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룡의 새로운 구상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13086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07.10.11. 18:3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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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수록 추억이 떠오르는 파리의 情景들-오천룡의 새로운 具象

* 갤러리LM에서 열렸던 풍경화전 도록에 실린 정중헌교수 서문*

파리는 누구나 동경하는 도시다.

에펠탑이 솟아있고 세느 강이 흐르고 노트르담 사원과 몽마르트르 언덕이 있는 도시 전체가 한폭의 그림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 파리는 좀체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다. 늘 안개에 덮여있거나 비에 젖어 일부만 보여줄 뿐이다. 사진술이 발달한 요즘에도 파리의 진면목을 담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 파리를 제대로 음미하려면 10년 넘게 파리에 살아보아야 한다고 했다. 겉모습만 보아서는 진가를 알 수 없고, 파리의 정서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파리의 진짜 매력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샹송이 흐르는 파리의 지붕 밑을 거닐어 보고, 건축과 미술과 요리와 밤의 향락까지 속속들이 이해해야 파리의 멋과 낭만을 호흡할 수 있다면 관광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재불화가 오천룡의 파리 풍경전은 파리지앙의 감성으로 담아낸 파리의 진경(眞景)이라는 점에서 시각적 즐거움 그 이상의 감흥을 안겨준다. ‘에펠탑이 보이는 삭스 대로’ ‘아침의 길모퉁이’ ‘모차르트 대로’ ‘깡브론느 거리’ 등 일련의 파리 풍경들은 관광으로 훑어본 파리의 인상보다 한층 멋스럽고 정감이 넘친다.

오 화백은 추상으로 화단에 입문했으나 1971년 파리에 정착하면서 구상으로 전환했다. 유화와 수채화, 드로잉으로 일상의 정경과 꽃그림을 그렸고 인물화에 심취하기도 했다. 1995년부터 나뭇잎 시리즈 작업을 시작한 그가 2002년부터 3년간 집중적으로 파리풍경을 그린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그는 화구를 둘러메고 파리의 거리와 명소들, 아침의 길모퉁이와 신록이 우거진 대로를 현장에서 스케치하고 유채로 완성했다. 그렇게 집년과 열정으로 담아낸 파리 풍경이 90점, 그 전부가 고스란히 서울 나들이를 했다.

나뭇잎 시리즈를 잠시 멈추고 왜 파리 풍경에 매료됐을까. 파리에 정착한지 30여년. 파리의 정서와 분위기가 몸에 밴 그가 한국인의 감성으로 파리의 진면목을 화폭에 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파리 근교 에손느 지방 주인느 계곡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오 화백은 1974년부터 11년간 파리 아미랄 루쌩 화실에서 작업하며 파리를 호흡했다. 장 밥티스트 오라는 프랑스 이름을 가질 만큼 파리지앙이 된 그가 파리 풍경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새삼스러울게 없다. 몸은 파리에 있지만 고향을 잊지 못하는 그가 한국인의 눈과 가슴으로 포착한 파리 풍경은 유럽 작가들과는 다른 동양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또 하나는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전통 구상을 익힌 그가 전통적 기법의 구상을 하고 싶은 욕구를 파리 풍경으로 실현했다고 볼 수 있다. 현대 미술은 지난 수십년간 추상에서 설치와 미디어 작업으로 급물살을 탔지만 그는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구상으로 일관했다.

구상작업을 하면서 그는 ‘독자적 개성’을 찾는데 승부를 걸었다. 구상이지만 그 어느 유파나 기법에 속하지 않는 오천룡 회화에 천착해온 것이다. “동양사람으로, 동시에 한국인 작가로서 체질에 밴 여백이나 선과 색의 개념을, 표현방법의 폭이 넓은 서양의 유화기법을 활용해 어떤 경지를 개척할 수 있는지를 시도해 보았어요.” 89년 갤러리 현대에서 귀국전을 가질 당시 필자와 가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그는 “동양도 서양도 아닌, 더욱이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자신만의 개성”과 “손 작업”을 강조했다. “화가의 손이 놀고 있게 되면 정신이 놀고 있는 것보다 더욱 불행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오 화백의 그간 작품들은 사물의 윤곽을 수묵 기법의 검은 선으로 구획하고, 흰 선을 에워싼 복합 선묘(線描)와 시원한 여백, 각각의 색채들을 등가(等價)로 병치하는 독창적인 기법을 써왔다. 전통공예의 은입사(銀入絲)같은 장식성에 색채의 명료함이 돋보였다.

