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키운 오리 (1)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5180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3.30. 16: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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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5-24

3월 어느 토요일 아침, 파리 남쪽 사클라에 있는 나의 시골집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귀에 익지 않은 음성의 남자가 우리의 말로 나의 집 근처에 와 있는데 혹시 잠시 들려도 괜찮은지 물어 왔습니다. 내가 잠시 머뭇거리니 그는 S신문사 파리특파원 K라고 말했습니다.

마을에 하나 밖에 없는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건 그에게 나의 집으로 오는 길을 알려주니 잠시 후 그의 차가 나의 집 대문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다소 멋적은 듯이 차에서 내려 같이 온 동안의 장난끼 있어 보이는 사나이를 나에게 소개했습니다. 그는 M TV의 파리지사 L국장이었습니다.

K특파원은 집에 계실지 몰라서 빈손으로 왔다가 마침 마을의 담배가게를 발견하여 담배 한 보루를 사왔다고 내밀었습니다.

나는 좋아하던 담배를 굳은 결심으로 끊은 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담배가 필요 없었지만 그냥 고맙다고 받아두었습니다. 그들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집 뜰에 들어서면서 이곳에 온 사연을 설명했습니다. ≪ 우리는 낚시꾼들인데, 낚시터를 찾느라 새벽부터 남쪽으로 내려오다 여기까지 왔다가 오화백 집이 이 근처에 있는 것 같아 전화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물가를 모두 개인이 차지 하고 있어 접근을 할 수가 없네요. 듣기로 오 화백 시골집이 물가에 있다고 해서 … ≫

1989년 가을 정명훈이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의 초대 음악감독에 취임해서 극장 개관기념으로 베를리오즈의 ≪ 트로와이엥 (트로이 사람들) ≫을 무대에 올렸을 때 당시 S신문사 문화부장을 역임한 S논설위원으로 부터 그 오페라 참관기를 써달라는 원고청탁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원고를 넘기고 원고료를 받느라고 K특파원을 한번 만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보다 자연과 가깝게 지내면서 전원과 수목들을 화제로 삼아 작품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1985년 시골집에 아뜰리에를 마련했습니다. 그래서 1989년부터는 아예 7년간 나는 파리 아뜰리에를 놔두고 시골집에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자연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물가의 정경을 묘사한 작품을 많이 만들었는데, 물오리와 조각배도 그리고, 전원 풍경화 속에 낚시꾼도 그려 넣었습니다.

정원 일을 하다 보니 꽃의 모양이나 잎의 형태에 대한 관찰을 자세히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계절과 더불어 바뀌는 대기의 변화를 피부로 느껴보고, 아침 새벽부터 한낮을 거쳐 저녁 노을에 이르기 까지 하루동안에 일어나는 빛의 현상을 관찰했습니다.

밤이 되면 달빛과 별빛이 반짝이는 아득한 밤하늘을 응시하며 어둠의 신비를 음미했습니다.

바람 소리에 귀를 귀우리며 바람이 지나가는 공간을 머리속에 파노라마로 펼쳐서 상상했고, 폭풍과 폭우가 지나가면 조용하던 새들이 다시 요란히 부르짖는 노래소리를 들었으며, 초원으로 떨어지는 찬란한 빛을 훔쳐 보았습니다.

노동이 귀중한 것도 이때 알게 됐습니다. 나의 시골집은 지은 지 100년이 넘어서 낡고 손볼 데가 많았습니다. 집을 뜯어 고치고 수리하는 데는 적지않은 돈이 들어가므로 웬만한 것은 내 손으로 고쳤습니다. 직접 수리를 하면서 집의 모양과 공간을 더듬어 보았고, 자로 재면서 사람이 거처하는 곳 안팎의 생김새를 이해함으로써 입체 공간에 대해서 새로운 개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원 속에 있는 이런 저런 그림의 요소를 섭렵하며 작품으로 나타내 보다가 결국은 모든 자연의 요소들을 생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짙은 안개가 낀 어느 가을 날 아침, 나는 부슬비 내리듯 사뿐히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보고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습니다. 땅에 닿기가 싫은 듯 공중에 잠시 떠있는 가벼운 자세의 낙엽을 흰 화면에 배치하면서 구도를 잡은 멜랑콜리한 작품을 7년 동안이나 줄기차게 계속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즐겨 쓰는 색채를 오색(五色)의 단풍낙엽의 형태를 빌려서 화면에 잘 배치하고 구성하여 어떤 새로운 조화를 찾아 내려는 매우 심미적이고 진지한 작업이었습니다.

이 작업은 아마도 나의 노년기를 결정짓는 듯한 외로움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비록 조그만 샛강이지만 집앞에 강이 흐른다는 것이 자랑스러웠기 때문에 나는 낚시꾼들을 정원 끝의 물가로 안내 했습니다.

