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키운 오리 (5)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5207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4.20. 18:3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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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3-6-26

오리들의 임시 우리가 된 지하실은 서향으로 난 조그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한줄기 햇빛 밖에 없어서 좀 어둠 컴컴했습니다. 그런곳에서도 2주일쯤 지나니 새끼 오리들이 부쩍 커져서 강가의 우리로 옮겨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미 오리와 새끼 오리들을 다시 상자에 담아 오리장으로 옮겨다 풀어 놓으니 도날드 혼자 지키던 쓸쓸한 오리장이 새끼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다시 활기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어느새 여름이 가까워져 녹음이 짙어진 주인느 계곡 골짜기는 오리들이 꽥꽥거리는 소리 때문에 시끄러웠습니다. 시끄러운 만큼 나는 오리 모이를 대기에 아침 저녁으로 바빴습니다.

아직은 새끼오리들의 암수를 구별하기 어려웠습니다. 한 여름이 되서야 암수의 자태가 차차 분명해졌는데 암놈이 4마리에 숫놈이 5마리였습니다.

또 여름은 가고 가을이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오리장이 비좁게 보일 정도로 아홉 마리의 새끼들이 어른 오리만큼 자랐습니다.

프랑스에서 살면서 추석이라고 특별히 무엇을 한 기억은 없지만 그래도 이 명절이 오면 달을 보며 나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에 잠기게 됩니다.

올해도 추석을 맞아 좀 적적하던 차에 반갑게도 L국장이 전화를 했습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나의 시골집을 세번째로 방문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녁무렵 ≪ 보르도 ≫산 포도주 ≪ 쌩때밀리옹 ≫ 한병을 들고 도착한 L국장은 오리가 대가족을 이루게 된 것을 보고 크게 기뻐 했습니다.

그는 마침 날씨가 맑아서 고국의 추석과 같이 휘영청 뜬 보름달을 볼 수 있을 것 같으니 오리를 잡아 술 안주 삼아 달빛 아래서 한잔 씩 기울이면 얼마나 멋지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나에게 씨오리 한 쌍을 가져다 주면서 약정한 사실이고 또 그것이 오늘 나를 방문한 분명한 목적일 것 이였습니다. 나는 ≪ 그거 좋지요 !≫ 라고 즉각 응답은 했으나 오리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같은 날 집에서 키운 짐승으로 추석 명절을 기리는 것도 좋을 듯 싶었습니다.

그랬지만 정작 오리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몰라 망서리고 있는데 L국장은 벌써 장대 끝에 철사로 올가미를 솜씨 좋게 만들어 매달고는 오리 우리 지붕을 들치고 쑥 넣어 멋도 모르고 서 있는 숫놈 목에다 걸고 단숨에 잡아 올렸습니다. 목이 조인 오리는 발버둥을 치며 잡혀 올라 왔습니다.

그 다음은 그놈을 잡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잠시 주저하던 L국장은 ≪ 옛날엔 목을 확 비틀어 죽였는데 지금은 못 하겠네요 ≫ 하며 한발 물러섰습니다.

그러더니 ≪ 오화백, 이 놈 몸통과 머리를 양쪽 손에 나누어 꽉 잡고 이 나무 그루터기 위에 올려 놓으면 내가 단칼에 목을 치지요 ≫ 했습니다.

나는 시키는 데로 생각없이 올려 놓았고, 올려 놓자 마자 내리친 넓적한 손도끼 날에 길다란 오리 목이 썽둥 잘려 나가는 순간 나는 그만 질겁을 하여 몸통을 놓아 버렸는데, 글쎄 목 없는 오리가 벌떡 일어 나더니 숲속을 향하여 뛰어 가는 것이 아니 겠습니까 ! 목 없는 귀신이 있다더니 !

그러나 힘차게 몇 발자국 뛰던 목 없는 오리는 곧 땅바닥에 비실 비실 쓰러 졌습니다.

L국장이 목을 쳤으니 이번엔 내가 배를 갈라 내장을 끄집어 낼 차례 였습니다.

내장을 뺀 닭을 가끔 요리 해 보았기에 나는 털이 뽑힌 오리를 자신있게 발딱 뒤집어 놓고 칼로 배를 갈랐습니다.

배를 갈라 보니 생전 처음 보는 오리 뱃속에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생생한 내장들이 너무도 질서 정연하게 가지런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만 섬찢해서 뒤로 물러 설뻔했습니다. 나는 멍청하게도 오리를 파리나 모기, 혹은 지렁이처럼 하찮은 동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학교 다닐 때 개구리 해부 시간에 어떤 경험을 했었는지 통 기억이 없었지만 내 눈 앞에 보이는 오리의 뱃속은 너무도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어서 하나의 조그만 우주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부실 수 없는 어떤 질서를 망가뜨리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뒤늦은 그 생각은 번개같이 잠시 내 머리를 스쳤을 뿐 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희희 낙낙하며 L국장과 더불어 포도주 잔을 기울이고 양념을 하여 볶아 놓은 오리고기를 안주로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오리고기는 어찌나 질기고 단단하던지 맛을 음미하며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잡은 오리는 긴장된 근육이 굳어져서 금방 요리하면 고기가 매우 질기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L국장도 오리고기가 왜 이렇게 질긴지 모르겠다면서도 포도주를 마시면서 먹성 좋게 잘 먹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내가 키운 오리 한마리를 추석날 제물로 삼아 쟁반같이 둥근 달 아래서 우리는 연신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돌이 하고 아무런 생각 없이 평소처럼 오리장에 갔습니다. 그런데 오리들은 모두 나를 외면하면서 우리 한쪽 구석으로 몰려 갔습니다.

