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나들이 6 - 샹브르또뜨에서의 저녁식사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1214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5.16. 17:5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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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나들이 6 - 샹브르또뜨에서의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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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05

그날 저녁 식탁이 차려진 테라스에서 올려다 본 프로방스의 하늘은 바람에 출렁이는 포플러 나무를 치마폭 삼아 하반신을 가리고 상반신은 벌거벗은 맑디 맑은 창공이었다.

우리 일행은 타원형 식탁의 한쪽을 차지하고 앉았고 중년의 프랑스 인 부부와 아들이 식탁의 다른 쪽에 앉았다.

그 가족은 ≪ 리용 ≫ 북쪽의 포도밭으로 유명한 ≪ 브르고뉴 마콩 ≫지방에서 왔다고 했다.

테라스에는 우리가 앉은 식탁에 붙여서 둥근 식탁이 하나 더 놓였고 거기에는 주인 쟝-바띠스트와 스테파니가 앉았다.

스테파니는 ≪ 아페리티프(식전 입맛을 돋구는 술) ≫를 원하면 서비스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정해진 저녁 값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식탁에 놓여진 포도주병을 보면서 사양하기로 했다.

그러나 식탁 위의 것은 ≪ 보르도 ≫산 포도주여서 이왕이면 이 지방의 포도주인 ≪ 꼬뜨 드 프로방스 ≫로 마시고 싶은데 바꾸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의 포도주 취향을 안 쟝-바티스트는 난처한 표정을 짓고 참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번 반복하면서 미쳐 준비를 못했노라고 말했다.

프로방스에 와서 보르도를 마시다니 유감된 일이었다.

그때 철책문이 열리며 자동차가 한대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사나이는 이 지방의 특산품인 멜런과 포도주병이 든 광주리를 들고 웃으며 테라스에 올라와서는 우리 모두와 차례로 악수를 하면서 ≪ 빠트리끄 ≫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빠트리끄는 오늘 쟝-바띠스트가 저녁초대를 해줘서 이렇게 왔다면서 자기는 바로옆 동네에 사는 포도농장주인인데 여러 손님에게 자기집 포도주 맛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몇 병 가져 왔노라고 했다.

그렇게 말한 그는 붉은포도주 한병은 식탁 위에 놓고 ≪ 로제(엷은 장미색) ≫포도주 두병은 얼음물 통속에 담그고는 쟝-바티스트 옆에 앉았다.

≪ 그러면 그렇지, 저 친구덕분에 여기 온 첫날에 꼬뜨 드 프로방스를 마시게 됐구나 ! ≫하면서 우리는 쾌재를 불렀다.

식탁에 삥 둘러 앉은 이 프랑스친구들은 우리가 머나먼 ≪ 꼬레 ≫에서 왔다는 것을 기뻐해 주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이상의 호기심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대개는 꼬레에서 왔다면 지리에 어두운 프랑스인이라도 ≪ 쉬드(남쪽) ≫에서 왔느냐, ≪ 노르(북쪽) ≫에서 왔느냐 하고 아는 척하는 질문을 하는데 그런 질문도 없었다.

나는 내친구들이 프랑스어를 못하니 참 미안하다고 하였고 그런데 너희들은 또 영어를 못하지 않느냐하는 농담을 건네며 식사를 흥겹게 시작했다.

술잔을 들어 서로 부딛치며 ≪ 보나뻬띠(맛있게 드세요) ≫라고 건배를 했다.

먼저 야채 샐러드가 전식으로 나왔다. 양상치, 도마도, 검정올리브, 빨강색 ≪ 쁘와브롱(피망) ≫, 홍당무와 삶은 계란 이 들어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집에서 보통 잘 해 먹는 샐러드이다.

이런 샐러드는 한 숟갈의 겨자를 식용유와 식초에 풀고 후추가루와 소금을 넣는데, 올리브와 포도의 고장답게 올리브유와 포도식초를 썼다. 또 마늘의 고장인지라 마늘도 듬뿍 다져 넣었고 << 파리굴(백리향) ≫과 ≪ 바지릭끄(박하향내 풀) ≫향내도 풍겼다.

본식은 ≪ 브로셋뜨 ≫였다.

주사위 모양으로 토막 낸 쇠고기와 피망을 번갈아 꼬챙이에 끼고 잘게 부순 ≪ 로리에(월계수) ≫마른 잎을 뿌려서 불에 구운 꼬치구이였다.

스테파니는 꼬치가 수북히 담긴 스텐레스 쟁반을 들고 ≪ 잘 익은 고기로 드릴까요, 조금 덜 익은 고기로 드릴까요 ≫ 물으면서 원하는 대로 접시에 놓아 주었다.

