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키운 오리 (3)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5264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4.06. 17: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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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6-10

동이 틀 무렵부터 햇살이 계곡에 퍼지기 직전까지 새들은 노래잔치를 신나게 벌립니다. 이 요란한 새들의 교향악을 아침마다 듣는 것은 시골에 사는 큰 기쁨 중 하나입니다.

온갖 새가 서식하고 있는 이 계곡에서는 하루종일 새가 울지만 특히 아침에 일제히 노래합니다. 뭇새들의 음악이 조금 잠잠해 지는 한낮에는 산비둘기와 뻐꾸기의 차례가 됩니다. 버꾸기가 울면 내조국 산야가 그립게됩니다.

날마다 새소리에 아침 잠에서 깨어나서 잠자리에서 한참동안 뒤척거리며 비몽사몽간을 헤맬 때가 나에게는 정말 행복한 시간입니다.

글을 쓰는 이들은 이럴 때 간밤에 써 내려간 문장 속에서 마음에 걸리는 단어를 바꾸어 보고 어순을 더 잘 배열해 볼 수 없을까 궁리를 하겠지요. 마찬가지로 화가인 나도 선과 색채를 어떻게 더 낫게 사용하고 배치할 방법이 없을까 수없이 돌이켜 생각하다가 어수선한 잠에서 깨어 나기 일쑤 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붓을 놀릴 때 보다도 새벽에 눈을 감고 어제 작업한 일을 머리 속에서 처음부터 다시 그려보고 고쳐 보았던 반추의 결과가 작업을 갑자기 잘 풀리게 하여 작품을 일사천리로 완성할 수 있게 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 지난 밤에 고심하던 작품을 잘 마무리 할 아이디어를 얻었을 때 들려오는 활기찬 새들의 노래는 나의 아침을 더욱 찬란하게 해 줍니다.

오리 한 쌍이 우리집에 온 다음날 아침 침대 속에서 나는 그림 생각은 제쳐두고 오리를 어떻게 길러야 할지 골똘히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충견 돌이를 앞세우고 발목까지 다 젖도록 이슬을 머금은 풀밭을 지나 오리를 가둔 우리로 갔습니다. 두 마리의 오리는 몸을 서로 꼭 붙인 채 있었습니다.

물 그릇에 물을 더 채워주고 모이 그릇에 쌀과 보리를 더 담아 주었습니다.

L국장은 오리가 날지 못하게 하려면 속 날개를 가위로 쌍둥 잘라 주라고 했는데 정확히 어디를 잘라야 할지도 모르고 함부로 가위질을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오리가 물을 즐길 수 있도록 오리장을 넓히기로 했습니다. 오리 우리와 냇물가 일부를 합쳐 넓은 울타리를 만드는 설계도를 스케치 해 보았습니다. 그 다음에 애완용 동물도 팔고 정원용 장치기구를 파는 규모가 큰 가게인 ≪ 자르딜랑 ≫에 갔습니다.

자르딜랑은 나의 집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계곡초입에 있는 에땅쁘 라는 큰 도시에 있습니다. 이 대형 상점에서는 각종 묘목과 씨앗, 정원수, 정원기구와 관상용 열대어에 한국산 다람쥐까지 팔고 있습니다. 시골사람들 처럼 나도 그 가게에 철마다 자주 가서 꽃씨와 모종, 묘목과 채소종자를 사왔습니다.

그 상점에서 나는 오리장 울타리를 치는데 필요한 철망과 오리먹이로 ≪ 새들을 가까이서 보려면 ≫ 이라는 그럴듯한 문구가 포장지에 써있는 막 보리쌀 한 자루를 샀습니다.

오리장을 만들 만반의 준비를 한 후 끈으로 오리 발목을 잡아매어 배를 매두는 말뚝에 묶고 오리를 강물에 띄어 주었습니다.

오리가 묶이지 않고도 물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우리 안으로 냇물이 흘러가게 철망을 넓혀서 친 후 지난 해 대나무 밭에서 솎아 낸 마른 대나무로 울타리 위를 얼기 설기 엮어 지붕덮개를 만들었습니다.

하루종일 오리 집을 만드느라 분주하게 보내다 좀 이상한 예감이 들어 오리 있는 쪽을 곳을 힐끗 보니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발목에 단단히 맸던 끈은 어느 틈에 풀려서 물에 둥둥 떠있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오리는 온데 간데 없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 암놈의 다리를 묶을 때 너무 세게 매면 피가 안 통할 것 같아서 좀 느슨히 맸던 생각이 났습니다.

