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키운 오리 (6)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2801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4.27. 16: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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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7-12

우리에 갇혀있다 풀려난 오리들은 주인느 계곡을 마음대로 누빌 수 있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오리들은 아직은 멀리 가지 못하고 무너진 오리장 부근에서만 헤엄치며 놀았습니다.

우리를 떠난 오리 일가를 본 돌이는 애가 타는 듯 연신 물가를 오르락 내리락 거리면서 끙끙거렸습니다. 콜리 종인 돌이는 타고난 목양견의 본능으로 오리일가를 한데 몰아서 보호를 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끼고 있지만 물과 뭍이 어울린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녁때가 되니 어미를 선두로 오리 가족들이 뭍으로 한 놈씩 줄지어 올라오더니 물가에서 40미터나 떨어져 있는 정원 테라스까지 올라와 그곳에 앉아 있던 나에게로 다가 왔습니다.

오리 일가는 뒤뚱거리며 올라 오던 중 돌이를 보고 잠시 멈칫거렸으나 눈치 빠른 돌이는 뒷걸음을 치며 그들에게 길을 비켜 주고 아예 멀찌감치 물러서 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리들은 마음 놓고 내게로 다가 왔습니다.

내가 모이를 주던 시간이었기때문에 습관적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시골에서 자연과 가까이 살다 보면 동물들의 일상적인 행동이 모두 시간에 맞추어 차례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동물들이 어떻게 시간을 아는지 모르겠지만, 새가 우는 시간도 정해있고 개미가 일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었습니다.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 써머타임 ≫실시를 제일 강력히 반대하는 사람들도 축산업을 하는 사람과 농민들 입니다.

먹을 것을 달라는 눈치를 챈 나는 얼른 광으로 들어가 모이통을 들고 나와 테라스 바닥에 놓고 남아있는 보리쌀을 모이통에 쫘르르 부어 줬습니다.

오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덤벼들어 모이를 넓적한 부리에 넣고는 머리를 하늘로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바쁘게 삼켰습니다.

그렇게 모두들 게걸스럽게 먹더니 다시 궁둥이를 뒤뚱대며 물가로 내려 가서 한 놈씩 차례대로 물속으로 들어가 물을 마시고 만족스러운 듯 일제히 날개짓을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도록 돌이는 정원 한구석에 앉아 혀를 쭉 빼고 헐떡거리며 꼼짝 않고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이렇게 착한 돌이는 그때 다섯살이었는데 인근 농가에서 새끼를 분양해서 판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낳은지 한달 된 놈을 사다가 가슴에 안고 기른 강아지 였습니다.

이놈을 사러 갔을 때 새끼 세마리가 남아 있었는데 이놈이 꼭 마음에 들어 집에 안고 왔읍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두 눈동자 빛갈이 짝짝이 였습니다.

오른쪽 눈은 서양사람같이 파란 눈이고 왼쪽 눈은 나같이 밤색 눈이었습니다.

≪ 아차 ! 잘못 골라 왔구나 ! ≫하고 다른 새끼로 바꾸러 갈까 했다가 그냥 기르기로 했습니다.

나는 놈의 이름을 지을 때 어려서 읽은 어린이 모험이야기 ≪ 똘돌이 모험 ≫을 생각해 내고 똘돌이에서 ≪ 똘 ≫자를 떼고 그냥 ≪ 돌이 ≫라고 지어 불렀습니다.

이런 짝짝이 눈은 돌이와 같은 ≪ 콜리 ≫종과 에스키모 썰매를 끄는 개들에게서만 왕왕 생긴다는 것을 나중에 책에서 읽었습니다.

콜리종은 스코틀란드가 원산지인데 아주 영리한 목양견으로서 ≪ 랫시 ≫라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개입니다.

옆집 마나님 ≪ 자끄린느 ≫가 ‘너의 콜리는 정원 잔디밭에 앉아 있는 것을 보기엔 아름다울지 몰라도 집을 지키기엔 부족할 것이다’ 라고 했었습니다.

자끄린느는 아주 크고 무서운 독일 ≪ 세파트 ≫ 두마리를 기르고 있습니다.

돌이의 눈이 짝짝이인것이 나중에는 나에게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아무리 오랫동안 서양에 살아도 나의 외모는 서양사람이 될 수 없고, 나의 내면 세계도 서양의 것과 동양의 것이 반반쯤씩 섞여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종종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완전한 좌우대칭이 절대로 될 수 없는 짝짝이 신세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파리에 와서 12년만에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을 때 어느 평론가가 나의 작품일을 보고 동양적이지도 않고 서양적이지도 않다는 지적을 벌써 해버렸습니다.

돌이를 파리에 데리고 가 함께 거리를 산보할 때면 지나가는 빠리지엥들이 잘 생긴 나의 돌이를 보면서 하나같이 ≪ 저 콜리가 눈이 짝짝이야 ! ≫하며 지나갔습니다.

동양사람들은 상대방을 만나 인사를 할 때 상대방과 눈을 맞추지 않고 인사를 하는데 비해서 서양사람들은 반드시 상대방 눈을 들여다 보며 인사하고 악수를 합니다.

술잔을 들고 상대방의 건강을 위해서 술잔을 마주 부딛혀 소리낼 때도 우리는 술잔을 쳐다 보지만 서양인들은 상대방 눈을 똑바로 쳐다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서양인들은 길에서 만나는 개를 볼 때도 어느 신체 부분보다도 눈동자를 먼저 유심히 본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나는 오리들이 배부르게 모이를 먹고 물속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 하면서도 저놈들이 때가 되면 매일 모이를 달라고 뭍으로 올라 올 텐데 내가 집을 비우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생각하기를 오리들은 무너진 울타리 안에 들어와 어제와 같이 식구들끼리 모여서 잘 것이고 돌이는 그것들을 지켜주느라 쓸데없이 컹컹 짖을 것이라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현관문을 여니 문 밖에는 오리 일가가 일렬로 늘어서서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랄 일이지요.

