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나들이 7 - 님므 1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5137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5.23. 17:4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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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나들이 7 - 님므

200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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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2일 수요일 >

어제 아침 파리를 출발한 후 밤 늦게 잠 들었으나 모두들 일찍 일어났다.

이층 지붕밑방 조그만 창을 열고 몸을 내밀어 내다보니 포풀라 잎들이 바람에 뒤짚혀진채로 바르르 떨고 있고 그 위로 옅은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테레비젼 뉴스는 어제 엑스 오페라 개막에 파업 행동대가 몰려와 소란을 피는 바람에 ≪ 라 트라비아타 ≫ 공연이 중단 됐다는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어제 엑스시내가 예상외로 한가한 느낌을 준 것은 파업이 국제 오페라 훼스티발이 시작되기전부터 시작된 까닭이었다. 엑스 시내의 호텔과 레스토랑이 텅텅 비었다고 했다.

프랑스에만 있는 공연예술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신분보장조건을 정부가 불리하게 개정하려는 것에 대항해서 파업이 시작된 것이다.

밖으로 나가니 밝게 빛나는 아침 햇살은 빠르게 퍼져 올라왔으며 낮게 깔려있던 구름도 어느 틈에 걷혔다. 오늘 날씨가 꽤나 더울 것 같았다.

벌써 밖에 나와 있는 백전은 테라스 앞에 서 있는 과수의 못 생긴 열매를 보면서 무슨 열매인지 알고자 하는 것 같았다.

그때 민박 집 철책 문이 활짝 열리면서 스테파니가 차를 몰고 들어왔다.

아침 ≪ 바겟뜨(작대기 빵) ≫ 를 사가지 오는 스테파니는 잘 잤습니까 하고 인사하면서 열매를 만져 보고 있는 백전에게 그게 살구인데 지난 봄에 한파가 지나가서 처음 핀 꽃은 얼어죽고 두번째 핀 꽃의 열매라고 알려줬다.

그래서 살구같은데 제대로 자라지 못한 것이었다. 백전이 하나를 따서 먹어 보더니 모양보다 제법 맛있다고 하면서 나에게도 하나 먹어 보라고 주었다.

너무 작아 살구같지 않던 그 열매는 정말 달콤한 맛이 났다.

조금 후 밖으로 나온 조안, 미라마와 지공도 백전이 주는 못 생긴 살구를 하나씩 받아 맛 보았다.

살구맛으로 식욕을 돋군 우리는 아침식탁에 앉았다.

저만치 서있는 키큰 나무가 따가운 아침 햇살을 잠시 가려 주는가 했는데 눈부신 햇살은 각도를 세우고 곧 우리식탁을 덮쳤다.

스테파니가 커다란 파라솔을 우리앞에 옮겨 놓아 주려고 끙끙대는 것을 본 백전이 기세좋게 일어나 거들어 옮겨놓고 펼쳤다.

사끌라 집에서 모기에 물린 지공은 더욱 부풀은 손등을 보면서 어젯밤 모기가 한마리 있어서 잠을 좀 설쳤노라고 했고 백전은 그놈을 기어코 잡아 죽인후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했다.

이층에서 잔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녹아 떨어졌고 조안과 미라마는 그런 일 없이 잠을 아주 잘 잤다고 했다.

스테파니는 커피, 뜨거운 물 주전자, 뻐터, 각종 짬병를 부엌에서 연신 날라왔고 데운 우유도 가져다 놓는 사이 오렌지쥬스를 한잔씩 마셨다.

조금후에 마콩에서 온 가족도 식탁에 앉았다. 몽고증의 장애인인 그 집 아들은 우리에게 악수를 청하고 괜히 싱글벙글 웃는다.

당신네 방에는 모기가 없었드냐고 물으니 없었다면서 방에 들어갈때 불을 켜지말고 들어간후 덧문과 창문을 모두 닫고 불을 켜면 모기가 방에 들어올 틈이 없을 것이라고 마담이 말해주었다. 오늘 저녁에는 그렇게 해 보란다.

모두 커피를 마시지만 나는 차를 마셨다. 나무상자속에는 여러종류의 차가 있었다. 나는 ≪ 차에 ≫라는 상표인 자스민차를 골랐다.

≪ 바겟트 ≫빵을 손으로 토막을 냈다.

스테파니가 매일아침 사오는 빵맛은 우리가 먹고 다녔던 빵중에서 제일로 맛있다고 친 빵이다.

빵을 손으로 잡았을 때 아직도 따스하고 가칠가칠 하면서 가재껍질 같이 탄탄해야 하고, 씹을때 바삭바삭해야하고, 속살은 꽉 차 있으면서 아직도 촉촉한 물기라 살아 있어서 쫄깃한 촉감을 입에서 느껴야만 맛있는 빵이라고 할 수 있는데, 꼭 그런 바겟뜨를 스테파니는 아침마다 사왔다.

프랑스에 갓 유학온 학생들이 처음 한달동안은 입천정이 모두 벗겨져서 왠일 일까 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와같은 맛있는 바겟트를 열심히 먹어서 빵껍질에 입천정이 찔리고 벗겨진 것임을 나중에 알게 된다.