혼자서 헛 갈퀴질을 하고 있는 숫놈만을 어이가 없어서 바라보고 있는데 가만이 바라 보니 저만치 물위에서 암놈이 이 쪽을 바라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 옳지 거기 섰거라 ≫ 하고 배를 저어 오리에게 다가가니 그 놈은 내가 다가간 만큼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도망을 가다가 나중에는 강 건너편 뭍으로 올라 가는 것이었습니다.

내 오리를 잡을 요량으로 남의 집 땅이거나 말거나 나도 뭍으로 올라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그 놈을 잡아 보려고 했으나 그놈은 껑충 날기도 하고 뒤뚱 거리기도 하면서 내가 접근한 거리보다 두 배 세 배 더 멀리 도망 다녔습니다.

덤불에 걸려서 넘어지고 곤두 박질을 치면서 따라 다녔지만 마냥 남의 집 숲속을 휘젓고 뛰어 다닐 수도 없는데다 잡을 가능성도 없었기에 나는 추격을 포기하고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 놈을 잡아 올 묘안을 궁리하며 테라스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자니 어느새 그 암놈이 숫놈 곁에 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옳지 됐구나 하는 생각으로 잡으러 뛰어 가 보았으나 암놈은 이번에도 나를 조롱하듯이 멀리 도망쳤습니다.

몇 차례 이 짓을 되풀이 한 후 그제서야 나는 오리가 자유를 준다고 정처 없이 어데론가 멀리 가버리는 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오리 한 쌍이 파리시내 메지스리 조류시장에서 어떻게 만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동안 동반자도 생겼고 하루 밤 지낸 잠자리도 있으므로 결코 멀리 떠나지는 않을 것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숫놈을 안아다 정원가운데 벗나무에 매어 놓았더니 과연 얼마 후 암놈도 뭍으로 올라왔습니다. 나는 그 놈이 물가로 가는 길을 막아선 후 커다란 소쿠리를 들고 몰이를 시작하여 마침내 덤불 속에 머리를 쳐 박고 숨은 놈을 덮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오리 한 쌍은 새 오리장에 입주를 하였고, 나와 돌이는 풀밭에 기대 앉아서 오리들이 놀고 헤엄치는 모양을 보며 행복해 했습니다.

이 때 들오리 한 떼가 지나가면서 우리 속에 갇힌 오리를 보았고, ≪ 너희들은 왜 거기 갇혀 있니 ! ≫하는듯 꽥꽥 거렸습니다.

살찐 보리를 모이통에 수북히 담아 우리 안에 놓아 주고 멀리서 살펴보니 좀 전에 날아가던 오리들이 어느새 올라와 우리 밖에서 긴 목아지를 철망구멍에 넣고 주둥이로 보리를 도둑질해 먹고 있었습니다.

팔자에도 없는 오리 사육을 시작하면서 이런 광경도 즐기게 되었지만 나의 하루 일과는 공연히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골생활은 마냥 한가로울 것 같지만 일하고 쉬는 일정이 빡빡하게 짜여져 있어서 예상치 않은 새로운 일이 끼어 들면 시간을 쪼개 써야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난 후 아침에 정원에 나가니 돌이 녀석이 꼬리를 흔들며 이상한 표정과 몸짓으로 나를 다그쳤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면서 습관적으로 강변의 오리장에 가보니 우리속에는 내가 도날드라고 이름 지어준 숫놈만 있고 암놈이 또 보이질 않았습니다.

우리 안을 샅샅이 살피다 보니 물 밑으로 둘러친 철망 울타리 밑에 길다란 목이 걸려서 암놈이 익사해 있었습니다. 놈은 탈출을 위해 거기까지 잠수를 했으나 철망에 걸려 빠져 나가지 못하고 익사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강 상류에 있는 우리나라 미나리와 비슷한 ≪ 크레송(샐러드 용 채소 : 물냉이) 논 ≫에 강물을 끌어 댈 때면 강물의 수위가 잠시 아래로 내려가는데 놈은 그 때를 틈타 탈출하려고 했던듯 합니다.

강 상류쪽으로 6 킬로미터쯤에 있는 마을 ≪ 메레빌 ≫에는 차고 맑은 물에서만 자라는 크레송을 재배하는 논과 송어를 키우는 양어장이 있어서 프랑스에서 그곳은 크레송재배로 이름난 고장 입니다.

도날드란 놈은 아무일 없는 것 처럼 우뚝 서 있었고 돌이는 안절부절 못하고 끙끙거리고 울타리 이쪽 저쪽을 분주히 왔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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