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나들이 9 - 쌩-레미-드-프로방스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2855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5.26. 17:23:49
첨부파일  
프로방스 나들이 9 - 쌩-레미-드-프로방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003-8-26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님므를 뒤로 하여 다음 행선지인 ≪ 알삐으 ≫산맥속에 있는 ≪ 레 보-드-프로방스 ≫로 가기 위해 차의 방향을 서쪽으로 잡았다.

알삐으산맥은 ≪ 아를르 ≫와 ≪ 아비뇽 ≫ 사이에 있어서 우리는 정동쪽으로 가는 지방도로로 들어섰다.

지공은 천년전 도시의 아름다움에 그새 반해서 ≪ 내 님(님므)아 ! 잘 있거라 ! ≫하고 뒤를 향해 손을 흔들어 우리를 웃겼는데, 아닌게 아니라 우리 모두는 그곳을 떠나는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도로의 양편은 추수를 기다리는 황금 빛 밀밭이 바람에 물결 쳤고, 수확기를 단 트럭터가 짚 먼지를 내뿜으며 추수하는 모습도 보였다. 수확을 막 끝낸 밭에는 사료로 쓸 밀짚을 직육면체 모양이나 원통 모양으로 묶은 것들이 햇빛을 받으며 널려 있었다. .

밀밭이 끝나자 끝이 안보이게 넓은 해바라기 밭이 나왔다. 길섶에 차를 세우고 모두 내려서 오후의 불타는 태양아래 벌판을 샛노랑색 바다로 만들어 놓은 해바라기 밭을 바라 보았다. 해바라기는 모두 고개를 한쪽으로 향한 채 말없이 서 있었다. 그 수많은 얼굴들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까 ?

차밖은 기온이 꽤나 높았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서 숨이 막히는 무더위는 아니었다.

사하라사막으로 부터 지중해를 건너 온 열풍은 프로방스에서는 아직 건조한 공기로 머물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대서양쪽에서 불어 내려오는 저기압성 습기찬 공기를 거대한 중앙산악지대인 ≪ 마시프 쌍트랄 ≫이 가로 막아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균형이 깨지면 론느강 협곡을 빠르게 통과하면서 수시로 부는 유명한 ≪ 미스트랄 ≫이 구름을 일시에 쓸어서 몰아 가 버리기 때문에 프로방스의 하늘은 맑은 때가 많으며 하늘이 깨끗하다.

밀밭, 해바라기밭, 옥수수밭들이 있는 넓은 벌판엔 이 강력한 ≪ 미스트랄 ≫을 막아 보려고 동네 주변과 경작지 구획마다 방풍림을 둘러쳐 심어 놓았다. 방풍림의 수종은 대개 키가 크고 유연한 실편백 나무였다.

프로방스에 와보면 ≪ 반 고호 ≫가 해바라기와 실편백나무를 많이 그렸고, 알삐으 골짜기의 올리브나무와 ≪ 까마르그 ≫의 붓꽃을 왜 그렇게 열심히 그렸는지 저절로 알게 된다. 우연스럽게 그것들을 그린 것은 아니다.

시간이 부족하여 알삐으산맥 기슭에 있는 ≪ 쌩-레미-드-프로방스 ≫를 지나쳐 버리기로 작정 했었으나 막상 그 도시를 통과할 때는 잠시라도 멈췄다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기도 로마시대와 중세가 복합된 고색창연한 도시다.

프로방스의 대표적 시인 ≪ 프레데릭 미스트랄 ≫의 작품 ≪ 미레이으 ≫를 ≪샤를르 구노 ≫가 이곳에서 오페라로 작곡했고, 450년 전에 지구가 20세기 말에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예언한 ≪ 노스트라 다무스 ≫가 여기서 태어났다.

이런 유서가 있을 뿐더러 이 도시에는 반 고호가 1년간 전설적인 투병생활을 한 정신병원이 있다. 그에 대한 경의를 생략하고 모른체 지나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 도시 남쪽 ≪ 블르바르 빅또르 위고 ≫대로 프라타나스 그늘 아래 주차를 하고 도심으로 들어갔다.

바깡스 초반에 여행을 왔기 때문인지 가는 도시마다 주차하기와 거리 거닐기가 수월한 편이었다.

골목안 무궁화꽃을 잘 가꾼 집모퉁이를 돌고나니 옷가게 벽에 ≪ 이집에서는 벵상 반 고호가 태어 나지않았다. 여기서 죽지도 않았다 ≫라고 새긴 흰 대리석판이 번쩍이는 구리 못으로 박혀 있었다. 옷 가게의 익살맞은 상술이다.

옷가게를 조금 지나니 생긴지 얼마 안된 반 고호 상설전시관 ≪ 쌍트르 다르 프레쟝스 반 고호 ≫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비디오로 반 고호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방이 있었고, 그의 프로방스 시절 작품을 원작 크기로 복사한 것을 전시하고 있었다.

입장권을 사려고 하니 직원이 오늘은 특별히 입장료를 받지 않는 날이라고 했다.

전시를 보고 나오려는데 그 직원은 더욱 친절하게도 상영시간은 아니지만 우리를 위해 특별히 반 고호 일대기를 담은 비디오를 틀어 줄테니 보겠느냐고 물었다.

금년은 반 고호가 태어난지 150주년이 되는 해이고 고갱이 죽은지는 100주년이다. 그 150주년이 오늘 온 방문객들을 융숭히 대접하는 이유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운좋게 비디오까지 볼 수 있었다.