돌이는 어디로 갔는지 안 보여서 이름을 불렀더니 제 집속에서 슬며시 얼굴만 내밀었습니다.

오리 일가는 자유를 얻었지만 아직도 그리고 그 후로도 한참 동안 나를 졸졸 따라 다녔고, 내가 그들을 키워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믿는 듯 했습니다.

현관문 까지 올라오려면 놈들이 어제 왔던 테라스에서도 한참 더 비탈진 경사를 올라와야 합니다.

놈들이 내가 집으로 드나드는 문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신기하다는 생각과 함께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끼며 얼핏 모이를 가저다 어제와 같이 테라스의 모이통에 부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리들은 내가 아주 가까이 가거나 만져 보고 싶어서 손을 내밀면 무척 경계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지만, 아무튼 이제 오리를 돌보는 일은 신경을 덜 써도 좋게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날 오전 내내 아뜰리에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내가 그림을 그릴 때면 돌이는 아뜰리에에 들어와 있기를 좋아했습니다. 편한히 문에 기대 누어서 자는 게 놈의 버릇이었습니다.

오전일을 끝내기로 하고 점심을 먹으려고 아뜰리에 문을 열고 나오려니 오리들이 또 문앞에서 서성거리고있었습니다.

이 아뜰리에 까지 오려면 아침에 왔던 집을 지나 다시 정원 층계를 한참 올라오고 돌이집 앞을 지나서 또 다섯개의 높은 층계를 올라 와야 하는 험한 길 인데도 놈들은 용케 여기까지 찾아 올라온 것입니다.

내가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놈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 였지만 나는 오리들이 내게 보여주는 애정때문에 기쁨의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보자 됐다는 듯이 작은 소리로 모두들 꽥꽥거리며 정원계단을 껑충 껑충 내려갔습니다.

이렇게 나를 그리워하고 주인을 찾는 오리들을 보니 기뻣지만 울적하기도 했습니다.

기쁜것은 그렇고 울적한 이유는 나의 가정생활이 자연의 이치를 따르지 못하고 단란한 가정의 조화를 이루지 못해 어려움만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상류쪽으로 하류쪽으로 길다란 주인느강을 따라 집에서 점점 멀리 간 오리들은 봄에 내가 채소밭에 씨를 심고 물을 주기 위해 조로를 들고 물을 길어나를 때면, 멀리서 물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꽥꽥대면서 내게로 날아 왔습니다.

이렇게 무심한 강물에 흩어진 오리와 나는 한참동안 서로 숨박꼭질하듯 찾고 찾으며 몇 몇년을 보냈습니다.

오리는 세상에 태어나서 72시간동안 그들이 겪고 본 것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리의 수명은 29년이라고 하며 생존률은 52%라고 합니다.

얼마전 봄이 끝날때 이제는 돌이도 없는 정원에 외로히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오리 한쌍이 뒤뚱 거리며 뭍으로 올라 오더니 내 바로 곁에 까지 와서는 머리를 뒤로 돌려 날개쪽지에 파묻고 앉아 낮잠을 한숨 자 주었습니다. 한참 만에 잠에서 깨어난 그 오리 한 쌍은 기지개를 편 후 물속에 들어갔습니다.

강물에 비친 숲과 하늘은 숲의 깊이와 하늘의 높이까지 완연하고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물속에 잠긴 숲의 그림자와 두 둥실 떠있는 흰구름이 오리의 갈퀴질로 금시 바르르 떨며 주름이 여러 겹 잡혔습니다.

잠자리가 얕게 가볍게 날아 다닙니다.

바야흐로 한여름이 됐습니다.

닭이 훼치는 새벽부터 땅거미 질때까지 잘잘 짖어 대는 새들의 소리는 시간마다 다르게 들려 옵니다.

새들은 각가지 음색으로 노래합니다. 새들에게도 소프라노도 있고 테너도 있고 알토, 바리톤과 베이스도 있습니다.

바르르 떠는 목청을 가진 놈, 휫바람 부르듯이 불어대는 놈, ≪ 스타카토 ≫로 짹짹이는 놈, 찰 찰 찰 얇은 북소리를 내는 놈, 목청이 째지도록 찌찌찌 찌찌찌 하는 놈, 한곡조 높게 부르듯이 길게 목청을 뽑는 놈, 깍깍깍 끽끽끽 숨 넘어가듯 싸움질 하는 놈, 꼭 중국말 같은 곡조를 내는 놈, ≪ 콜로라투라 ≫ 소프라노의 기교로 높고 가볍게 한구절을 뽑아 내는 놈.

아침 노래잔치가 이렇게 한차례 끝나면 까-아 깍 까치소리와 딱딱딱 딱다구리 나무 구멍뚫는 소리가 있고 한낮이 되면 점잖고 느린 그리움에 찬 뻐-꾹 뻑뻑-꾹하는 뻐국이, 구우국-구우국-국 하는 산비들기 하루종일 우는데 높은 하늘 깍깍깍 굵직한 까마귀 울음소리도 곧잘 섞기곤 합니다.

옆집 자클린느의 남편 ≪ 이브 ≫처럼 새 박사가 못되니 새의 소리와 이름을 짝 맞추어 낼 도리도 없고, 멀리서 동네 개들이 컹컹 짖는데 물가의 개굴개굴 개구리 소리와 오리의 꽥꽥 소리까지 합쳐지면 세상을 알고 싶은 생각 없이도 살 수 있을 듯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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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천룡 그림이야기 읽기 오천룡 2011.10.31 4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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