맨빵으로도 맛있고 버터를 발라서도 짬을 발라서도 맛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평소에는 흰 빵인 바게트를 먹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평소에는 버터도 안먹고 짬도 안먹었지만 여행중임을 감안해서 아침을 많이 먹었다.

나의 식성을 아는 조안은 내가 버터와 오렌지짬을 듬뿍 빵에 바르는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뜨고 쳐다 보았다.

우리는 과일접시의 배와 자두, 복숭아도 나누어 먹고 사과나 살구를 설탕에 절인 ≪ 콤포뜨 ≫ 혹은 요구루트를 한통씩 먹기도 했다.

우리는 4박 5일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남쪽 ≪ 마르세이유 ≫, ≪ 까마르그 ≫에서 북쪽 ≪ 뤼브롱 ≫, ≪ 아비뇽 ≫까지, 동쪽 엑상프로방스에서 서쪽 ≪ 님므 ≫까지 한바퀴 돌아 볼 작정이었다.

로마인들이 지배했던 땅, 중세도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땅, 문학, 미술, 음악에 영감을 불어준 땅 그리고 음유시인들의 고향이기도 했던 땅 그 프로방스 고장 일대를 구경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민박하는 쌩샤마는 마침 프로방스의 중앙에 위치해 있고 동서남북으로 길이 뻗어 있어 어디든 가는데 교통이 편했다.

우리는 오전에 님므를 가 보기로 하고 9시 조금 지나 스테파니가 준 철책문을 자동으로 열 수 있는 ≪ 리모콘 ≫을 받아 가지고 차의 발동을 걸었다.

쌩 샤마에서 60킬로쯤 떨어져 있는 님므에 도착한 우리는 넓은 광장 지하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올라와 그 앞에 있는 로마시대의 유적인 원형경기장으로 갔다.

1세기말에서 2세기초까지에 걸쳐 세운 이 님므의 원형경기장은 로마의 ≪ 콜로세움 ≫을 본 눈으로는 너무 작게 보였지만 그래도 2만 4천명을 수용한다.

404년이 되어서야 잔인한 검투사 시합을 금지시키면서 쓸모없게 된 것을 사방으로 뚫린 문에 벽을 쳐서 막고 성채로 요새화해서는 조그만 도시를 그안에 만들고 살았는데 18세기때엔 그 주민이700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1809년에 와서 ≪ 까마르그 ≫에서 방목하는 투우용 검은 소들의 경주장으로 사용되었다. 1853년부터는 스페인 투우와 똑같은 본격적인 프랑스 투우장이 됐다.

우리는 투우장앞에 세워논 프랑스 최고의 ≪ 또레로(투우사) ≫였던 ≪ 엘 님므노 2세 ≫동상앞에서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 페리아 ≫축제때는 투우를 길거리에 풀어놓고 아수라장을 펼치는 수 많은 ≪ 님므와(님므시민) ≫들이 쫓기고 쫓는 아슬 아슬한 경주놀이가 유명하다.

한참 전 일이지만 ≪ 부르짓드 바르도 ≫ 동물보호협회 회원 한사람이 투우사를 상대로 소를 학살하는 죄를 심판 해 달라고 고발해서 한동안 계속 된 그 재판이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그 재판소가 경기장 바로 옆에 있었다.

우리는 팽나무 그늘로 덮힌 대로로 해서 들어가는 복잡한 골목길속에서 고풍이 넘쳐흐르는 중세의 시가지와 잘 보존된 로마시대의 기념건축물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정사각형으로 된 집이라는 뜻인 ≪ 메죵 꺄레 ≫는1세기 ≪ 아우구스트 ≫황제시대에 로마에 있는 ≪ 아폴론 ≫신전을 본따서 지었다. 황제의 손자와 자식인 ≪ 까이우스 ≫와 ≪ 루치우스 ≫황제에게 봉헌한 신전이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정사각형으로 보이지 않고 직사각형으로 생겼다.

프랑스 말에 직사각형 ≪ 렉땅글르(rectangle) ≫라는 단어는 나중에 생긴 새 단어이고 예전에는 직사각형을 ≪ 긴 정사각형 ≫ 즉 ≪ 꺄레 롱(carre long) ≫이라고 했단다. 그래서 편하게 그냥 ≪ 메죵까레 ≫라고 부르게 된 것 이란다.

산뜻한 수직선의 이 직육면체 신전은 건물의 비례가 완벽하며, 기둥에는 세로로 홈을 가늘고 섬세히 파 놓았으며 회랑 기둥머리에 조각된 장식은 그리스 건축의 영향을 듬뿍 받은 건축물임을 곧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 신전으로 들어가기 위해 희고 긴 15개의 층층계단을 오르면 왠지 모르게 몹시 자랑스러운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회랑 장식의 화려함과 정교함 때문인 것 같다.

이러한 로마시대의 신전은 유럽에 수없이 널려져 있지만 이 메죵꺄레가 제일 잘 보관된 신전이라고 한다.

내부엔 별 것이 없었던 신전을 본 후 우리는 중세시대의 골목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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