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키운 오리 (4)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4973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4.13. 17: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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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6-18

강물에서 들오리들이 짝지어 다니는 것을 보고 있으니 졸지에 홀아비가 된 도날드가 처량해 보였습니다.

들오리들을 관찰해 보았더니 암컷에겐 언제나 줄줄 쫓아 다니는 수컷들이 몇 마리 씩 있는데, 그것도 암컷이 쫓아 다니도록 허락한 놈들만 쫓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 빌붙어 보려고 하는 수컷들은 그 보다 훨씬 떨어진 곳에서 서성대지만 절대 함부로 끼어 들지는 못합니다.

이 강가에 사는 오리들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청둥오리인 것 같은데 수컷은 암컷보다 색상이 더 화려합니다. 머리와 목은 광택이 나는 녹색이고 가슴은 진한 자갈색이면서 그 녹색과 자갈색 사이에 흰 줄을 목걸이 같이 둘렀습니다. 몸 아래쪽은 진주 빛과 같은 은회색이고 그 나머지 부분은 누릇 누릇한 회색이고 꽁지아래 부분은 검정색이며 넓적한 부리는 황색입니다.

암놈도 짙은 색으로 목에 목걸이를 두르고 있으나 잘 보이지 않고 털 전체가 윤기가 거의 없는 얼룩진 갈색 빛이고 날개부분에 청보라색 띠를 걸쳤고 부리는 연한 황색으로서 몸집이 작고 수수하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수하게 생겼다고 하지만 눈초리는 매섭고 경계심이 강 합니다.

암컷을 줄줄 쫓는 수컷들은 대개 숙맥들 이어서 항상 암컷 앞에서 돋 보이려고 하고 길을 비켜주고 먹을 것이 있으면 양보했는데 암컷은 이렇게 수컷들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여우나 살쾡이 같은 다른 짐승들의 표적에서 벗어 나려고 몸을 이렇게 보호색으로 감싸고 있습니다.

누런 덤불 숲에 은밀히 숨어서 거의 한달간 알을 품을 적에는 가까이 가서도 주의해 보지 않으면 오리가 거기에 웅크리고 있는지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덤불과 동색인 갈색을 띄우고 있습니다. 수컷들도 알을 품는 일을 도울때는 암컷과 같은 갈색으로 몸털이 보호색으로 변 합니다.

나는 홀아비가 된 도날드에게 들오리 암놈을 한 마리 잡아 짝을 지어주기로 작정했습니다.

도날드를 집속에 가두어 놓은 다음 오리장 한 가운데에 보리쌀을 듬뿍 담은 모이통을 놓고 물속으로 둘러처진 철망 울타리 한쪽 켠을 슬며시 열어 제쳐 놓았습니다.

나는 오리장에서 십여 미터쯤 떨어진 채소밭에서 김을 매는 척 하면서 오리장 쪽으로 눈길을 연신 보내고 있었습니다. 모이를 먹으러 암컷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 가기만 하면 번개같이 달려가 열어 논 울타리를 닫아 버릴 작정으로 조바심을 내면서도 채소밭 일만 태연하도록 하는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돌이도 정원에 얼씬 못하게 집안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우리 집을 잘 아는 들오리들이 볼 때는 경계심을 가져야 할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도록 꾸민 것입니다.

집 주인은 채소밭에서 일하고 있고 공짜로 먹을 수 있는 맛있는 통보리쌀은 모이통에 넘치도록 수북이 쌓여 있겠다, 모이통이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 좀 미심쩍지만 들오리에게는 무시해 버릴 수 없는 유혹을 느낄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런 흉계를 꾸며놓고 기다리고 있자니 평소 자주 행렬을 짓고 다니던 오리 떼가 그 날 따라 뜸한 것 같아서 더욱 조바심이 났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더 기다리니 마침내 그 오리 떼가 나타났습니다.

집 앞에 나타난 오리들은 뭍으로 한 놈씩 올라 와서는 모이통이 있었던 울타리 부근을 기웃거렸으나 모이통이 그 곳에 없자 우루루 물속으로 도로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물에 뛰어든 숫놈 하나가 열어 놓은 오리 장 울타리 안으로 슬며시 들어 가 보더니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대번에 다시 튀어 나왔습니다. 그것을 신호로 오리들은 꽥꽥 거리며 무리 지어 헤엄쳐 멀리 가 버렸습니다.

≪ 실패했구나 ! ≫ 생각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두 번째 기회를 노리면서 거짓 밭일을 계속해서 했습니다. 한참 더 기다리니 오리들이 이번에는 멀리서 부터 요란스럽게 코맹맹이 꽥꽥 소리를 내지르며 날아와서는 오리장앞 강물에 첨벙대며 모두들 차례대로 내렸습니다.

이 오리 떼에는 암컷이 세 마리다 수컷이 다섯 마리 였습니다.