이같은 응용기법을 해온 그가 6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전통적인 구상작업을 하고 싶다며 대상을 파리의 풍경으로 잡은 것이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은 자연의 풍광을 자유분방한 필치와 현란한 색채로 표현했다. 반 고흐는 꿈틀대는 선묘와 입체적인 마티에르로, 쇠라는 무수한 색 점으로 자연의 풍경을 형상화했다.

오천룡 화백이 이번에 선보이는 파리 풍경은 전통 아카데미즘 기법을 한껏 구사하고 있다. 눈여겨 볼 점은 생동하는 선묘와 개성적인 색감이다. 농익은 데생과 색채의 향연으로 펼쳐낸 파리 풍경은 유희하듯 율동감이 넘치고, 색채의 조화 또한 매우 시적이고 음악적이다. 서예처럼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대상을 포착하면서 흰색 바탕위에 투명하고 정감있는 색채의 대비로 일상의 파리를 새롭게 해석해냈다. 결코 막힘이 없는 자연스런 필선과 시원스런 여백이 어우러져 이야기가 있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처럼 화면 전체가 역동적이면서 고도(古都) 파리가 지닌 역사와 문화까지 담아낸 오천룡의 파리 풍경은 전통 구상이면서도 세련딘 현대 감각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끄는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특히 출품작 모두가 밝고 명랑해 볼수록 많은 인상이 떠오른다. 오 화백의 작품들은 풍경이든 인물이든 자연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배어있다. 이번 풍경들도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정감이 묻어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같은 사물에 대한 애정은 작가의 품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지금은 원숙한 체취를 풍기는 멋쟁이 파리지앙이지만 필자가 만나 본 오 화백은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과 다정다감한 인간미를 풍기는 타고난 예술가였다. 오랜 해외생활에서도 한국인 특유의 감성과 예술의 순수성을 견지할 수 있었던 것도 작가의 이같은 소박한 성품에 기인한다고 본다. 사람이 따뜻하기에 그의 그림도 따뜻하다. 이국적인 파리 풍경이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필자는 이번 작품에 파리의 정경(情景)들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평생 구상을 고수하면서 전통 화법을 시도한 이번 작품들은 오천룡의 또 다른 개성이 발휘된 새로운 구상이라고 부르고 싶다.

바라보기만 해도 파리의 추억들이 되살아 날 것 같은 친근한 정감, 그것이 오천룡 풍경의 미덕이자 매력이다,

정중헌<서울예술대 교수,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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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김달진 미술자료관장 김달진 2008.04.19 12671
242 제 이메일 주소 변동되였습니다. 오천룡 2008.07.17 13364
241 김달진미술자료관 김달진씨 김달진 2008.03.04 13359
240   답글 [답변]김달진미술자료관 김달진씨 오천룡 2008.03.05 13034
239 김원 [건축 ....] 출판기념회 김달진 2008.03.04 13343
238   답글 [답변]김원 [건축 ....] 출판기념회 오천룡 2008.03.05 13322
237 책이 나왔습니다 김원 2008.01.25 12913
236   답글 [답변] 축하를 보냅니다. 오천룡 2008.01.26 13148
235 2007 을 보내며 2008을 맞으며 오천룡 첨부파일 2008.01.03 1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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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답글 [답변]2007년이 저물어... 오천룡 2007.12.08 13079
232 안녕하세요 선생님. 김경진 2007.10.29 12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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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답글 [답변]안녕하세요 선생님. 오천룡 2007.10.30 13250
229 편지 감사히 받았음 김원 2007.10.23 1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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