두 사람은 물을 보더니 희색이 만면해져서 ≪ 여기에 물고기가 많을 것 같다 ≫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동차에서 낚시장비를 꺼내 가지고 내려와 고기 잡을 준비를 하기 시작 했습니다.

나는 강태공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찌만 뚫어지게 보고 한없이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려 보긴 했어도 낚시를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낚시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축에 듭니다. 그래서 나는 아뜰리에로 올라가서 내 작업을 했고 점심 때가 되어서 늦은 점심을 같이 먹었습니다.

그날 아침 내내 우리 강태공들은 고기를 한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자기들은 물이 정지해 있는 연못 낚시만 했기 때문에 빠르게 흐르는 물에는 서툴다는 것입니다. 낚시대를 걸어놓고 기다리는 붕어 낚시에는 자신이 있으나 낚시줄을 길게 느려놓고 마냥 풀었다 감았다 하면서 고기를 유혹해야 하는 송어낚시엔 빵점에 가깝다는 얘기였습니다.

유럽의 정치적 중심지인 파리에는 미국과 일본 다음으로 한국이 가장 많은 특파원들을 파견하고 있습니다. 특파원이란 대체로 바쁘고 경쟁도 심해서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파원들도 여가가 생기면 한국인이라면 다 미쳐버리는 골프를 치러 골프장에 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시대에 역행이나 하듯이 한가하고 명상적인 낚시를 하러 왔다는 것에 우선 정다움을 느낀 데다 적적한 시골생활에서 의외의 나그네들과 잠시 유쾌한 시간을 갖게된 것이 반가워서 나는 그들에게 포도주를 대접했습니다.

강태공들도 파리에서 만나기 힘든 한 화가가 시골구석에 내려와 세상과 단절된채 작품을 하고 있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며 은근히 아뜰리에를 구경시켜 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시골집 아뜰리에를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일찌기 세워 놓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뜻을 설명하면서 아뜰리에 문을 열지 못한다고 양해를 구하고 낚시나 실컨 즐기시다 가시라고 했습니다.

나의 집을 방문하는 대부분 사람들은 내 아뜰리에를 보고 싶어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아뜰리에를 보여 주지는 않겠다고 먼저 양해를 구했고, 실제로 내 시골집 아뜰리에를 구경하고 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하여 서로 눈치 빠른 우리는 서로의 직업적인 일에 관한 대화는 쉬어야 하는 주말 동안에는 안하고 넘기고자 피하고 있었습니다.

점심후에도 물고기를 잡기는 다 틀렸다고 생각한 낚시꾼들은 낚시를 고정시켜 걸어 놓고 교대로 가끔 물가로 내려가서 고기가 걸렸나 보기로 하고 연신 포도주잔을 기울이며 얘기 꽃을 피웠습니다.

한참 만에 K가 물가로 내려갔다 오더니 물고기가 낚싯대 하나를 물고 도망가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는 물고기가 낚싯대를 채가는 것은 낚시꾼에게는 길조라면서 좋아했습니다. 내가 배를 띄워서 찾아 보자고 했으나 그는 굳이 낚시대를 찾을 생각이 없는 듯 했습니다. 그에게는 이미 낚시질 보다는 술타령이 더 재미있는 것 같았습니다.

세 사람은 통 성명은 아침에 오자 마자 했으므로 이제 한국식으로 나이를 따져 보자는데 합의를 했습니다. L국장, 나 그리고 K특파원이 차례대로 연년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L을 L국장, K를 K특이라고 불렀습니다.

K특은 ≪ 여기에 참새가 꽤 많네요 ≫ 하길래 이 계곡은 프랑스에서 제일 큰 밀 밭 한가운데의 평원에 파여 물이 흐르고 있어서 새들이 제일 많은 곳 이라고 했더니 참새를 쉽게 잡는 방법을 아느냐고 느닷없이 물었습니다.

L국장이 삼태기를 막대로 버텨놓고 잡는 방법이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K특은 그게 아니고 소주에다 쌀을 불려서 마당에 뿌려 놓으면 참새들이 사정없이 먹고 나서 술 취해 가지고 비틀거릴 때 망태기에 줏어 담으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시골 출신이라고 밝힌 L국장은 지지않고 저 강물에 오리때가 줄 곧 왔다 갔다 하는데 오리를 쉽게 잡는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살던 시골에서는 오리가 다니는 곳에 말뚝을 밖고 낚싯줄에 지렁이를 미끼로 달아 놓으면 오리가 그것을 홀딱 삼키고는 움직이기만 하면 목에 걸린 낚시바늘이 찌르니까 목이 아파서 꼼짝을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우스운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포도주를 권커니 받거니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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