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나들이 3 - 세잔느 아뜰리에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5103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5.13. 12: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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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나들이 3 - 세잔느 아뜰리에

2003-7-22

시큰둥하게 대답한 여인에게 세잔느 아뜰리에는 여기서 머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걸어온 쪽을 가리키며 ≪ 저 다음 다음 골목 오른쪽으로 쭉 올라 가면 얼마 안되고 그 골목 속엔 볼만한 상점이 꽤 많다 ≫고했다.

우리는 벌써 북쪽 길로 꽤 많이 걸어 왔다. 지도를 펼쳐 보니 우리자동차가 있는 곳 까지 가는 거리와 로브 거리에 있는 세잔느의 아뜰리에까지 가는 거리가 거의 같아서 기왕 내친김에 아기자기한 골목 속을 더 보면서 가자고 했다.

그 골목엔 토산품을 파는 가게도 많았고 인파도 많았다.

사진을 찍는 백전과 동영상을 찍는 조안, 얼굴이 깊숙이 보이도록 길다란 챙이 달린 모자를 쓴 지공과 미라마, 그리고 나, 이렇게 세 팀으로 나뉘어 각자 취향대로 거리를 둘러 보면서 걸었다.

우리는 헤어졌다 다시 만났고, 안보이면 기다렸다가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걸었다.

이렇게 구경을 하면서 복잡한 ≪ 뤼 마레샬 포슈 ≫거리를 지나자 시청광장이 나왔다. 광장이라지만 그리 넓지는 않았다.

우아한 철책사이로 보이는 시청의 안마당은 잔돌을 촘촘히 깔아 놓았고, 반들반들 닳은 그 돌에 햇볕이 보석같이 반사하고 있었다. 활짝 열어 제친 철책문의 형태가 날렵해 보인다.

엑스엔 젊잖은 고전건축양식을 한 저택과 빌라들이 많다. 코린트식, 도리아식 그리고 이오니아식 기둥을 층층마다 다르게 세워 그런 형식의 기둥과 기둥사이에 벽을 치고 바둑판 유리창을 크게 냈다.

엑스시 시청도 이런 고전양식으로 멋들어지게 지은 건물이었다.

외형이 수수하고 젊잖아서 주거용 빌딩처럼 보이는 법과대학을 지나 ≪ 뤼 가스똥 드 샤포르따 ≫거리를 나오니 순환도로와 만났다.

순환도로를 건너고 부터는 로브로 가는 언덕길이 한가하게 시작됐다.

걸음을 잘 걷는 미라마가 맨앞에서 걸었고 다음이 지공, 나는 중간에 그리고 백전과 조안은 사진찍고 카메라를 돌리느라고 뒤에 쳐졌다.

바람없이 쨍쨍한 볕이 따가워 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 참을 걸었는데도 세잔느의 훤출한 2층아뜰리에가 보이질 않는다.

그러자 300미터 앞에 아뜰리에가 있다는 화살표가 반갑게 나타났다. 조금 더 가니 나무로 만든 대문 한쪽이 열여져 있었고 그곳이 입구였다.

멀리서도 보여야 했던 아뜰리에는 주변의 나무들이 너무 자랐기 때문에 안보였던 것이다.

지난 번 올 때는 입구가 여기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꾀재재한 조그만 마당에 들어서니 여러 사람들이 탁자 여기저기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수채화로 어떤 사람은 파스텔로. 사생을 하는 것이 아니고 선생 지도하에 모두 세잔느식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언덕길을 올라오느라 숨이 차고 더워서 정신이 어리벙벙할 지경이었다.

벽에 붙어 있는 수도꼭지에는 바싹 말라 물기라고는 없는 고무호수가 똬리를 틀고 꽂혀있었다. 그것을 보니 더 목이 탄다. 지공이 가방에서 뜨거워진 물병을 꺼내서 내민다.

엑스 시내 광장에는 분수가 널려 있고 지나는 행인들이 더워진 손을 시원히 적셔볼 수 있는 샘물이 골목 벽에 장식된 수도관에서 뿜어 나왔지만 이 집엔 물이 없다.

음료를 판다고 써있는 표말을 본 백전이 매표소에 들어가서 차가운 립튼 차를 몇통 사가지고 나와 모두들 그늘진 탁자에 앉아서 마셨다.

입장권이 한장에 5유로 50이었다. 비싸다.여기까지 목이타 올라온 사람들은 더구나 립튼 차를 우리같이 덤으로 사야했을 것이 아닌가.

이집이 이렇게 생겼었던가 하면서30년전에 와본 기억을 되살려 보기 위해서 집을 한바퀴 돌았다. 다들 나를 따라 집을 한 바퀴 돌고 나서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 본다. 집 주변이 정리되지 않았고 어수선하다. 괜히 돌아본 기분이었다. 벽에 기대서 새로 지은 창고같은 못 생긴 특별전시장도 눈에 거슬렸다. 담조차 본래 건물하고는 어울리지 않게 아무렇게나 쌓았다.