30분짜리 비디오는 반 고호의 프로방스시절과 이때의 작품을 충실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비디오는 음울하면서도 극히 아름다운 성악곡과 베토벤의 환희교향곡 3악장을 배경음악으로 쓰고 있었다. 환희를 예고하는 현악기의 낭만적인 선율은 ≪ 밤의 해바라기 화가 ≫로 부터 느끼는 슬프고 괴로운 분위기 그대로 가슴에 전해져왔다.

반 고호의 발작증세는 그 빈도가 심해지더니 급기야 ≪ 레자리스깡 ≫을 같은 자리에서 그린 ≪ 뽈 고갱 ≫과 1888년 12월 24일 밤 급작스럽게 불화에 빠져 마침내 결별을 선언한다. 그는 이 충격으로 자신의 왼쪽 귀를 잘라내고 만다.

이 사건으로 그는 ≪ 아를르 ≫ 시립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 병원에서 동생 ≪ 떼오 ≫에게 매일 쓰다시피한 편지와 동생의 답장을 꼬박 꼬박 배달해 주는 세상에 둘도 없는 없는 친구가 된 우편배달부 ≪ 룰렝 ≫이 1889년 2월 ≪ 마르세이유 ≫로 전근돼 버리자 혼자 내 버려 졌다고 생각한 고호는 또다시 심한 발작을 일으켜서 단독병실에 감금된다.

1889년 5월 3일 고호는 아를르를 떠나겠다고 병원에 간청하고 쌩레미 드프로방스에 있는 ≪ 쌩-뽈-드-모졸 ≫정신병원 보호소에 자진해서 들어간다.

그 병원 원장은 고호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아뜰리에를 제공해주고 산책도 할 수 있는 오솔길도 방책을 쳐 마련해 준다.

고호는 거기서 1890년 5월 16일 까지 머문다.

동생은 병세가 다소 좋아진 형을 정신과의사 ≪ 뽈 가셰 ≫가 살고 있는 파리근교 ≪ 오베르 쉬롸즈 ≫로 옮기기로 하고 그곳의 한 여인숙에 방을 얻어 형의 거처를 마련해준다.

1년간 쌩뽈 드모졸 정신병원에서 머물면서 고호는 정신상태가 불안한 중에도 수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가 그리는 그림은 모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감을 일으키도록 한없이 구불 구불하게 이어놓은 선과 이해할 수 없게 소용돌이 치는 붓의 터치로 여기 저기를 강조하여 프로방스의 자연을 무섭게 변질시켜 놓는다.

그의 일련의 ≪자화상 ≫에 나타난 아주 불안한 분위기는 ≪ 실편백나무 ≫, ≪ 실편백나무가 있는 황금색 밀밭 ≫, ≪ 올리브나무 ≫, ≪ 수확하는 밀밭 ≫ 등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1888년 2월 21일, 그가 태어난 네델란드에서 먼 남쪽나라 프로방스 ≪ 아를르 ≫기차역에 내린 그는 ≪ 또 하나의 다른 빛을 보기위해서 ≫ 온 목적대로 프로방스의 눈부시도록 환한 풍경에서 지금까지 그가 보지 못했던 놀라운 태양빛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의 화풍은 단박에 파리에서 보고 온 인상주의 화풍으로 돌변하면서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려댄다. 실제로 그는 거의 환각을 일으킨 것 같은 열정으로 천재적 재질을 발휘하여 프로방스의 빛을 그림에 옮기고 또 옮긴다.

눈앞에 매일 펼쳐지는 자연, 밭일하는 농부, 도심의 정경, 그가 만나는 사람들, 이 모든 접촉으로 부터 끝없는 영감을 얻어 그는 쉼 없이 작품을 만든다.
.
이 시기에 ≪ 별이 총총한 밤하는 ≫, ≪ 땅을 일구는 농부 ≫, ≪ 씨뿌리는 농부 ≫,≪ 벵샹의 집 ≫, ≪ 붓꽃이 있는 아를르 정경 ≫, ≪ 레자리스깡 ≫, ≪ 라 크로 ≫, ≪ 랑그르와 다리 ≫, ≪ 밤의 카페 ≫ 등 풍경화와 ≪ 아를르의 여인 ≫, ≪ 프로방스의 늙은 농부 ≫, ≪ 룰렝 ≫ 등 과 같은 초상화가 나왔다.

프로방스에 있었던 2년 동안 고호는 모두 200점이상의 유화와 100점이상의 데셍을 남긴다.

강렬한 색채와 격하도록 과장된 형체에 의한 프로방스시절의 작품들은 ≪ 대단한 ≫ 정열의 소산 이었지만 자기 작품을 아무도 안 알아주는 내면의 정신적 고통도 그 만큼 컸을 것이다. 그 고통과 외로움이 너무나 커서 그를 광기의 경지로 더욱 더 밀어넣었던 것이다.

우리가 본 그 비디오는 고호가 겪었던 절망감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이런 감명을 가지고 영사실에서 나온 미라마는 전시관 서점벽에 붙어 있는 대형 전시회 포스터중에서 ≪ 라 시에스트(낮잠) ≫와 ≪ 카페 드 라 뉘(밤의 카페) ≫가 들어있는 포스터를 샀다.

≪ 라 시에스트 ≫는 고호가 화가가 되기로 결심을 하게 한 밀레의 작품 중에서 건초더미에서 낮잠에 취해있는 평화로운 젊은 부부를 그린 작품 ≪ 라 메리디엔느(더운지방에서의 낮잠) ≫를 고호가 구도를 뒤집어 카피한 작품이다.

전시관에서 나오니 시간은 벌써 5시가 넘었고 전시관의 육중한 문도 그 때 닫혔다.

우리는 걸음을 재촉해서 ≪ 레 보 드 프로방스 ≫로 향했다.
Total : 76개 (page : 2/6)
처음 페이지 이전 페이지 1 2 3 4 5 6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