어제까지는 내가 가기만 하면 반겨서 내 앞으로 모여들던 놈들인데 .

오리들은 나를 배신자나 적으로 본 것입니다.

언젠가 친구집에 가니 정원 구석에 임시로 만든 우리 속에 새끼돼지가 있었고 ≪ 아드리엔느 ≫라는 이름의 나이 어린 그 집 딸 아이가 돼지 먹이를 주고 있었습니다.

아드리엔느에게 ≪ 돼지 새끼, 귀엽지 ! ≫하고 묻자 ≪ 응 ≫그러더니 크리스마스 때 잡아서 식탁에 올릴 것이라며 ≪ 음, 냠냠 ! ≫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입맛을 미리부터 다시는 것을 보고는 ≪ 서양인들은 어른 아이할 것 없이 고기 없인 못살아서 어린 짐승을 보고도 잡아 먹을 생각만 하는구나 !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도 그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가져간 모이를 모이통에 쏟아 붓고 쓸쓸히 오리장을 뒤로 했습니다.

천고마비의 계절엔 말이 살찐다듯이 오리도 통통하게 살이 올랐습니다.

가을이 더욱 깊어지면서 아침 저녁으로 자욱한 안개가 계곡을 덮고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바람 없는 날 높다란 나무에서 머리위로 살며시 떨어지는 나뭇잎은 ≪ 슬로모숀 ≫으로 안개에 잠시 잠시 걸터 앉았다가 낙하하는 듯 보였습니다.

여름 내내 푸르러 무성했던 나뭇잎들은 가지에서 떨어져 나갈 때 까지 차가운 밤공기에 벌벌 떨고 가을의 따가운 햇볕으로 몸을 다시 녹이면서 하루가 다르게 갖가지 따듯한 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고국에서 가져다 심은 두구루 은행나무의 진 노랑 빛 잎들은 가을볕에 반사되며 너무도 찬란했습니다. 나무 밑에 수북이 떨어진 은행잎은 황금 카페트를 깔아 놓은 듯 풍요롭고 아름다워 감히 갈퀴질을 못하고 마냥 두고 보았습니다.

어느 집에서인지 낙엽 긁는 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지고, 또 어디선가 풍겨오는 낙엽태우는 냄새가 하도 향기로워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가을의 풍경이 먼 옛날 어느때 어느날 그것과 똑 같다는 기억을 해내면서, 나는 마치 4차원의 세계를 순식간에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 노르만디 ≫넓은 벌판을 거침없이 내 달리며 비를 몰고 오는 훈훈한 대서양의 바닷바람과, 반대로 북극에서 밀고 내려오는 찬 바람때문에 기후 변화가 심한 프랑스 북부지방은 이제부터 길고도 긴 겨울을 맞이할 때인 것입니다.

두 방향에서 번갈아 달려온 큰 바람 작은 바람들은 나무 가지 사이를 윙윙대며 오가면서 어느새 모든 잎을 떨어뜨려 땅 위에 뒹굴리고 있었습니다.

한떼의 철새들은 떠나기전 마지막 축제라도 벌이듯이 텅 빈 밀밭 위 넓은 창공에서 높은 하늘로 향하여 솟구치고 아래로 내리치면서 미친 듯 춤추며 이리 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몰려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환상적인 가을이 다 가버리고 닥아온 그 해 겨울은 나에겐 참으로 어둡고 괴로운 계절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나는 아뜰리에에서 그림세계를 놓고 고심하는 것 이상으로 오래 전부터 아내와 갈등을 겪고 있었고, 사춘기의 어려운 나이에 든 세 아이들과도 차례대로 부딪치면서 불화가 많았습니다.

그런 갈등과 불화의 원인이 가장인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가족들 사이에 분분했으며, 시골집으로 내려와 외로히 지내고 있었던 데는 그런 이유때문이기도한 것입니다.

화가라는 직업은 주로 아뜰리에에 쳐박혀 있어야 하는 것인데도 가족들은 내가 하루 24시간 늘 아뜰리에가 있는 집안속에 있는 것을 결코 좋아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파리의 집을 떠났음에도 나와 가족들 사이의 갈등은 풀리지 않고 오히려 그골이 더 깊어졌으며, 그 깊게 패인 골이 결국은 나의 가정적인 불행을 촉진시킬 것이라는 예감 속에서 나는 홀로 깊은 고뇌에 점점 빠져 들어 갔습니다.

그 해 12월을 한달 내내 고독하고 캄캄하고 음울한 마음으로 보낸 후 새해 첫날을 맞았을 때 나는 돌이와 오리장에 갔다가 나 자신의 평화를 스스로 구축해 보는 상징적 행동으로 오리장 울타리를 부수고 오리들을 주인느강에 풀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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