≪ 유로 ≫화가 출현하기 전까지 쓰이던 10프랑짜리 지폐에는 세잔느의 초상이 들어있었다. 지폐에 얼굴이 새겨질 정도로 프랑스를 영예롭게 한 화가의 아뜰리에치고는 예나 지금이나 관리상태가 실망스럽다.

세잔느의 위대성을 너무 의식한 탓인지 나는 30대때 여기 왔을 때처럼 지금60대가 되어 다시 와보아도 이 아뜰리에가 불만스럽다. 30년전보다 더 낡았다 30년이 지났으니, 잘 보관하고 가꾼 흔적이라곤 없어서 황폐해 보이기 까지했다.

매표소에 있는 표팔고 냉차파는 젊은이나 아뜰리에를 지키는 저희들끼리 낄낄대는 수문장들의 태도도 여전히 신중해 보이지 않고 수만리에서 보러왔거나 말거나 세잔느는 위대하니 너희들이 잘 알아서 볼테면 보고 말테면 말아라 하는 인상을 받는다.

먼지가 들어와 쌓이거나 말거나 모든 창문은 덥다고 열어 놓았고 그들만을 위한 선풍기만 돌고 있었다.

잘 관리해 놓아서 방문객을 유쾌하게 했던 ≪ 꼬뜨다쥐르 ≫의 ≪ 르노아르 ≫화실의 느낌하고는 너무 대조적이다. ≪ 오베르쉬르와즈 ≫에 있는 싸늘한 감방같은 ≪ 반 고호 ≫의 다락 방에서 받았던 엄숙한 슬픔같은 것도 없다.

나는 쓸데없는 선입견을 버리기로 하고 세잔느가 오르고 내렸던 아뜰리에로 오르는 층계를 천천히 올랐다. 세잔느가 ≪ 뤼 불르공 ≫에 있는 집과 아뜰리에를 오가느라 걷던 언덕길을 방금 걸어오면서 마음속에 새기던 세잔느에 대한 경의를 되살려 한 계단씩 밟고 올라갔다.

이 화실은 세잔느가 고통스러운 고독과 싸우면서 이룩한 현대미술의 산실이다. 그냥 보통의 작업실이 아니다. 세잔느는 1901년에 이 화실을 짓고 여기서 고작 6년 밖에 일을 못했지만 대작 ≪ 목욕하는 여인들 ≫을 여기서 ≪ 사인 ≫했다. 세잔느는 말년에 목욕하는 여인들을 여러 폭 그렸는데, 이때 그린 대작 중의 하나는 미국의 ≪ 반스 ≫재단이 가지고 있고, 또 하나의 걸작은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있다.

지금 이 아뜰리에는 세잔느의 정물화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정물과 소도구들을 보관하고 있는 엉성한 창고처럼 보일 뿐이다.

북쪽 벽을 다 차지한 유리창, 천장 밑까지 유화를 말리고 내리기 위해 오르내렸던 높은 사다리, 화실에 비해서 터무니 없이 작은 무쇠난로와 검은색 길다란 연통, 몇 개의 낮은 장농들, 프로방스의 무늬와 형태의 ≪ 파이앙스 ≫도자기들, 무거운 대형 캔버스를 톱니바퀴를 이용한 손잡이를 돌려 올렸다 내렸다 했던 거대한 이젤, 그리고 찌그러진 의자들, 등받이 없는 의자들이 주인을 못 찾고 아무렇게나 뒹굴러 있는듯하다.

서쪽벽 허리를 가로질른 띠같이 끝에서 끝까지 달아 맨 좁은 선반엔 정물화에서 본 여러가지 정물화 소도구들이 얹혀 있다 ; 꽃병, 접시, ≪ 럼 ≫술병, 생강절임 단지, 과일설탕절임단지, 올리브를 넣는 병, 찻주전자, 갖가지 컵, 또 프로방스의 파이앙스도자기, 칼…

한쪽 정물화 탁자위엔 ≪ 사랑의 신 ≫ 석고상, 찌그러진 병, 줄무늬 하얀 내프킨, 설탕그릇, ≪ 파이앙스 ≫ 항아리등이 정물화 구도대로 재현되어 놓여있다.

그 옆엔 바래고 때가 낀 ≪ 오리엔탈 카펫트 ≫위에 세잔느가 평생 쳐다 보며 지냈던 해골 3개가 고스란히 놓여있다.

유리창 옆 어두운 구석엔 그가 입었던 여러 벌의 외출망또가 넝마같이 나무못에 주르르 걸려있고, 그 옆에는 여러 개의 못생긴 단장이 꽂혀있다.

출구 가까이에 있는 탁자엔 썩어가는 양파와 오그라든 사과가 언제 바꾸어 놓았는지 모르게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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