁘 ≫ 태생일 흑인여인은 빠스띠스 다섯잔과 어름물이 가득 든 ≪ 꺄라프(물병) ≫를 가져 왔다.

빠스티스는 대개 네다섯배 내지 여덟배까지 물에 타서 마시는데 물을 타면 위스키 같던 알콜이 뿌연 노랑색으로 변한다.

목이 시원해져서 식당홀을 둘러보니 ≪ 빠삐에 꼴레(종이 뜯어 붙이기) ≫가 빽빽히 진열돼 있는데 그 작품들은 검은 투우와 투우사의 형상을 붙히기 기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누가 원하면 팔기도 할 것이다.

혼자서 홀 서비스를 전부 맡고 있는 부지런한 서인도 제도 여인은 다시 와서 우리집엔 점심땐 한가지 메뉴만 한다고 했다.

오늘 메뉴는 야체 샐러드, 양고기와 디저트로 ≪ 밀 퍼이유 ≫라고 했다.

미라마는 고르고 말고 할 것이 없어서 간단하니 더 좋다고 했다. 그 동안 복잡한 프랑스 메뉴판을 들고 연구하듯 음식을 골라 내야 했던 번거로움에 신경을 너무 쓴 탓 이겠다.

샐러드는 ≪ 바따비아 ≫ 양상치, 달콤한 노랑색 피망, 까망 오리브에 염소치즈를 구워 올려논 ≪ 쉐브르 ≫라는 샐러드였다. 그러니까 차거운 야채위에 구어서 반쯤 녹은 뜨듯한 치즈가 얹혀져 있는 것이 었다.

양고기는 대접살을 버터를 발라 오븐에 구운 ≪ 지고 다뇨 오푸르 ≫와 ≪ 아리꼬 베르 ≫였다. 얇게 썬 양고기옆에 삶은 깍지 강낭콩을 뜨거운 접시에 담았다.

지고다뇨오푸르는 마늘을 듬뿍 다져서 후추가루, 소금, ≪ 로즈메리 ≫와 섞어 대접살에 비벼 문지른 후 한시간쯤 재워 놓았다가 오븐에 굽는 그런 조리방식으로 요리한 것 같았다.

이런 샐러드와 양고기를 모두 맛있어 했다. 특히 미라마는 양고기 냄새가 전혀 안 나면서 연하고 맛 난다고 했다.

그러나 조안만은 웬일인지 양고기를 옆에 앉은 백전에게 슬쩍 넘긴다. 조안이 쇠고기 이외의 다른 짐승고기는 전혀 안 먹는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밀퍼이유는 달지도 않고 입에서 살살녹는 맛있는 케이크였다. ≪ 크로아쌍 ≫처럼 아주 얇은 밀반죽 껍질을 여러겹 겹치고 겹쳐서 만든 케이크였다.

우리는 쓴 초코렛 한조각과 함께 나온 커피까지 마시고 일어났다. 이 집은 커피까지도 맛이 좋았다. 조안한테는 오늘 점심이 운이 없었지만, 이 집의 요리가 좋다는 데는 모두가 동감이었다.

나는 거대한 ≪ 세쿼이아 ≫ 그늘아래 분수 분위기가 그만이라는 ≪ 헤밍웨이 바 ≫에 가서 붉은 포도주 한잔씩을 시켜놓고 친구들과 잠시 앉아 쉬었다 가고 싶었지만 길이 바빠 다음 행선지로 그냥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그 멋쟁이 ≪ 바 ≫가 있는 ≪ 엥페라또르 꽁꼬르드 ≫ 호텔은 투우를 그린 명소설 ≪ 오후의 죽음(1932) ≫을 쓴 헤밍웨이와 투우에 열광했던 ≪ 에바 가드너 ≫가 머물렀던 유명한 호텔이다.

님므는 ≪ 론느 ≫강의 삼각주 << 까마르그 >> 에 인접해 있어서 10월에 한두번씩 있는 이 지방 특유의 광란의 폭풍우가 치면 도시가 침수되고 아수라장이 되기도 한다. 또 8월 한여름엔 엄청난 폭염으로 견디기 어렵다는데 우리는 운 좋게 한여름인데도 선선한 날씨를 만나 아름다운 중세도시를 짧은 시간에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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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천룡 그림이야기 읽기 오천룡 2011.10.31 4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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