≪ 옳지 ! 이번에는 무슨일이 일어 나나 보다 ≫ 하였을 때 한 놈이 겁 없이 오리장으로 들어가 보리를 입 속에 넣고 머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목구멍으로 신나게 넘기기 시작하니 다른 놈들도 우루루 따라 들어가서 모이통에 덤벼 들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 이 때다 ! ≫하고는 호미삽을 내 동뎅이 치고서 날아가듯 삽시간에 뛰어가 제쳐 놓았던 울타리를 순식간에 닫아 버렸습니다. 나의 재빠른 동작으로 결국 암놈 한 마리와 숫놈 세 마리가 울타리 속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나는 분해서 씩씩 거리는 암놈만 붙잡아 놓고 숫놈들은 밖으로 내 쫓아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오리장 울타리를 다시 튼튼히 원상복구해 놓고 도날드를 집에서 꺼내다 도로 오리장에 넣어 들오리 암놈과 짝을 만들었습니다. 짝 잃은 도날드가 불쌍하여 좀 무자비한 짝 맞춤을 강행한 것입니다.

도날드를 풀어놓아 들오리들과 어울려 놀도록 하고 싶지만 집오리 출신이 들오리들의 엄격한 질서 속에 적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음흉한 계책을 썼지만 잡는 데는 성공하였기 때문에 나와 돌이는 오리장 속에서 다시 한 쌍의 오리가 노니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해 졌습니다.

도날드와 억울하게 잡힌 들오리는 처음에는 각자 멀리 떨어져서 서로 모른 척 하고 서로 업신 여기듯이 외면하더니 얼마 안가서 서로 부리를 비비며 사이가 좋아 지기 시작했습니다.

봄날이 가면서 햇볕이 따듯해 진 어느 날 아침 여느 때같이 오리장 안을 들여다 보니 갯가 검은 진흙속에 눈에 띄도록 둥근 흰 물체가 반쯤 잠겨 빛에 반사되고 있어서 무엇인가 자세히 보았더니 물결에 어른 거리긴 했지만 그것은 분명한 오리알 이었습니다.

이런 봄 날 바구니를 들고 들오리들이 다니는 길과 풀밭을 다녀보면 오리알을 제법 많이 주울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읍니다. 버려진 알들은 오리가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하여 둥우리를 미쳐 짓지 못했을 때나 둥우리에 넘치도록 알을 계속 낳았을 때 아무데다 흘려 놓는 것 이라고도 했습니다.

드디어 우리집 암컷 오리도 알을 낳기 시작했지만 물속에다 빠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물속에다 알을 빠트렸습니다.

나는 오리 알이 ≪ 콜레스테롤 ≫을 낮추어 주는 약효가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장대 끝에 국자를 매달아 물속에서 알을 건져내어 삶아 먹었습니다.

오리 알을 몇번째 삶다가 ≪ 이렇게 먹어 치울게 아닌데 ? ≫ 하면서 오리집에 내려가 밀짚으로 알을 까 놓을 보금자리를 그렇듯 하게 만들고 새 오리알을 기다릴 것도 없이 냉장고의 달걀 한 개를 얌전히 그 속에 넣어 놓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부리나케 뛰어가 보니 신통하게도 내가 넣어 놓은 달걀 옆에 새 오리알이 하나 더 놓여있었습니다. 이렇게 매일 알을 하나씩 하나씩 낳아 모두 열한 개가 되어 둥우리가 꽉 차게되자 그제서야 오리는 알 무더기에 올라가 엎드려 알을 품기 시작 했습니다.

오리는 그야말로 식음을 전폐하다 시피하며 자기의 체온을 알에 골고루 쏟고 있었습니다. 나는 우리 옆을 지날 때마다 애처로우면서도 운명적인 사명을 기어코 완성해 내고 있는 오리의 부동자세에 감탄하면서 훔쳐 보았습니다.

암컷은 드물게 밖으로 나와서 한번씩 헤엄을 치고 들어 갔는데 그 동안에도 늘 짚을 알 무더기 위에 덮어 놓고 나갔고, 나갔다 와서는 똑같은 자세로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거의 한달 만에 오리 새끼 열한마리가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이들 털모자에 달린 방울과도 비슷한 새끼 오리들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방울이 굴러 다니는 듯 했습니다.

새끼 오리들은 처음 보는 세상의 생김새에 놀라고 있는 듯 했습니다. 조그만 것들이 쉴새 없이 짹짹 거리며 물속에서 퐁당거리며 노는 모습은 너무나 귀엽고 신기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가보니 새끼 한 마리가 안 보였습니다. 내가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일인데, 한 마리가 철망 구멍으로 빠져 나갔다가 짐승에게 잡혀 먹혔는지 가는 뼈와 몇 가닥의 털들이 울타리 옆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습니다.

물가에 사는 커다랗고 흉칙한 들쥐의 짓이 분명했습니다.

나는 놀라고 분해서 어미와 새끼 열 마리를 상자에 담아 가지고 집으로 옮겨다 탁구대가 있는 반지하실을 치우고 풀어 놓은 후 넓은 세수대야 같은 양푼을 찾아다 물을 채우고 옆에 모이통을 놓아 주었습니다.

나는 새끼들의 몸집이 철망 구멍으로 빠져 나가지 못할 만큼 클 때 까지 지하실에서 키우기로 결심 했습니다.

이렇게 오리 가족에게 신경을 썼는데도 다음 날 아침 새끼 하나가 물속에 들어 갔다가 양푼의 둔덕이 미끄럽고 높아서 나오지 못해 지쳐서 익사해 버렸습니다.

두 마리를 잃어서 아홉 마리로 줄어 든 새끼들은 그 후 별탈 없이 하루가 다르게 부쩍 부쩍 커졌습니다.

L국장이 ≪ 집오리는 알을 품을 줄 모르는데 어떻게하나 ? ≫ 걱정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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