꼬치구이 맛에 보르도 한 병이 삽시간에 바닥이 났다.

그것을 본 빠트리끄가 ≪ 꼬뜨 드 프로방스 ≫를 얼른 우리쪽으로 넘겨줬다.

잔에 따른 색갈이 조금 진붉었고 묵히지 않은 술이라서 약간 과일 냄새가 났으나 입에서 순하고 맛이 좋았다.

우리는 잔을 들어서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술 맛이 좋다는 칭찬을 잊지 안았다.

브로셋뜨 다음에는 바베큐한 ≪ 메르게즈 ≫를 잔뜩 담아 가져왔다.

양고기를 갈아서 강한 향료와 함께 맵게 양념한 가느다란 소시지인데 아랍사람들이 잘 먹는 요리다.

프랑스 사람들도 야외에서 바비큐를 할 때면 즐겨 먹는 소시지다.

먹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호기심이 많은 지공이 한 토막 입에 넣어 보더니 ≪ 맛있는데 ! ≫했다.

먹성좋은 백전도 맛있어 하면서 이것이 우리가 왔을 때 사끌라집에서 바베큐하면서 우리에게 구어 준 것이 아니냐고 금방 작년일을 생각해 냈다.

미라마도 조금 맛보더니 매큼하여서 우리 식성에 맛는다고 했으나 식성이 까다로운 조안은 눈길은 주었지만 맛을 보려고는 하지 않았다.

메르게즈를 안주하여 붉은 포도주를 다 마셔 버리니 빠트릭끄는 이번엔 로제를 한병을 우리에게 또 넘겨줬다.

꼬뜨 드 프로방스의 로제는 아주 유명한 포도주다.

빠트리끄가 넘겨준 꼬뜨 드 프로방스는 명성에 걸맞는 맛과 향기를 지니고 있었다. 얼음물에 채워놓았기 때문에 온도도 적당히 시원했다.

빠트리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또 잊지않았다.

본식다음에 ≪ 푸로마즈 (치즈) ≫가 나왔다. ≪ 브루스(프로방스 염소치즈) ≫, ≪ 부리 ≫, ≪ 카망베르 ≫, ≪ 피레네 ≫ 네가지였다.

치즈를 싫어하는 백전은 구경만 했고 지공은 무엇이든지 조금씩 맛 봐야 하니까 모든종류를 조금씩 떼어다 맛을 음미했고 미라마와 조안은 망설이고 있었다.

치즈다음엔 초생달 모양으로 맬런을 깎아 내왔는데 색갈이 연어의 선명한 연분홍 속살 같았다.

그 멜런 맛은 파리에서 먹던 것보다 더 달고 향기롭고 살이 단단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지방의 ≪ 까바이용 ≫은 프랑스 제일의 멜런 산지가 아닌가 !

우리는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커피까지 마셨다. 이렇게 풀코스로 식사를 하면서 밤11시를 훨씬넘겼다.

포도주의 훈향 속에서 만찬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 백전이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이제 우리 모두가 나이가 어지간히 들었으니 간편하게 서로를 부를 수 있도록 각자 아호를 하나씩 지어 갖자는 것이었다.

이미 아호가 있는 백전과 조안은 됐고 우리 나머지 셋이 호를 지어야 겠는데 마땅한 호가 벼란간 생각날리가 없었다.

<<조안면 송촌리≫에 시골집이 있는 백전부부는 조안의 호를 ≪ 조안면 ≫에서 생각을 해내어 조안이라고 했다고 했다. 여성의 호로 그럴듯 했다.

옛날부터 마땅한 호를 찾지 못하면 자기가 사는 지방이름을 따서 호를 삼았다고 백전이 설명했다.

그래서 나는 얼핏 생각난다는 것이 내시골집에 ≪ 주인느 ≫강이 흐르니, 빨리 발음하면 ≪ 주인 ≫이니까 내호를 주인 이라고 하면 어떨가 하니 백전이 그것 좋다고 했고 지공부부도 좋다고 맞장구쳤다.

그러나 조안만은 주인하면 민박집주인도 되고 더구나 주인마님같아서 껄끄럽다고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주인이라고 호를 우선 써보기로 했다.

지공과 미라마는 그 날저녁에 짓지를 못하고 나중에 계속된 여행길에서 찾게 됐다..

어느새 ≪ 울트라마린 ≫으로 별 뿌려진 하늘이 된 것도 모르고 저녁을 끝내면서 나는 귀한 아호를 하나 지어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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